찌개(Jjigae)
코리안시네마(Korean Cinema) 섹션
한국 / 2022 / 26분 / 컬러 / 
감독 : 윤재호
출연 : 한연재, 정선율, 양익준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1.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영화 <찌개>는 먼저 이렇게 대답한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지만 어눌하게나마 한국말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했던 노력의 시간. 자신을 길러준 부모의 생일날 김치찌개를 끓여주고자 했던 마음.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생의 시작이었던 품을 찾아 다시 돌아올 용기. 그런 것들이 무엇인가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이라고 말이다.

또 하나가 있다.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과 루틴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가고자 하는 다짐. 서로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을 없애거나 무너뜨리지 않고 혼자서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되어도 좋지만 이제 닿을 수 없는 존재의 이름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아련함.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어떤 방식으로라도 지우거나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그리움의 마음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찌개>는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뤄내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첫 시작에서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에이미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장면이 그려지지만, 그 일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은선과의 낯설고 복잡한 관계가 극의 후반부에서 이어진다. '찌개'가 엄마를 이야기할 때 보편적으로 제시되는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를 통해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이 드러나도록 구조화된 이 극의 모양에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고민이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2.
이 영화의 첫 번째 문제는 에이미가 가진 그리움의 대상이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국을 찾은 유일한 이유이자 오랫동안 만남을 기다려왔던 순간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엄마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 엄마의 찌개 가게는 딸인 은선(정선율 분)이 이어받아 영업을 하고 있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해 미국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셰프로 엄마의 찌개를 조금이나마 배워보려고 은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하기만 하다.

그 역시 그리움 때문이다. 오래된 그리움은 마음의 원형이 자리한 공간의 숨구멍을 무겁게 짓누르는 바위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지난 그리움의 크기만큼 대상의 그리움이 진하거나 무겁지 않다면 더욱더. 심지어 이 작품 속 에이미의 경우에는 그 오래된 그리움의 대상을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태다.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그리움을 해소할 방안이 없다는 뜻이다. 고대하던 순간의 장면에서 맥없이 풀려버리는 환희와 기쁨이 더없이 가볍고 애처롭듯이 그녀의 그리움 역시 그렇게 힘을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흩어지는 마음은 빠르게 허탈함, 실망과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 치환된다.

03.
두 번째 문제는 은선의 쪽에서 발생한다. 이제 막 엄마를 떠내 보낸 그녀의 삶은 정돈이 아직 채 되지 못한 상태다. 엄마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간 이식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두 사람이 같이 운영했던 찌개집을 이제 홀로 이어가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까지 함께다. 은근한 추파를 던지며 매일 가게를 오가는 부담스러운 정사장(양익준 분)도 골치다. 이런 상황에 에이미라는 존재까지 더해졌다. 갑자기 찌개집을 찾아온 생면부지의 그녀는 찌개를 배우고 싶다며 접근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손이나 하나 덜자 싶었지만 갈수록 하는 행동이 어쩐지 불편하다. 잘 알지도 못할 텐데 엄마의 이야기를 꺼내고 은근한 험담도 계속한다. 평생 지키고 싶은 엄마의 레시피도 상의 없이 제 멋대로 바꾸려고 하고, 이 가게를 언제까지 엄마의 이름으로 이어갈 거냐며 선 넘는 참견을 해온다. 결국 에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가방을 몰래 뒤지던 은선은 그녀가 그동안 왜 그런 행동들을 이어왔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찌개>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4.
"왜 우리 엄마 돌아가시니까 이제서야 찾아와요?"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 다른 그리움을 보이던 에이미와 은선은 이제 같은 자리에서 부딪히고 만다. 친딸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서로의 생사도 모르고 살았던 이와 친딸은 아니지만 항상 곁에서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공유했던 이로. 에이미에게 은선은 원래 자신이 있어야 했던 자리를 빼앗은 존재로 남고, 은선에게 에이미는 묘한 타이밍에 나타나 자신에게 남을 유일한 엄마의 자리마저 빼앗을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던 묵직한 질문은 여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히 누군가의 그리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말로 태어나고 자라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다. 법리적 감정이나 생물학적인 근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키워내는 것 말이다. 다만 영화는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영화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가 되기라도 하는 듯 나아가는 그대로, 문제가 던져진 모습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05.
영화의 마지막에서 에이미는 자신을 길러준 미국의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자신은 잘 지낸다고, 엄마를 만나 찌개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한다. 친엄마를 찾는다고 집을 나섰는데도 불편한 감정 한 번 내보이지 않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이 부끄러운 감정인지 억울한 감정인지, 어떤 모양인지에 대한 것은 지금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 감춰진 감정을 에이미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삼켜낼 수 있을까 하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이 문제는 찌개집에 홀로 남은 은선에게도 동일하게 남는다. 그저 두 사람이 각자의 그리움을 미움의 자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를 깊이 바랄 뿐이다.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찌개 한연재 윤재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