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OTT 전성시대에 도착한 지독히 '영화적'인 체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산업은 몰락할 것이라는 견해가 대두했다. 1/10 수준까지 위축된 극장 관객 수는 특히 한국처럼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에겐 재앙과도 같은 파괴력으로 다가왔고 산업이 고사할 것이라며 대책을 호소하는 비명이 관련 매체에 틈날 때마다 올라왔다. 반면에 기형적으로 '천만 영화' 상업성에만 기대온 체질 문제를 거론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물론 금방 잊히긴 했지만.
 
2022년 들어 상반기를 결산해보면 천만 영화의 부활과 함께 코로나 이전 절반 정도까지 회복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복잡하다. 흥행의 양극화는 극단적으로 벌어졌고 메울 방도는 전혀 시도되지 않았다. 코로나19에 데인 교훈은 별로 보이지 않고 그 사이에 극장 티켓 가격은 대기업 체인을 중심으로 대폭 인상되었다. 흥행되는 영화 또한 기존의 한국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스크린 독과점과 마케팅에 특화된 작품들이다. 다만 명확한 특징이라면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볼 맛' 나는 작품이란 평판이 수반되는 점이다. <범죄도시 2>나 <탑건: 매버릭> 같은 대표 흥행작들의 감상평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다.
 
왜 훨씬 경제적이고 선택권 많은 안방에서 OTT 관람기회 대신 비용도 많이 들고 여러 불편함이 수반되는 극장 상영을 고수하는 걸까.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예술 향유가 더 들여야 할 수고와 비용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피부로 느껴지는 인상폭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연극이나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등에 비해선 확연히 영화는 저렴하게 누릴 수 있다. 또한 집에 아무리 대형 텔레비전이 보급되었다고 해도 극장 스크린에 비길 순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차원이 다른 암막효과가 어우러진 고해상도 이미지, 그리고 전 방위 사운드가 가져오는 '체험'의 차이는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의 경쟁력을 담보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극장 영화의 매력은 주로 '테크니컬'한 측면에 국한되어 논해지곤 한다. 마블 영화들이 일종의 거대한 테마 파크라는 비판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는 게 안방과는 차별화되는 이런 측면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작은 예산과 소규모의 독립예술영화는 이런 흐름에서 유리될 수밖에 없는 걸까? 하지만 블록버스터들의 생존전략인 '규모의 경제'와는 차별화된 '영화적' 접근법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이런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며 적용할 사례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 안테나에 한 편이 또 걸렸다. <초록밤>이란 작품이다.
 
 영화 <초록밤> 메인 포스터 이미지

영화 <초록밤> 메인 포스터 이미지 ⓒ ㈜인디스토리

 
2_'작은 영화'의 사려 깊은 매력 속으로
 
윤서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초록밤>은 고단한 삶을 하루하루 견뎌내는 한 가족에게 며칠간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 마치 그 시공간을 초록색 미궁 속에 가둬놓은 것 같은 감각적 체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한 편이었던 본 작품을 홍보하는 내용들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단연 '영화적'이라는 수식어다. 하지만 그냥 들으면 대관절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평판이기도 하다.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선 일단 영화를 직접 보고 체험해야만 도달 가능할 것이다. 혹여나 '촉'이 예민한 이들이라면, OTT의 전성시대에 역행해 극장에서 소개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세팅을 맞춘 영화라고 추정할 것이다. 크게 어긋나지 않는 혜안이다.
 
감독은 원래 한 가족의 역사가 꼼꼼하게 정리된 이야기를 펼치려 했다고 한다. 그를 위해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70쪽 분량의 시나리오를 집필했지만, 정작 완성된 영화는 30쪽 남짓, 컷은 100개 조금 넘길 만큼 더 줄이기 힘들 만큼 체지방 비율을 줄인 듯한 결과물로 드러났다. 한 시간 반이란 극장용 영화 평균 상영시간에 거의 딱 근접한 장편 분량을 채우기엔 꽤나 빠듯한 편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 정도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다 보고나니 오히려 좀 더 길었더라면 하는 역설적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의 수수께끼 같은 제목은 시청각적으로 접근한다면 정말 딱딱 맞아떨어지는 찰떡 같은 궁합이다.
 
