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포스터 이미지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가슴 두근거리는 거장의 <피노키오> 재해석

동화 <피노키오>를 모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탈리아어로 집필된 책 중 가장 많은 언어와 수량으로 번역된 이 '현대의 고전'은 원작동화 외에도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으로 재해석되면서 전 세계 아이들의 벗이 되어주었다. 거짓말을 하면 늘어나는 코, 생명이 깃든 인형 같은 설정의 모태가 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원래 이탈리아 동화 버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은 어릴 적 아동용 축약판으로 접했거나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매력적 존재가 펼치는 모험담을 접한 경우가 절대다수일 테다. 수많은 리메이크가 이어져왔지만 의외로 복잡하고 어두운 이야기인 원전이 디즈니 스타일로 지나치게 얌전해진 경향을 거스르는 데에는 실패해 왔다.
 
숱한 시도 중 유독 눈길을 끄는 도전이 최근에 불거졌다. <판의 미로>와 <헬보이> 시리즈, <퍼시픽 림> <셰이프 오브 워터> 등으로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를 선보여온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넷플릭스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고전 명작동화 <피노키오>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은 감독의 영화세계를 애정해온 이들이라면 가슴 두근두근 떨릴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미리 완성된 영화를 목격한 이들의 입소문이 그런 기대를 부풀려주었다.
 
2주간 제한적인 극장개봉, 일명 '홀드백' 기간 후 넷플릭스 독점으로 스트리밍 공개된 기예르모 델 토로 버전의 <피노키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후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새롭게 '리부트'하는 차원에 가깝게 재해석해 놓았다. 지금까지 감독이 보여 왔던 파격적이고 어두운 판타지 세계를 기대한 이들이라면 예상외로 원작에 충실한 리메이크가 조금 아쉬울 순 있겠지만, 이 새로운 버전은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 3부작을 통해 선보였던 결과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고전' 반열에 오른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기존의 감독이 구축해온 독창적 작품세계가 결합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결실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방법론이다.
 
20세기 전반 파시즘 치하 이탈리아로 옮겨낸 원작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이야기는 원작자인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에서 배경이 된 19세기 후반(초판은 1883년 출판되었다)에서 20세기 전반기로 옮겨졌다. 구체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말부터 시작해 베니토 무솔리니 집권기인 파시스트 이탈리아 왕국 시기를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 와중까지를 다룬다. 이 시대 배경 변화는 아주 중요한 한 획을 긋게 되는 결정적 장치로 활용된다.
 
목수 제페토는 1차 세계대전 말에 눈먼 폭격으로 외아들 카를로를 잃고 실의에 빠진다. 아들과 함께 마을 교회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조각상을 손보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페토는 술병을 손에 달고 사는 반 폐인 신세가 되고 만다. 그에겐 이제 아무런 인생의 기쁨도 보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틈만 나면 카를로의 무덤에 가서 세상을 한탄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아들의 묘에 유품격인 솔방울을 심었던 게 어느새 나무로 자라나 있다. 노인은 어느 날 술에 취해 나무를 베어내 그 목재로 나무인형을 만들려고 한다. 그는 사람의 형상을 한 나무인형에 아들이 돌아와 깃들기를 염원한다. 물론 그저 술에 취한 노인의 취기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다.
 
하지만 홀연히 등장한 (원작의 요정에 대입되는) 푸른 요정은 노인의 딱한 사연을 동정한다. 푸른 요정은 제페토가 얼렁뚱땅 만들어낸 나무인형에 유사 생명을 주입한다. 그리고 하필 작가를 자처하며 집필용 거처를 삼았던 나무가 인형으로 변해버린 처지인 귀뚜라미 크리켓에게 '피노키오'란 이름을 한 나무인형을 보살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시작부터 천연 그 자체다. 세상의 규칙과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피노키오는 (원작에서 숱하게 저질렀던 것처럼) 착한 본심에도 불구하고 사고뭉치 실수연발을 거듭한다.
 
피노키오의 천방지축 모험은 계속 이어진다. 학교를 빼먹고 화려한 불빛과 환호성에 현혹되어 찾은 유랑극단, 병사가 부족한 국가기구에 의한 군사학교 징집, 그리고 바다괴물 뱃속으로 들어간 피노키오는 갖은 고생을 겪어간다. 그 과정에서 마치 '사회화' 과정처럼 조금씩 경험을 축적하고 제페토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깨달아나간다. 제페토 노인 역시 피노키오를 찾아 나선다. 사고를 쳐 자신을 곤혹스럽게 만들 때마다 화가 난 나머지 무심코 피노키오에게 내뱉던 심한 말들을 되새기며 반성한 끝에 피노키오를 다시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선 것이다. 둘은 결국 괴물 물고기의 뱃속에서 재회하고 함께 탈출하게 된다.
 
