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철, 이청용, 기성용. 세 사람은 축구계의 오랜 절친이자, 201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한때 유럽무대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던 세 선수는 현재 태극마크는 내려놓은 상황이지만 나란히 K리그로 돌아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특히 구자철은 올해 열리는 카타르월드컵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11월 14일 KBS 1TV에서 방송된 2022 카타르월드컵 특집 <구자철, 나의 월드컵> 첫 회에서는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이 함께 월드컵과 국가대표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세 사람이 함께 방송에 동반출연한 것은 처음이라고.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던 세 사람은 이청용(울산 현대)→기성용(FC서울)→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의 순으로 K리그에 차례로 복귀했다. 구자철은 "친구들이 K리그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나도 가야할 시기가 돌아오는구나'라고 느껴져서 더 빨리 돌아온 것도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청용은 올해 소속팀 울산이 17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MVP까지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다. 기성용은 "이청용이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줬다"며 축하했다. 구자철은 "잘하고 못한 걸 떠나서 팬들을 만날 수 있고 두 친구와 함께 K리그에 설수 있어서 뜻깊은 1년이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FA컵 준우승을 기록한 기성용은 "사람들이 보기에 저희가 나이가 들었고 대표팀에서도 은퇴를 했기에, '쟤네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청용이가 '아직 우리는 할 수 있어'라고 보여준 것 같아서 뿌듯했다"고 고백했다. 이청용은 "K리그에 복귀한 후 지난 2년간은 목표를 못 이뤘는데 올시즌은 원하던 리그 우승을 이뤄서 더없이 특별한 한 해였다"고 밝혔다.

세 친구가 함께 한 세 번의 월드컵

세 친구는 2010년대에 겪었던 세 번의 월드컵을 함께했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나란히 2010 남아공 대회에 처음으로 월드컵에 함께 출전하여 주전으로까지 활약하며 한국축구의 사상 첫 원정 16강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구자철은 당시 최종엔트리에서 아깝게 탈락하며 함께하지 못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최종훈련지인 오스트리아에서 돌아가야 했던 친구 구자철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기성용은 "잔인한 상황이었다. 그때 당시에 위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한다고 위로가 될까 싶었다"며 마음아팠던 순간을 떠올렸다. 

정작 구자철은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종예선에도 거의 참가하지 못했다. 물론 탈락해서 기분도 좋지 않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내가 가야하는건데'라는 분한 감정은 아니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TV로 동료들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나도 월드컵 뛰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졌다"라고 밝혔다.
 
남아공대회에서 이청용은 2골, 기성용은 2도움을 기록하며 허정무호의 월드컵 16강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두 선수는 '쌍용'이라 불리우며 20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에 당당히 대표팀의 주축으로 우뚝 섰다. 구자철은 친구지만 같은 선수로서 존경심을 드러내며 어린 나이에 그토록 좋은 경기력과 안정감을 보여줄수 있었던 비결을 궁금해했다.
 
기성용은 월드컵 당시 "전날 잠을 거의 못잤다. '큰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경기장에 갔는데 주변에 한국 응원단들이 많이 오신 것을 보고 정신이 확 들더라"고 회상했다. 이청용은 "남아공월드컵 당시 준비과정이 너무 좋았다. 팀이 자신감에 차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청용은 박지성-이영표 등 2002세대 형님들이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준 가운데, 월드컵을 앞두고 강팀들과의 친선평가전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청용은 남아공월드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그리스전을 꼽았다. "그리스전을 이기고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조금 흘렸다. 우리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어릴때부터 꿈꿔왔던 무대였기에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월드컵은 모든 축구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다. 기성용은 "처음 나갔을때는 정신이 없었다. TV에서 보던 선수들과 경기하니까 신기한 느낌이 들면서 내가 월드컵을 뛰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났다"며 "많은 국민들이 이 경기를 보고 있다는 부담감도 컸다. 지나고 나니까 어린 시절보다 꿈꿨던 무대를 밟았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구자철은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의 아픔을 딛고, 약 반년 후인 2011 아시안컵에서부터 쌍용과 함께 대표팀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당시 대회 득점왕까지 차지했기에 구자철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대회였다.

대표팀은 아쉽게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3위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한국축구의 간판인 박지성과 이영표는 이 대회를 끝으로 후배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명예롭게 은퇴했고, 이후로 대표팀의 주축은 세 절친과 손흥민의 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청용은 "당시 구자철을 워낙 컨디션이 좋고 날카로웠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철이에게 하나만 걸리면 돼'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기성용은 "경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생각을 읽는 듯한 느낌의 선수들이 있다. 아시안컵 당시 그 중심에 자철이가 있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한국축구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은 영국 연합팀과 일본 등을 꺾고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의 신화를 달성했다. 이청용은 나이제한과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기성용과 구자철은 홍명보호의 주축으로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기성용은 앞서 2008 베이징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당시에는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을 겪은 바 있다. 기성용은 "어렸을 때 첫 올림픽에 나가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정말 잘하는 선수가 많구나 싶었다"며 "런던올림픽에서도 목표는 메달이라고 했지만 과연 가능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을 마치고 나서 뭔가 '도전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주장이었던 구자철은 "자신있었다. 런던올림픽팀은 저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팀이었다. 그 팀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누구 한명이 아닌 모든 선수가 120%의 역할을 했던 대회"라며 뜨겁고 감동적이었던 런던올림픽을 회상했다.
 
