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검색할 때 정치나 범죄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내 취향과 90% 이상 일치한다는 문구가 뜬다. 그 정도는 아니지 싶다가도 일단 시작하면 푹 빠져든다. 내가 접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신비감과 막연히 경외했던 그 세계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며 그들은 나와 차원이 다르지 않은, 특별할 것도 우러를 것도 없는 존재라는 결과에 도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 저 자리도 참 별것 아니네,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은 영국 대사로 부임하게 된 미국 외교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캐서린 와일러(케리 러셀)는 원래 아프가니스탄에 부임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주영 미국 대사로 발령지가 변경된다. 누군가의 공격으로 영국 항공모함이 공격받고 이 때문에 영국 해군 40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는 국제적 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그녀 앞에 놓인 것이다.

캐서린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전후 복구 작업을 진행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외교관이다. 그녀는 현장에서 십 년 넘게 활동한 이란 전문가로 영국 항공모함 공격의 배후가 이란으로 지목받자 사건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며 피해 당사자인 영국의 과격한 행동을 외교력 역량을 발휘해 자제할 수 있도록 조율한다. 

숨가쁜 외교 현장, 시스템 동력은 '국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 Netflix

 
드라마의 인상적인 포인트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외교의 현장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의전과 국가 간에 물고 물리는 관계들. 각자의 위치에서 긴박하게 상황을 수습하고 일을 진행하는 장면들은 마치 거대한 공장의 부품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조립되어 돌아가는 것처럼 체계적이며 기계적이고 일사불란하다. 그 모든 시스템의 동력은 국익이다. 

개개인의 역량은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정도다. 복잡하게 얽힌 외교 상황에서 개인의 신념과 의지를 주장하는 것은 국익을 위한 과정과 절차로서 기능한다. 하나의 부품으로써 개개인의 역할이 묵직하게 빛나는 대목이다. 

항공모함 공격의 배후가 이란이 아니라 러시아라고 밝혔지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발언으로 인접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혼란 상황에 빠졌다. 지켜보던 많은 국민들이 아연하는 상황을 보며 바른 처세는 어떤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정상의 외교는 '모두가 지켜보는 리트머스 테스트'다. 모두가 지켜보는 외교 무대는 말 한 마디로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기에 '외교전'이라 부른다. 지금 우리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국민은 물론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외교 당국과 대통령의 말이 각별히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 Netflix

 
드라마 속 미국 대통령 레이번은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레이번 대통령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모를 일이에요. 동맹이란 부질없죠. 내가 10살 때 동네 친구랑 한 손가락 약속 수준이죠. 누가 널 때리면 내가 간다." 동맹 간 협력을 강조하고 민주주의 파트너들을 위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됐다고 하면서도 자국을 위한 판단을 우선에 둔 것이다.

결국 미국을 위한 국익이 우선시되며, 이란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자 했던 영국과의 동맹의 맹세는 어린아이의 손가락 약속과 같은 공허한 구호가 되어 버린다.

외교 무대에서의 바른 자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외교관> 한 장면 ⓒ Netflix


"소통이 핵심입니다. 모두와 대화하세요. 독재자와 대화하고 전범과도 대화하십시오. 2호 차에 타는 걸 언짢아하는 서열 낮은 멍청이와 대화하세요. 태세를 전환할 가능성이 있죠." - 할 와일러(루퍼스 슈얼)의 연설 중에서.

드라마 속 동료 외교관이자 정치 스타이며 캐서린의 남편인 할 와일러의 연설 중 한 부분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화두는 외교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많은 언론이 우려 섞인 논평을 내놓고 있다. 물론 모든 외교는 복잡하고 어렵다. 복잡한 국제관계의 세계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과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있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지 않는 자세로 외교무대에 나선다면 현재의 걱정스러운 상황에서도 길은 있다고 본다.

드라마는 미국과 이란의 적대적 관계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브렉시트,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등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와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녹여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정치적 상황을 연출했다. 그 모든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 역사적 사건과 숨겨진 이면의 첨예한 갈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섣부른 해석과 판단은 금물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역사적 지정학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속 인상적인 캐서린의 대사를 소개한다. 케서린은 약점을 쥐고 흔들려는 적을 향해 "대통령은 49%의 재앙인지, 51%의 재앙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캐서린은 '대통령이 판단해야 하는 일은 49:51의 문제뿐이니 늘 머리를 쥐어뜯지만 그것이 내가 선서한 일이다'라는 대통령의 말을 재차 인용했다. 

방미 중인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선서를 부디 되새기며 외교에 임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넷플릭스 외교관 동맹 미국 순방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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