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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신 신부를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평양축전에 참석차 참석한 임수경양, 사제단은 어린 양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선택했다.(사진은 판문점으로 귀환하고 있는 문신부와 임수경양)
▲ 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신 신부를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평양축전에 참석차 참석한 임수경양, 사제단은 어린 양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선택했다.(사진은 판문점으로 귀환하고 있는 문신부와 임수경양) 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신 신부를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평양축전에 참석차 참석한 임수경양, 사제단은 어린 양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선택했다.(사진은 판문점으로 귀환하고 있는 문신부와 임수경양)
ⓒ 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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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은 박정희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으나 앞선 전두환 정권과는 결이 달랐다. 6월 민주항쟁으로 국민의 정치의식이 한껏 고양되었고 여소야대(초기) 정국이어서 독재권을 행사할 계제가 못되었다. 여기에 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예정되었다. 

노태우는 1988년 7월 7일 대북정책 특별선언을 발표, 유화정책을 제시했다. 1989년 1월 동구 공산국가와는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평민당 의원 서경원의 방북, 3월 문익환의 방북에 이어 6월 30일 전대협 대표 임수경이 제3국을 통해 평양에서 열리는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잇단 방북소식에 한승헌은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보수(수구) 세력이 자기네가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방북사건을 국면전환의 기회로 삼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나는 남들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걱정이 되고 심란했다. 먼저 걱정이란, 문 목사님의 방북을 구실 삼아 막 힘겹게 진행되고 있던 '5공청산' 작업이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억압정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심란했던 이유인즉, 문 목사님이 귀환한 후에 벌어질 재판(변호)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문 목사님 사건의 변호를 맡는다는 것은 선임 여부가 새삼스러운 '자동 케이스'였다. 그럴 만한 사이였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주석 5)

문익환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보수언론들은 때를 만난듯이 연일 비난을 퍼부었다. 한승헌은 박원순ㆍ박용일ㆍ천정배ㆍ조승형ㆍ박병일ㆍ이경일 변호사와 함께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힘겨운 법정싸움을 전개하였다.

문익환은 검사에게 "나를 기소하지 말아달라. 만일 기소를 한다면, 7.7선언과 유엔 연설에서 북한을 동반자라고 한 노태우대통령의 공신력과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고 진술하였다.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 재판부는 10년, 항소심에서 7년을 선고하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변호인단은 재판부 기피신청 등 노력했으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임수경은 그를 데리러 미국에서 평양으로 간 문규현 신부와 함께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장에서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한승헌은 이번에도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나 '공안' 검찰과 한묶음이 된 사법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1심에서 임수경 징역 10년, 문규헌 8년. 항소심에서 두 사람 다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두 사람은 1992년 성탄절 전야에 석방되었다. 한승헌은 임수경의 변론을 맡았고,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는 사제간으로, 그리고 그의 결혼식 주례를 서는 것으로 인연을 맺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미처 마치지 못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한승헌 변호사님을 만났다. 이번에는 교수와 학생의 입장으로였다. 2학점짜리 '저작권론' 강의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분과 만날 수 있었다. 

변호사로서 그분은 피고인인 나의 무죄를 몇 번이고 강조하셨지만, 선생님으로서는 학생의 입장이 된 나의 학습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는지 최상급의 학점을 주지는 않으셨다. 사실 '저작권론' 수강 신청을 할 때 '설마 한승헌 변호사님이…'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아, 오해는 없기 바란다. 나는 한승헌 교수님께서 주신 학점에 대해 만족하고 있고, 내 학습 태도에 비해 과분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분은 어떤 입장에서건, 변호사건 선생님이건 간에, 공정한 입장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주석 6)


주석
5> <자서전>, 303쪽.
6> 임수경, <민족의 분단을 넘어>, <분단시대의 피고들>, 62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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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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