하지만 2년 뒤 열린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세 선수에게 상처로 남았다. 이 대회는 세 친구가 모두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지만 대회 전부터 각종 논란과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끝에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특히 구자철에게는 지금도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싫어하는 트라우마라고.
 
구자철은 브라질월드컵에 대하여 "그 대회를 떠올리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후회와 수치심까지 느낄 정도로 너무 많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며 "누구 한 명의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한 제 모습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아직도 브라질월드컵을 생각하면 제 안에 풀지 못한 큰 숙제가 남은 기분"이라고 아쉬워했다.
 
당시 대표팀은 최종예선을 통과한 뒤 최강희 감독이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부임한지 1년만에 월드컵에 나서야 했다. 이청용은 "만일 정상적으로 세대교체가 잘 되고 홍명보 감독이 좀더 일찍 팀을 맡아서 준비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이청용은 "좋은 성적이 나오기 불가능한 상황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나마 팀분위기나 단합은 어느 팀과 비교해서도 자신있었기에 그거 하나믿고 월드컵에 도전했다"고 주장했다 .
 
이청용은 대표팀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선수들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경험한 스태프들은 시행착오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남아서 대표팀을 계속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홍명보호에게도 반전의 기회는 많았다.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이근호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경기 막판에 뼈아픈 동점골을 허용하며 1-1로 비겼다. 당시 대표팀이 의리축구와 박주영 특혜 논란 등으로 가볍지 않은 여론과 팀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을 치러야 했다. 구자철은 이에 대하여 "선수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를 치르기에는 정상적이지 못했다. 준비과정부터 참 힘든 월드컵이었다"고 회상했다.
 
홍명보호는 2차전에서 알제리에게 전반에만 세 골을 먹히는 대참사 끝에 2-4로 완패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알제리를 '1승 제물'로 취급했지만 기성용은 "한번도 알제리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프리카팀과의 경기는 늘 어려웠다. 월드컵에서 어떤 팀을 만나든 쉽게 생각하고 나간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한 장면에 대해서는 "월드컵을 처음 경험하는 선수들이 많다보니 중압감 때문에 가진 실력을 100%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당시 0-3로 끌려가던 알제리전 하프타임 분위기는 침통했다고. 이청용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청용은 "경기를 하면서 계속 전광판을 본 이유가, 이러다가 골을 더 먹을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더라. 뭔가 수습이 전혀 되지 않는 경기였다. 처음부터 두드려맞고 시작하니까, 차라리 이 경기를 빨리 끝내고 다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고백했다.
 
구자철은 "주장으로서 중압감이 굉장히 컸다. 돌이켜보면 진짜 어렸던 거다. 아플때는 쉬었어야 했는데 몸이 정말 안 좋은 상황에서도 주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알제리전이 끝나고 대표팀을 향한 많은 비판성 기사와 댓글이 쏟아졌다. 구자철은 "지금은 안 볼 것 같은데 그때는 다 찾아봤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기성용은 "축구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건 수용하지만,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실패의 요인을 찾으려고 하니까, 선수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벨기에전에서는 상대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이청용은 "선수들이 조급함 때문에 내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 상대는 경험이 많고 강한 선수들이었다"며 "저희도 좋은 찬스를 몇 개 만들었지만 너무 서둘러서 경기를 망쳤다"라고 반성했다.

2010 남아공대회에서 원정 16강을 이뤄내며 금의환향했던 대표팀은, 4년뒤 브라질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굴욕을 안고 귀국한 뒤에는 공항에서부터 '엿세례'를 받았다. 이청용은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그때 그 마음은 어떻게 표현이 안 된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삶이 무기력해지더라"고 회상하면서도 "그래도 또 다음 대회가 있으니까 계속 달려가야만 했다"고 밝혔다.

기성용은 당시 홍명보 감독에게 모든 비판의 화살이 돌아갔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아직도 감독님이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월드컵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때 우리가 잘했더라면 감독님도 그렇게까지 비난받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못했는데 모든 책임을 감독님이 받았다"라고 아쉬워했다. 
 
2010년대 한국축구의 흥망성쇠를 모두 함께했던 스타 선수들이 들려주는 대표팀의 뒷이야기와 솔직한 감정들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2회에서는 2018 러시아월드컵의 추억과 함께 밖에서 바라본 대표팀의 카타르월드컵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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