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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가운데), 왼쪽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오른쪽 김병기 심사위원.
 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가운데), 왼쪽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오른쪽 김병기 심사위원.
ⓒ 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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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소

지난 18일, 서울 종로1가 한 밥집에서 롯데장학재단 허성관 이사장 퇴임 송별연에 참석했다. 시골의 한 서생이 그 모임에 초청받은 것은 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 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를 더듬더듬 찾아가자 바로 60년 전인 1960년대 초 고교시절 내가 신문배달을 했던 동아일보 종로보급소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날 약속시간 정각 12시가 되자 주빈인 허성관 이사장이 도착하셔서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새 그분으로부터 여러 차례 식사 대접을 받아 낯익은 처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날따라 장소 탓인지 고교 시절에 본 어느 할아버지를 떠올리케 했다.

1960년대 초 당시 나는 동아일보 종로구 누하동 배달원이었다. 그 동네 어귀 오거리에 군고구마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분은 당시 70대 할아버지로 누하동 오거리 어귀에서 드럼통 군고구마 화로 안에 연탄불을 피운 뒤 고구마를 구워 동네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 할아버지는 구운 고구마가 얼른 식지 않게, 또는 당신 손이 찬바람에 곧지 않게 군용 담요로 화로를 덮고는 그곳에 손을 넣고 추위를 견디며 지냈다.

그 군고구마 할아버지와 가장 친한 이는 그 동네 신문배달원들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우리 신문 배달원의 이름 대신에 "동아야" "조선아" "한국아" "경향아"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신문을 독자 집 대문 틈으로 넣다가 손이 몹시 시리면 그 군고구마 할아버지 화덕으로 가서 잠시 손을 녹이고는 다시 배달했었다.

그때 마다 할아버지는 전혀 싫어하는 내색 없이 담요 속에서 당신의 손을 빼고는 그 자리를 우리들의 손을 넣게 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당신 군고구마를 맛보여 주었는데 꿀맛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늘 털모자를 썼는데 그 후덕한 인상과 인심이 아련하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물가물 남아 내 바로 앞의 허성관 이사장 얼굴에 겹쳤다. 내눈에는 허 이사장님이 영판 그 후덕한 군고구마 할아버지로 보였다.
  
허성관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허성관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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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은 하되 간섭치 않겠다"

2019년 연말 두 제자가 망년회를 겸해 점심을 나누자고 정부종합청사 뒤의 한 밥집으로 청한 적이 있었다. 한 제자는 당시 민화협 김홍걸 대표상임의장이었고, 또 다른 한 제자는 그 무렵 통일부 백태현 전 대변인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홍걸 상임대표가 내게 민화협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장학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라면서 나에게 심사위원 직을 부탁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펄쩍 뛰었으나 이미 그는 나의 전력을 손금 보듯이 되뇌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중국대륙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항일유적지도 일일이 답사 하셨습니다. 그동안 그와 관련 여러 권의 책도 펴내셨고, 여러 항일명문가도 드나드신 걸로 압니다.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제가 다른 어른 들에게 자문해도 적격자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자가 도와달라는 말에 나는 더 이상 거절치 못하고 "알겠네"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얼마 뒤인 2020년 2월 19일, 서울시청 옆 한 밥집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장학사업 심사위원 합동 모임에서 허성관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그날 그 자리에서 허 이사장은 딱 한 마디만 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그날 이후 이제까지 몇 차례 더 만났다. 그때마다 수고한다고 식사대접을 받았지만 그 흔한 쪽지 한 장 전달받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조차도 해마다 예산 심의 때면 난무한다는 그 쪽지 말이다. 그분인들 집안 친인척, 고향 선후배, 학교 선후배의 청탁이 없었겠는가?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금은 국내 최고 액수로 연 6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독립유공자 후손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유공자 후손도, 그리고 독립유공자 후손의 범위도 증손 현손(고손)까지 넓히겠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도 그 범위를 확대하겠다 등 명실상부하게 체제와 이념을 뛰어넘는 그동안 국가가 미처 하지 못한 통 큰 보훈을 하겠다고 그 범위를 대폭 확대시켰다. 2020년 출범 이후 2022년 제3회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생 선발까지 해마다 금액도 대상 장학생 수도 계속 확대 발전시켜왔다.

그리하여 그동안 선발한 장학생은 모두 137명으로, 국내 대학생 98명, 대학원생 13명, 해외 26명이었다. 다만 남북관계만은 진일보되지 않아 북녘 독립운동후손 장학생은 여태 선발치 못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심사 장면(왼쪽 왼편부터 심옥주, 박도 심사위원,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원희복 심사위원, 김민아 민화협 간사, 건너편 왼편부터 김병기, 김진 심사위원, 이종찬 심사위원장, 김삼웅 심사위원, 이시종 만화협 사무차장)
 독립유공자 후손 심사 장면(왼쪽 왼편부터 심옥주, 박도 심사위원,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원희복 심사위원, 김민아 민화협 간사, 건너편 왼편부터 김병기, 김진 심사위원, 이종찬 심사위원장, 김삼웅 심사위원, 이시종 만화협 사무차장)
ⓒ 민화협 /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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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통일로 가는 길에 큰 일꾼이 되시기를

나는 지난 3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바, 그분은 흔히 말하는 '진국'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발탁한 특산품 인재였다고 말하고 싶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절감케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기였던 2003년 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해양수산부장관과 행정자치부장관을 지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가의 말처럼 이제 당신의 임기를 마치는 이즈음에, 이종찬 심사위원장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동의로 이날 퇴임 축하연 모임을 가지게 됐다.

이날 민화협에서 마련한 "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걸어가시는 모든 길도 봄처럼 따뜻한 길 되시기를 빕니다"라는 현수막의 문구가 빈 말이 아니기를 기도 드렸다.

당신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열차로 돌아오면서 내내 통일 조국으로 가는 길에 큰 일꾼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태그:#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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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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