아동문고에선 볼 수 없었던 선명한 서사와 배경의 매력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피노키오와 제페토를 괴롭히는 이들은 크게 두 축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둘 사이의 약속을 훼방 놓게 한 유랑 서커스단의 단장 볼페 백작과 심복 원숭이 스파차투라다. 그들은 학교에 가기 싫은 피노키오를 회유해 노예계약을 맺게 한다. 살아 움직이며 말하는 꼭두각시 나무인형은 서커스단 단장에게 큰 성공과 재물을 안겨준다. 하지만 볼페 백작은 공연수익을 피노키오와 정당하게 나누지 않고 가로채며 착취한다.
 
이 서커스단의 다른 구성원들은 피노키오를 걱정해 주고 동정하지만 단장은 회유와 협박을 섞어가며 피노키오를 이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원숭이 스파차투라는 단장의 총애가 피노키오에게 쏠리면서 원한을 품기도 하지만 그 또한 단장의 학대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다. 동화 원작에선 인형극단 단장과 서커스단 단장으로 구분된 캐릭터를 델 토로 감독은 하나로 통합시켜 단순화한다. 인형극 단장은 선량하지만 큰 비중이 없었고 서커스 단장은 피노키오와 동료들을 학대하는 캐릭터인데 이번 영화에선 두 캐릭터를 통합해 후자에 집중된 역할로 구성한 듯하다.
 
2022년 리메이크 버전은 유독 피노키오가 인형극에 혹사당하는 장면에서 아동노동을, 피노키오를 찾으러온 제페토에게 단장이 들이미는 두루마리 계약서에서 부당근로계약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부각된다. 작중 배경인 20세기 초반, 아직 상식적인 노동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던 시대상을 풍자하는 기능이 두드러지는 측면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금으로선 상상을 불허하는 열악한 혹사와 착취가 자행되던 당대 시대상이 은유로나마 또렷하게 각인되는 변용이다.
 
두 번째 악의 축은 마을의 시장인 포데스타와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수령' 무솔리니로 표상되는 이탈리아 국가 파시즘 체제다. 피노키오라는 규격 외 존재를 처음에는 체제 내로 길들이기 위해 획일적 국민교육을 강요하고, 죽어도 죽지 않는 피노키오의 특성을 발견한 이후에는 군사용도로 전용하려 혈안이 되는 비인간적인 파시즘 체제의 망령은 극중에서 마을 아이들부터 지역공동체의 구심일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일하게 로마식 경례를 일삼는 살풍경으로 강조된다.
 
원작에서 피노키오가 겪는 마지막 유혹에 가까운 에피소드인, 장난감 마을로 피노키오를 인도하는 동창생 램프윅은 이번에는 시장에 의해 꼬마 파시스트로 키워지며 겉으론 잘난 체하지만 전쟁이 두려운 그의 아들로 탈바꿈해 등장한다. 어두운 내용이 만만치 않지만 기본적으로 동화에 속하는 원작에서나 리메이크에서나 어른들의 그릇된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희생당하는 아이로서 피노키오와 질긴 비극적 인연을 이어나가는 캐릭터다. 반면에 동화적 흐름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시대의 미시적 풍경은 강조되지만 무솔리니의 등장 장면은 희화화된 채 간략히 처리되는 편이다.
 
각각 당대 시대적 흐름인 노동착취 자본가와 군국주의 파시즘을 대변하는 두 집단은 끊임없이 피노키오와 제페토의 만남을 훼방을 놓으며 괴롭힌다. 그에 비하면 바다의 괴물 물고기 때문에 겪게 되는 시련과 극복은 그저 지나가는 위기에 불과해 보일 정도다. 그리고 괴물 물고기의 종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반전사상과 주입식 교육을 단호히 거부하다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델 토로가 새롭게 선보인 피노키오 이야기는 명확하게 특정한 목표를 설정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1930년대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 체제가 드리운 사회 전반의 획일화와, 침략전쟁을 전제한 군국주의 치하에서 '비국민', 타자로 설정되는 소수자 캐릭터로서의 피노키오와 주변 존재들의 형상화다. 특히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사상에 대한 은유가 짙다.
 
