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컬링의 실업팀은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그 실업팀들을 품어낼 대회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 컬링의 실업팀은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그 실업팀들을 품어낼 대회가 부족한 실정이다. ⓒ 박장식

 
한국 여자 컬링이 '역대급' 외연 확장의 폭풍 속에 서 있다. 지난 2022년 서울시청 여자 컬링팀이 창단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의성군청 남녀 컬링팀의 창단이 이루어지면서 실업 여자 컬링팀이 6개 구단으로 늘어났다.

여자농구 WKBL이 6개 구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V-리그 여자부 역시 2020년까지 6개 구단 체제로 운영된 것을 고려하면 다른 프로 스포츠 못지 않은 외연 확장이 이루어졌다. 대중에 국내 컬링대회를 처음 알렸던 코리아컬링리그의 여자부 참가팀이 4개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안에 괄목한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팀이 늘었지만 나갈 대회가 없다. 대한민국 내에서 매년 상시적으로 열리는 컬링 대회는 단 세 개 뿐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는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전국동계체육대회, 회장배까지 단 세 개 대회만이 열리고 있다. 선수 인프라는 출중한데, 그 선수들이 마음껏 뛰어놀 국내대회 인프라가 아쉽다.

종목도 선수도 매력 있으니... 팀이 늘 수밖에

국내에서 '컬링을 직업으로 삼는 여자 선수'가 나타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전라북도에서 실업 여자 팀을 창단하면서 다섯 명의 선수가 입단했다. 그 이후 실업구단 인프라는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경기도, 춘천시 등 지자체에서 팀을 창단하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4개의 실업팀이 운영되었다.

최근 1년 사이에는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2022년에는 남자 컬링 구단을 이미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청에서 2020 로잔 청소년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의 선수 등을 영입해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여자 구단을 창단했다. 오는 3월에는 의성군에서 지역 출신의 선수들로 구성된 의성군청 남녀 실업팀을 창단할 계획이다.

이렇듯 '컬링 구단 창단'의 열풍이 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특히 12년간 이어진 동계올림픽에 선수들이 연속으로 출전해 좋은 기록을 써내면서 컬링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을 넘어 세계선수권·아태선수권 등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3월 중순 창단을 앞둔 의성군청 선수들. 2월 동계체전에는 '경북컬링협회' 명의로 대회에 출전했다.

3월 중순 창단을 앞둔 의성군청 선수들. 2월 동계체전에는 '경북컬링협회' 명의로 대회에 출전했다. ⓒ 박장식

 
특히 가장 중요한 요인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펼친 선수들의 활약을 통해 국내 컬링 인프라가 크게 늘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평창 올림픽 이전 의성에만 있었던 국제 규모의 컬링 전용경기장은 의정부, 강릉에 생겨나는 등 번졌고, 전주 등에도 국제 규모 경기장이 건설되고 있다.

비용 상의 이점도 있다. 컬링은 다른 구기종목보다 현저히 적은 4명의 선수단만 구성되면 어엿한 구단을 창단할 수 있다. 그런데다, 의정부·의성 등 '컬링 명문' 도시를 포함해 청주, 전주 여러 지역에서 국내외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꾸준히 수급된다. 

선수들의 세계적 수준 역시 점점 올라가고 있다. 경기도청(스킵 김은지)의 경우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여러 차례 결선에 진출했다. 강릉시청 '팀 킴'(스킵 김은정)은 여전히 해외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춘천시청(스킵 하승연) 역시 지난해 처음 열린 범대륙선수권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팀은 늘었지만... 국내대회는 단 세 개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대회다. 팀은 늘고 있지만 국내대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대한컬링연맹이 주관하고 있는 4인조 컬링 국내대회 중 일반부, 즉 실업팀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열리는 것은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그리고 회장배 대회까지 세 개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는 한국선수권, 대한체육회가 주최하는 동계체전을 제외한다면 회장배 대회 하나만이 남는다. 하다못해 지역 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라도 있으면 숨통이 트일 텐데, 지역 연맹 역시 영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역에서는 시·도의 지원을 통해 지역 대회를 개최하는 정도에 그친다.