구구절절한 설명적 전개를 가능한 배격하는 대신에 영화는 고도로 이미지 중심의 전개를 통해 관객에게 서사의 빈자리를 직접 상상하며 채우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감독이 기대했던 효과는 (상영환경 괜찮은 극장에서 내외적으로 안정된 상황 아래 관객이 집중해서 관람 가능하다면) 꽤 성공적인 결과라 자부해도 좋을 만큼 결과물로 완성되었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일까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글을 읽기보다 개봉날짜에 맞춰 극장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3_삼각형처럼 절묘한 균형의 세 가족 이야기
 

<초록밤>은 상징과 암시, 미장센의 효과들에 주안점을 두고 완성된 영화다. 그래서 충실한 설명과 이야기 서사보다는 흐름에 오감을 집중해 추상적으로 소화해야 할 작품에 속한다. 하지만 당초 설명한 대로 원래는 전통적 형태의 이야기 서사로 기획되었던 만큼 내러티브 구조가 충실한 편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까지 세 식구는 각자의 사연을 영화 초반 차례로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그들 각자가 가진 개별 캐릭터 개성은 물론 주인공들에게 이후 가해지는 심리적 부담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를 갖고 예측해나갈 수 있게 된다.
 
<1> 아버지, 아파트 경비원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그는 이 시대의 고개 숙인 무기력한 가장이다. 인생 살면서 좋았던 시절은 딱히 없어 보인다. 평범하게 남들 하는 건 다 하지만 누릴 건 별로 못 누리며 근근이 견뎌온 삶을 지나왔을 그는 관객에게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그저 무색무취한 것 같지만 쓸데없는 고집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캐릭터다. 아내건 아들이건 그의 화장실 사용습관에 화를 내거나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중장년층에게 흔히 보이는 별것 아닌데 절대 안 고치는 버릇이 역력하다. 한번 박힌 습관과 담배는 절대 끊지 못한다. 아무리 손해 보고 역정을 들어도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끙끙 앓아가면서도 골치 아픈 일은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다. 그런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은 관객에게 자신의 가족 혹은 친척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덧씌울 것이다.
 
<2> 어머니, 전업주부이자 가정의 수호자
 
어머니는 무기력한 가장과 늘 티격태격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늘 무능력한 남편을 질타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별다른 대안을 찾지는 못한 채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무엇 하나 뾰족한 구석이 없는 남편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떠받쳐온 살림꾼이기도 하다. 남편이 부친과 감정적 대립으로 왕래를 끊다시피 하면서도 그 원인이 된 이유에 대해선 우회하려고만 할 때도 결국 그녀가 총대를 메고 해결을 떠맡는다. 상을 치를 때 역시 그렇다. 그런 일상의 반복은 어머니를 항상 지치고 짜증나는 상태로 이끈다. 마치 혈압 평균치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3> 아들, 식물처럼 바람에 부유하는 어떤 세대의 초상
 