시각적으로는 감독의 장기인 이형의 존재들에 대한 표현이 돋보인다. <헬보이> 1/2편 시리즈나 <판의 미로>에서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던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의 연장선상에서 이 새로운 피노키오 이야기는 매혹적인 비주얼을 마음껏 펼친다. 그저 작고 예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기이한 능력을 가진 존재인 요정들, 저승사자 격인 검은 토끼들, (이야기 전체의 해설자 역할을 소화하는) 귀뚜라미 크리켓에 더해 인간세상 주변을 배회하는 이형의 존재들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말썽꾸러기 악동이 방황 끝에 효행의 길로 돌아오는 교훈극에 가깝던 단순한 내용의 확장과 심화가 돋보인다. 변화된 2000년대 상황에 맞게 고전을 재해석되는 파격이 만만찮다. 피노키오는 경험치를 쌓아가며 성찰하고 반성하는 성장 캐릭터이자 마치 반지의 제왕 속 요정들이 겪는 것 같은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 존재다. 제페토는 외아들을 잃은 슬픔이 사무쳐 피노키오에게 카를로의 대체역할만을 요구하던 과오를 깨닫고 반성하는 개성이 새롭게 부여된다. 그렇게 시련 속에서 단단해지는 가족을 돕는 건 번듯하고 힘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 스스로도 핍박당하거나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전복적인 설정은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감독의 이전 작업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원작에서도 구성요소로 빼놓을 수 없지만 대부분 생략되거나 스쳐 지나가곤 하는 '알레고리'가 두드러지게 재현된다. 제페토와 피노키오의 관계는 단순대입으로만 따져보면 목수 요셉(제페토)과 예수(피노키오)로 상징화된다. 바로 죽음과 부활, 구원의 서사다. 델 토로의 리메이크는 이 기원을 영화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구석구석 숨겨진 장치들은 영화 후반에 피노키오가 결행하게 되는 운명적 선택과 깊숙하게 연결된다.
 
명감독에 의해 재해석되는 고전의 향기 만끽할 기회
 
원작의 모험소설적인 성격에 따른 여러 일화들은 2시간을 꽉 채워 맞춘 영화화 버전을 위해 상당부분 축약되거나 통폐합되긴 했다. 원작의 변용이 분명 아쉽긴 하지만 원활한 흐름을 위해선 충분히 이해될 구석이다. 그런 약간의 수정에도 불구하고 주요 캐릭터들은 기본적인 성격과 역할을 잃지 않고 충실히 유지한다. 원작과는 상이한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캐릭터의 기본적인 구도와 위상을 잃지 않은 채 변화된 시대 배경에 맞춰 디자인된 셈이다.
 
많은 이들이 축약된 아동용 동화 판으로만 접하는 바람에 간과하곤 하지만 원작 또한 아동용 동화치곤 꽤나 수위가 강한 이야기였다. 내가 알던 피노키오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완역판 피노키오 원작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마 제법 놀랄 이들이 여럿 나올 테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건 델 토로의 리메이크 작업이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도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디즈니의 관습적 영상화가 워낙 우리의 동심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여러 번의 야심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 머릿속에서 피노키오라는 존재를 온전히 새롭게 출발시키기에는 추진력이 다소 부족했던 한계를 극복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35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 메이저 OTT 독점 제공 작품이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의 도전은 감독이 놓지 않는 예술적 도전과 어긋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거액의 자본을 끌어들여 상업성에 그치지 않는 모험을 끈덕지게 시도하는 감독의 지치지 않는 행보에 경의를 표해야 할 테다. 고전의 반열에 등극한 바람에 박제가 되어버릴 위기에 놓여 있던 피노키오 이야기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손길에 의해 비로소 2022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정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Guillermo Del Toro's Pinocchio
2022|미국, 멕시코, 프랑스|다크 판타지, 애니메이션, 뮤지컬, 전쟁
2022.11.23. 개봉|2022.12.09. 공개|117분|전체관람가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구스타프슨
주연 그레고리 맨(피노키오 역), 이완 맥그리거(세바스티안 J. 크리켓 역),
      데이비드 브래들리(제페토 역)
출연 론 펄만(포데스타 역), 틸다 스윈튼(푸른 요정/죽음 역),
      크리스토프 왈츠(볼페 백작 역), 케이트 블란쳇(스파차투라 역),
      팀 블레이크 넬슨(검은 토끼들 역), 핀 울프하드(캔들윅 역),
      존 터투로(의사 역), 번 고먼(목사 역), 안테아 그레코(포데스타 부인 역),
      톰 케니(베니토 무솔리니/선장 역)
원작 카를로 콜로디
음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배급 넷플릭스
스트리밍 넷플릭스
 
2022 13회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
       애니메이션부문 음악상(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애니메이션부문 주제가상(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외)
2022 애틀란타 영화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그레고리 맨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카를로 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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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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