국내대회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비해 되려 줄어들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는 경북도지사배, 당시 연맹의 후원사였던 신세계가 참여한 신세계·이마트 전국컬링대회 등 대회가 있었고, 태백곰기 등 대회도 올림픽 이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컬링계의 내홍, 코로나19를 거치며 상당수 대회가 사라지거나 중단되었다.

그나마 2019년에는 월드 투어 대회인 의성국제컬링컵 대회가 열렸다. 해외 선수들과 함께 치를 수 있어 국내 선수들의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였던 대회였다. 하지만 의성국제컬링컵은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자체 개최 국제경기 지원공모에 선정되고도 대회를 치르지 못했다.

결국 아쉬운 점은 이러한 국내대회 부족이 해외 투어를 나갈 수 없는 국내 컬링 선수들의 실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소속팀의 지원을 바탕으로, 또는 후원을 통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일부 실업 구단이 더욱 기량을 높이고, 그렇지 못한 일부 실업 구단이 몇 안 되는 국내대회에 매달리는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월 개최된 전국동계체육대회 컬링 경기의 모습.

지난 2월 개최된 전국동계체육대회 컬링 경기의 모습. ⓒ 박장식

 
악영향은 한국선수권대회에까지 미친다. 국가대표 선발전인 한국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서는 국내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포인트를 쌓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국제대회 초청으로 한 대회만 불참하더라도, 한 대회만 예선 탈락하더라도 출전권을 놓칠 수 있다. 부족한 국내대회가 국가대표 선발 변별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실업팀을 위한 경기도 부족한데 학생부 대회마저 너무나 적다. 현행 학생부 대회는 일반부 대회 3개에 더해 주니어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한국주니어컬링선수권 하나가 더해지는 형태다. 자칫 메달이라도 놓치면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실업팀 지도자는 "성인 대회가 부족하다면 학생부 위주로라도 늘어야 한다"면서, "학생부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연맹에서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도와주어, 학생 선수들의 대회가 끊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업팀의 경우 한 대회를 하더라도 제대로 치렀으면 한다"라면서, "당장 한국컬링선수권도 변별력을 챙겼으면 좋겠다. 다른 국가처럼 한 해에 여러 번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던지, 올림픽을 앞두고는 지난 4년 간의 승점을 어드밴티지로 두는 등 변별력 있는 경기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 지도자는 아울러 "캐나다의 대표팀 선발전이나 올림픽처럼 단판 결승전도 흥행에는 좋겠지만, 한국 컬링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흥행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라면서, "현재로서는 좋은 팀을 뽑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한국선수권을 개편해야 한다. 정 대회 유치가 어렵다면 스코틀랜드의 예처럼 월드 컬링 투어 출전도 포인트로 인정해 유능한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두 개 대회 올해 추진... 리그 재개도 역점사업으로 이어갈 것"

해외 투어 등을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국내 컬링대회는 아쉬운 점이 유독 많았다. 그런 와중에 지난 3년 동안은 대회도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워낙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내대회의 수도 줄고, 질까지 떨어지니 국내 선수들이 해외 대회에서 빙질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장기 레이스에서는 체력 저하로 '잡을 경기를 놓치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을 딛고 연맹에서 국내대회를 늘린다는 소식은 다행히도 반갑다. 의성군에서 실업팀 창단을 매개로 의성군수배 대회를 올해부터 개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3월 중순 열리는 의성군청 컬링팀 창단식에서 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논의한다는 것이 의성군, 그리고 대한컬링연맹의 설명이다.

의성군 관계자는 "오는 10월 예정으로 의성군수배 대회를 열 계획"이라며, "군수께서 의지를 보이셨기 때문에 추경 예산을 확보하는 등 대회를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의성국제컬링컵 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지자체 개최 국제경기 지원공모를 통해 차후 대회를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대한컬링연맹 관계자 역시 "컬링 대회를 유치하려 시도하는 등, 다시 대회가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산적한 문제를 하나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라면서, "다행히도 대한체육회장배가 유치되어 올해부터 7~8월 즈음에 열릴 예정이고, 의성군에서도 실업팀 창단과 함께 추가로 대회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청소년 올림픽 등의 국제대회 준비로 인해 당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빠른 시일 내에 코리아컬링리그의 재개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특히 실업팀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만큼,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리그의 재추진을 역점사업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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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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