여기에 30대 아들이 있다. 저임금에 열악한 처우로 알려진 장애인 활동지원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호봉제 우대를 받거나 승진할 기회는 없는 전형적인 직종이다. 그런 일에 종사하는 아들은 또 전형적인 '초식남'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에겐 사귄 지 8년 된 애인이 있지만 '우리 언제 결혼해?'라는 애인의 질문에 그는 그저 장난스럽게 넘길 뿐, 진지한 대답은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사방에서 지인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와중에도 그는 덤덤하게 그러려니 할 뿐, 별다른 장래 계획을 말하는 적이 없다. 일을 할 때는 친절한 말투와 성실함을 유지하지만 그 외의 일상에선 말수도 적고 소극적이다. 꼭 해야 할 일은 챙기지만 그 이상은 더 나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4>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타 인물들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가족에겐 고모들이 있다. 하지만 평소엔 그리 친하거나 우호적이진 않은 듯 보인다. 아버지의 아버지, 즉 그녀들의 부친이 별세하는 바람에 상을 치르면서도 그들은 다투거나 속물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조의금 계산과정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아버지의 시골집을 처분할 궁리는 우리가 주변 장례 과정에서 당연하듯 지나치는 세속적인 풍경이다. 돈 봉투를 계산하며 점점 활기를 찾아가는 고모의 풍부한 표정이나, 연인과의 결혼이라는, 당장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이지만 주변의 친구들과 비교해 가면서 포기하지 않는 애인의 존재 역시 짧은 분량에 효과적으로 세태를 묘사하는 활용도를 보인다.
 
4_'초록'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작가적 야심의 결실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될 법한 평범한 이들의 군상을 조합해 꽤나 흥미로운 관찰을 선보인다. 세 명의 개성 확실한 가족 구성원을 통해 구체적 설명 없이도 영화는 1997년 IMF 이후 한국의 서민가족이 경유해 왔을 법한 소시민의 일상사를 압축해놓는다. 부모는 평생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을 테다. 그들은 주변 어른과 사회적 요구에 맞춰 나이 차면 결혼하고 정부시책에 따라 납세 등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사소한 일달 외에는 법 없이도 살 법한 그런 존재들이다.
 
부모세대는 그렇게 평생 묵묵하게 성실히 일해 왔지만 결국 자기 집 한 채 건사하지 못하고 세 들어 사는 처지를 한탄한다. 경조사를 치르기 위해 차로 이동하던 중 어머니는 사방에 다 신축 아파트단지인데 왜 우리 집은 저기 없을까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들은 하지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아쉬워한다. 급한 형편에 팔아치웠을 텐데 그들이 겪어 왔을 1997년과 2008년 중 어느 순간을 견디지 못한 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기회를 얻었지만 이들은 반대로 날려버린 셈이다. 그리고 다시 회복하지 못한 채 노년에 이르렀다. 이들에겐 더 이상 새로운 기회는 없을 테고, 지금 유지하는 형편이라도 이어가는 데 급급해야 할 상황이다.
 
반면에 아직 살날이 잔뜩 남아 있지만 자녀세대는 장래에 대한 야망을 잃어버린 채다. 특별히 더 나아질 조건이 아닌 장애인 활동지원사(활동보조인)를 주업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들 역시 다른 진로를 모색했을 테고 거기에서 실패를 겪거나 좌절했을 법하다. 활동지원을 수행할 때 그의 태도는 별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만큼 그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 역시 게으르거나 안일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그는 이렇게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는 걸까?
 
이 가족과 친척들의 상태는 과거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쳤던 현대 한국가족의 해체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영화 속에서도 이미 형식적 의미, 추가로 부모세대의 재산관리 용도 외에는 이 핏줄 공동체는 허물어져가는 중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 가족의 작은 흥망성쇠는 아마도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 소시민들이 거쳐 왔을 거대한 시대 흐름의 축소판 그 자체일 것이다.
 
그 현재적 결말은 온통 죽음과 고립감, 상실과 권태로 점철되어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들 앞에는 이것저것 당황스러운 일이 적잖게 발생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세 가족에게 결정적 파국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숨은 장치와 전체적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흔해빠진 말초적 공포와는 다른 차원의 답답함을 전한다. 특히 죽음의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전염되듯 퍼져나간다. 마치 어두컴컴한 가운데 뿌옇게 보이는 정체불명의 움직임이 온전한 암흑보다 더 두렵기 마련인 것처럼 여름의 짙은 초록이 우리 통념과는 상반되는 색채로 다가오는 미장센은 일품이다.
 
