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씨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행님아'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인생의 여러 감정을 다 갖춘, 웃겼다 울렸다하는 게 참 좋았어요. 뭘해도 연기자로서 훌륭하겠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박찬욱은 말한다. 김신영은 "불세출의 천재"라고. 박찬욱 감독은 그래서 영화 <헤어질 결심>에 김신영을 캐스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박 감독은 tvN <유 퀴즈 온더 블럭>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생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하게 코미디 연기를 펼쳐내는 '희극인' 김신영을 상찬한 바 있다. 그 '배우' 김신영이 칸 감독상 수상작 출연에 이어 또 하나예상치 못했던 꿈을 이루게 됐다.
 
故 송해 선생님의 뒤를 잇는, 전국노래자랑 후임 MC를 신영이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간 쌓아오신 전통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진행하겠습니다!" 든든한 포부를 밝힌 신영이에게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29일 '비보티비' 소셜미디어

29일 오후 6시 40분, KBS발 '속보'가 떴다. 데뷔 20년을 맞은 '방송인' 김신영이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낙점, 10월 16일 첫 방송을 앞두게 됐다. 대한민국 전 매체가 발빠르게 이 소식을 전했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구구장창, <아침마당>, <전국노래자랑>, 그리고 <노래가 좋아>. 나 이거 3개면 끝이다. 트로트 가수들의 큰 무대에 다 섰다."

비보티비가 공유한 영상 속 김신영의 '부캐'인 '다비이모' 김다비는 특유의 사투리로 이렇게 공언하고 있었다. 지난 2020년 5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김다비의 너스레였다. 그랬던 김신영은 이제 출연자가 아닌 진행자로 고 송해 선생의 빈자리를 채우게 됐다. 그 너스레가 자가 발전해 운명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다비 이모'의 꿈은 현실이 된다 
 
'빼고파' 김신영 김신영 코미디언이 29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KBS 2TV 신규 예능 <빼고파>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빼고파>는 연예계 대표 유지어터 김신영과 다이어트에 지친 언니들이 함께하는 건강한 몸만들기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다. 30일 토요일 밤 10시 35분 첫 방송.

코미디언 김신영. ⓒ KBS

 
환영과 호평 일색이었다. 오래간만에 접한 가장 유쾌하고 반가운 소식이란 의견들이 실시간으로 쌓여갔다. 일요일마다 부모님 성화에 마지못해 볼 수밖에 없었다던 <전국노래자랑> 본방을 사수하겠다는 이들이 넘쳐난다. "최상의 선택", "적임자"란 찬사는 기본이다.

<전국노래자랑>이 어떤 예능 프로그램인가.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요일 귓가를 울리는 그 '시그널'을 모르는 이가 없는, 아니 외국인들마저 종종 출연하는 전국민의 예능이요, 일찍이 '영화인' 이경규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했고 34년 간 마이크를 잡았던 송해를 '국민 MC'로 만든 그 불세출의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가.

'나이 마흔'에 고 송해 선생의 뒤를 잇게된 김신영도 이를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터. 김신영은 이날 소속사를 통해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자라온 제가 후임 진행자로 선정되어 가문의 영광이다"라며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또 그는 "앞으로 전국 팔도의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열심히 배우겠다. 전통에 누가 되지 않게 정말 열심히 즐겁게 진행하고 싶다.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전국노래자랑>을 담당하는 KBS 김상미 CP 역시 캐스팅 배경에 대해 "김신영은 데뷔 20년 차의 베테랑 희극인으로 TV, 라디오뿐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계에서도 인정하는 천재 방송인이다"라며 "무엇보다 대중들과 함께 하는 무대 경험이 풍부해 새로운 전국노래자랑 MC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김신영 캐스팅 이전까지, 설왕설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존경 받은 선임 MC의 후임으로 누가 선정되느냐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프로그램이 가진 '올드 스쿨'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중년 이상의 남성 예능인이 바통을 이어 받는 식상한 그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김신영의 캐스팅이 탁월한 건 그래서다. 데뷔 20년을 맞은 남부럽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또 근래들어 다년 간의 라디오 DJ와 '셀럽 파이브' 활동을 포함해 남다른 대중 친화력을 자랑하는 보기 드문 여성 예능인이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 종영한 KBS <빼고파>를 통해선 멘토로서의 성숙함과 배려심, 친근감을 자랑하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이 남녀노소는 물론 외국인까지 출연하는 만큼 이러한 친화력과 친근감, 대중에의 소구력이야말로 송해를 잇는 국민 MC로서 요구되는 제1의 덕목일 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학기에 8번을 이사다녔어요. 아버지 사업이 안 좋아져서. 비닐하우스에서도 살아 보기도 했고요. 목포 외할머니랑 살때는 전라도 말도 습득했다가, 청도 할머니랑도 살았다가 혼자도 살았다가. 아빠가 너무 밉고, 옛날엔 너무 원망스러웠고, 아빠가. 집도 밉고 태어난 나도 밉고 존재 자체가 미웠는데.

이제는 그런 경험이 아주 큰 감사함으로 다가와요. 그 여러 조건들이 나에게 온 자양분이고. 환경 탓이 아니라 환경 덕분에 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것들이 제 코미디의 자양분이 된 거니까요." - 김신영, <유 퀴즈 온 더 블럭> 인터뷰 중에서


이러한 김신영의 자양분이야말로 삶과 인간의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전국노래자랑>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임을 예감케 한다. 또 하나. '부캐'인 '다비이모'의 활약상에서도 볼 수 있듯, 평소 전국 팔도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취미이자 습관이라 밝혔던 김신영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그런 관찰력의 소유자가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며 전국의 남녀노소와 만나게 됐다. 김신영이 벌일 갖가지 이벤트들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을 수밖에.

김신영이 가져다 줄 활력과 전복성

할머니들과 보낸 유년시절이 가져다 준 자양분과 특유의 관찰력은 일찍이MBC 예능 <세바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배출된 바 있다. 이후 남성 중심이던 예능 판에서 '송선배' 송은이와 '셀럽 파이브' 동료들과 함께 여성 예능인 시대를 열어 젖혔다.

'다비이모'라는 '부캐'가 소중한 건 그래서다. 이를 통해 김신영은 고정화된 중년 이상의 여성 이미지를 통쾌하게 요리하고 전복시킨 바 있다. 이 영리하고 영민한 전복성이 올드하고 고정화된 이미지가 역력한 <전국노래자랑>을 신선한 방향으론 변화시키리라 기대하게 된다.

김신영은 일찍이 몇몇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7살 때 아버지의 성화로 오빠와 함께 <전국노래자랑>에 출연, 혜은이의 '열정'을 불렀던 일화를 소개하곤 했다. 12시간을 댄스 트레이닝한 끝에 무대에 올랐지만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잘보이겠다며 '오버'를 했고, 결국 '땡'을 받고선 '통편집'됐다는 슬프고도 웃긴 일화였다. 이후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 출신 연예인'으로 손꼽혀왔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 이다. 그 '7살' 김신영이 이제 불혹이 됐고, <전국노래자랑> MC로 낙점됐다. 그런 김신영을 두고 유재석은 "세상과 맞짱 뜨며" 살아온 후배라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책임감이 참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 온 이가 아니라 이전 세대를 지나온 '선생님'들이 진행해야 만 할 것 같던 이 '전국민 노래쇼'에 김신영이 어떤 전복성을 가미할지, 어떤 활력을 불러 넣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신영 송해 전국노래자랑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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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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