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부산 BNK가 용인 삼성생명의 독주를 저지하고 연승 가도를 달렸다. 박정은 감독이 이끄는 BNK는 11월 9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WKBL) 삼성생명과의 원정경기에서 84-62로 대승을 거뒀다. 개막 3연승을 달리던 삼성생명은 첫 패배를 당했다.

이날 경기는 혼혈 해외동포 출신 선수들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BNK의 베테랑 김한별은 외국국적 동포 출신으로 한국여자농구에 진출한 선수 중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김한별은 한국 진출 이후 법무부의 체육 우수인재 특별귀화 절차를 거쳐 현재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국가대표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삼성생명은 바로 김한별의 친정팀이기도 하다. 김한별은 삼성생명에서만 무려 12년을 활약했고, 지난 2020~2021시즌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한별은 지난 2021년 5월 삼각 트레이드로 정든 삼성생명을 떠나 BNK의 유니폼을 입었다.
 
공격 나서는 키아나 스미스 10월 31일 경기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하나원큐 여자농구단과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2쿼터 삼성생명 키아나 스미스(오른쪽)가 공격에 나서고 있다.

▲ 공격 나서는 키아나 스미스 10월 31일 경기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하나원큐 여자농구단과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2쿼터 삼성생명 키아나 스미스(오른쪽)가 공격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키아나 스미스는 WNBA(미국 여자프로농구) 출신의 화려한 경력으로 시선을 모으며 지난 9월 열린 2022~2023시즌 WKBL 신입선수선발회(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당당히 전체 1번으로 삼성생명에 지명됐다. 신인이지만 이미 즉시전력감으로 꼽힌 키아나는 예상 대로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키아나는 지난 10월 31일 하나원큐와의 개막전에서 21점(4리바운드 5어시스트)을 기록하며 WKBL 역대 신인선수 데뷔전 최다득점 기록(종전 5점)을 단숨에 경신할 만큼 월등한 클래스를 과시했다. 시즌 두 번째 경기인 신한은행과 경기에서도 3점슛 2개를 포함해 14득점을 3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했고, 3차전인 KB전에서는 14점 9리바운드 8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급 활약을 선보였다. 김한별이 이적한 이후 지난 2021-2022시즌 우승팀에서 5위로 급추락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했던 삼성생명은, 키아나의 활약을 앞세워 개막 3연승을 질주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포지션과 역할이 달라 직접 매치업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혼혈에 외국동포 출신이자 팀의 핵심선수라는 연결고리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비교대상이 됐다. WKBL에서의 경력과 업적은 김한별이 월등하지만, 키아나는 세계 최고의 리그인 WNBA 출신이라는 화려한 위상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두 선수의 첫 맞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 김한별은 무려 22득점 13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뼈아픈 일격을 가했다. 반면 키아나는 고작 4득점에 그치며 올시즌 4경기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에 실패했다.

'건강한 김한별'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준 경기였다. 김한별은 BNK 이적 첫 시즌 부상과 수술 등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어느덧 노장의 반열에 접어들며 체력적으로 힘든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체계적인 몸관리를 통하여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했다는 평가다.
 
주장의 한마디 10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 타이틀스폰서 조인식 및 미디어데이. BNK 썸 김한별이 발언하고 있다.

▲ 주장의 한마디 10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 타이틀스폰서 조인식 및 미디어데이. BNK 썸 김한별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한별은 초반부터 힘의 우위를 살려 골밑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며 1쿼터에만 이미 두 자릿수 득점(11점)을 올렸다. 2쿼터 이후로는 리바운드와 스틸 등 궃은 일에 전념하며 필요할 때는 골밑 공격으로 자유투를 얻어내거나 3점슛까지 성공시키는 등 공수 양면에서 모두 활약했다.
 
BNK는 김한별의 활약을 앞세워 이날 리바운드 싸움에서 40-22로 삼성생명을 압도했다. 여기에 이소희가 22득점, 안혜지는 20득점에 무려 13어시스트를 올리는 등 총 5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고르게 활약했다. 김한별이 내외곽을 넘나들며 묵직하게 팀의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도 수월하게 풀렸다.
 
반면 키아나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21분 7초를 뛰면서 6개의 야투를 시도했지만 고작 2개를 성공시키며 4득점에 머물렀고 3점슛 2개는 모두 실패했다, 어시스트는 3개, 리바운드 1개를 추가했지만 2쿼터에 부상을 당하여 출혈이 발생하는 악재도 있었다. 삼성생명은 점수가 벌어진 후반에 키아나를 투입하지 않았다.
 
단지 1패보다도 '키아나 공략법'이 처음 드러났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BNK는 이소희와 안혜지를 번갈아 매치업시키면서 키아나를 거칠게 압박하자 평소와 달리 힘을 쓰지 못했다.

키아나는 동포지션에서 일반적인 국내 선수들보다 우수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아직 동료들을 활용하는 오프더볼 무브나 2대 2플레이에 능숙한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좋게 말하면 간결하고 효율적인 플레이에 능하지만, 반대로 경기가 안 풀릴 때는 활동량과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약점으로 작용하는데 팀 디펜스에서 자신의 마크맨을 놓치거나 스크리너의 강한 저지를 당했을 때, 끈질기게 따라붙지 않고 수비를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있다. 상대팀도 이를 노려서 2대 2 공격을 할 때 키아나 쪽를 '구멍'으로 여기고 공략하는 듯한 장면도 나왔다. 오죽하면 상대팀인 박정은 감독도 "키아나의 약점은 몸싸움을 싫어한다는 것"이라고 대놓고 지적할 정도다.

물론 키아나가 이날 삼성생명의 가장 중요한 패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삼성생명은 키아나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팀플레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최악의 경기력이 나왔다. 키아나가 아직까지 23살에 불과한 젊은 선수이고 이제 갓 한국농구에 적응중인 신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3연승 기간 동안 삼성생명은 평균 80점대에 육박하는 화려한 공격농구를 펼쳤고 그 중심에는 키아나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골밑은 그리 강하지 않고 속공과 외곽슛에 의한 득점비중이 높은 편이다.

한 시즌에 같은 팀들이 여러 차례 맞붙는 WKBL에서는 BNK처럼 팀 상성이 좋지 않거나 앞으로 맞춤형 수비전략을 들고 나오는 팀들을 상대해야 한다. 키아나도 경기를 거듭하면서 장단점이 하나둘씩 상대팀들에게 분석당하고 있는 중이다. 키아나와 삼성생명의 본격적인 시험무대는 어쩌면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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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나스미스 김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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