'초록밤'이란 제목처럼 영화는 로케이션된 공간의 특성과 인위적 테크닉을 적절히 결합해 작품 전체의 시공간을 온통 짙은 초록의 컬러로 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대개 갖게 마련인 긍정적이고 편안한 초록의 느낌과는 거듭 말하지만 전혀 다르다. 마치 근세 초입에 부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지의 신세계에 상륙했던 소수의 백인 정복자들이 그곳에서 느꼈을 법한 원초적 불안에 가까울 테다. 기후도 풍토도 전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3세계 열대우림은 불순한 목적으로 들어선 이들에겐 싱그러운 생명의 기운 대신 녹색의 사막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 가득한 미궁 그 자체였을 테다. 그 비슷한 정서가 <초록밤> 속에는 가득하다.
 
5_사회비판 없이도 시대의 징후를 담는 데 성공한 영화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영화 <초록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스포일러가 될까봐 마음 놓고 이야기를 풀어낼 순 없지만 이 영화에는 3차례에 걸쳐, 그것도 영화의 시작과 중반, 후반에 반복되는 특정한 행위가 있다. 대상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통하는 시각적 이미지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점층법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 분명하다. 마치 중세 말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절 벽호로 그려지곤 하던 메멘토 모리의 재현과도 같은 풍경이다. 아마 본 작품의 가장 결정적으로 전해지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반복의 순간은 앞선 두 번과 달리 직접적으로, 그리고 롱-테이크로 담겨지는데 배우의 연기력과 화학적 결합을 이루며 연극의 클라이맥스처럼 극도의 집중력과 함께 '절정'의 찰나로 인상에 남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에다 추가로 인상에 강렬하게 남는 순간이라면 역시 장례식 풍경이다. 왕래도 드물고 사이도 좋지 않던 형제자매가 피치 못하게 한데 모이는 풍경 또한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하기는커녕, 조의금을 헤아리고 나누면서 보이는 극도의 속물근성으로 표현된다. 장례식 전후과정에서 발산되는 극한의 세태 풍자 역시 가족의 미래에 별다른 전망을 갖지 못함에도 마지막 미련으로 적당히 묘사하는 태도와는 결별을 선언하듯 냉철하게 그려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상당히 특이한 감정에 빠진다. 이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정치사회적 발언과 거리를 두고 있다. 괜히 등장인물들이 시청하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으로 시의적 내용을 등장시키지도 않을 정도로 초지일관한 태도다. 그렇지만 놀라울 만큼 영화에는 시대적 징후가 담겨 있다. 감독이 의도한 고도의 장치일 수도 있겠고, 관객이 사회적 존재로서 놓지 못하는 해석의 경로로 파생되는 효과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표현 방법론에 있어서 특출한 면을 가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섬세하게 계산된 균형감각으로 고도로 통합된 미술과 음악, 연기의 조합이 구현하는 <초록밤>의 기운은 연탄가스 마냥 천천히 숨쉬기 곤란해지는 권태로움으로 가득하다. 이런 죽음의 유혹은 안방 모니터로는 온전히 체감하기 어려워 보인다. 극장이라는 수용형태에 최적화된 이 영상 콘텐츠는 그런 측면에서 더없이 '영화적'이다.
 
<작품정보>
초록밤 Chorokbam
2021|한국|미스틱 시네마
2022. 7. 28. 개봉|89분|15세 관람가
감독 윤서진
주연 이태훈(아버지), 김민경(어머니), 강길우(원형)
출연 변은영(큰고모), 오민애(작은고모), 원미원(노인), 김국희(은혜) 외
촬영 추경엽
미술 신우정
사운드 하남규
음악 나가시마 히로유키
제작 디파이언트
배급 ㈜인디스토리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CGV아트하우스상/시민평론가상/CGK촬영상
2022 26회 판타지아영화제
2022 3회 해비타트국제영화제
초록밤 윤서진 감독 강길우 배우 이태훈 배우 김민경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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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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