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면 조금 배우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이 남긴 격언이다. 때로는 시련없는 순항보다 가치있는 좌절이 더 큰 성장을 위한 귀중한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창단 이후 첫 패배를 당한 '최강 몬스터즈'가 현역 시절의 승부욕을 다시 떠올리며 각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7월 18일 방송된 JTBC <최강야구> 7회에서는 최강 몬스터즈와 동의대의 2차전 경기가 펼쳐졌다. 고교팀들만 상대했던 몬스터즈가 만난 첫 대학팀인 동의대는, 1차전에서 비록 연장 승부치기 끝에 역전패했지만 아마추어 야구 특유의 스몰볼과 작전야구로 몬스터즈를 끈질기게 괴롭히며 '최강의 적'으로 부상했다. 양팀은 2차전에서도 중반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괴물같은 투수" 최윤서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JTBC <최강야구>의 한 장면. ⓒ JTBC

 
2-2로 맞선 동의대의 5회말 공격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묘한 전운이 감돌았다. 선발 송승준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유희관은 그동안 몬스터즈 투수들 중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에이스'로 인정받았으나, 이날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유희관은 선두타자부터 2루타를 내주며 무사에 득점권을 허용했다. 몬스터즈는 동의대가 기습번트를 시도할 것을 간파하고 내야 전진 수비로 주자를 3루에서 아웃시킨다는 작전을 세웠다. 예상대로 동의대는 번트를 시도했으나 공을 잡은 유희관은 3루 대신 1루를 택했고, 설상가상 송구가 뒤로 빠지며 그 사이에 주자가 홈까지 쇄도하여 허무하게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행히 유희관은 나머지 타자들을 범타로 처리하며 추가실점은 막았다.
 
몬스터즈 타선은 동의대의 두터운 투수진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구원등판한 동의대 최윤서는 6회초 2사 1, 2루 위기에서 정성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11명의 타자를 상대로 6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괴물같은 투수"라며 최윤서를 칭찬했다.
 
유희관은 6회에도 첫 타자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며 2이닝 연속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했다. 중계진은 "유희관에게 오늘같은 경기는 없었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유희관은 후속 타자의 투수 직선타구를 호수비에 이어 병살플레이로 막아내며 위기를 면했다.
 
특히 유희관은 1루를 향하여 마치 강속구를 꽂아넣듯 '분노의 송구'로 눈길을 끌었다. 김선우는 "지금 1루로 전력피칭이다. 유희관이 순간적으로 욱하면 가끔 나오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유희관은 "지금까지 경기하면서 '안 맞고 싶다. 점수를 주기 싫다'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경기"라고 고백했다.
 
몬스터즈는 7회초 공격에서 선두타자 류현인이 안타로 출루하며 기회를 잡았다. 1번타자 정근우는 내야땅볼 이후 전력질주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까지 시도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간발의 차이로 아웃되었지만, 은퇴하고도 몸을 사리지 않는 정근우의 허슬플레이는 동료들의 사기와 승부욕을 일깨웠다. 몬스터즈는 이택근이 최윤서와 팽팽한 승부 끝에 빗맞은 안타를 때려내며 2루주자 류현인을 홈으로 불러들여 기어코 3-3 동점을 이뤄냈다.
 
동의대는 최윤서를 내리고 1차전에서 몬스터즈을 상대로 호투했던 신승윤을 투입했다. 신승윤은 1사 1루에서 박용택을 병살플레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승엽 몬스터즈 감독은 구위가 좋지 않았던 유희관을 일찍 내리고 7회말 시작과 함께 이대은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대은은 여전히 제구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고 1사 1, 2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대은은 2번타자 허지원을 상대로 투수 앞 땅볼을 이끌어내며 병살플레이를 성공시키는 듯했으나, 동의대의 요청으로 비디오 판독 결과 타자 주자 허지원이 1루에서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이닝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놓친 이대은은 결국 제구가 흔들린 긑에 3번 타자 유태웅에게 중견수 앞으로 떨어지는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후속타자를 외야플라이로 잡아내고 이닝을 마무리한 이대은은 덕아웃으로 돌아와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못했다.

이대은은 "실점한 것도 너무 화나는데, 팀스포츠니까 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니까 부담감이 배가 됐다"고 고백했다. 심수창이 와서 격려했지만 이대은은 "빠른 공에 자신이 없다. 제구가 안 돼서 공이 자꾸 빠지니까"라며 답답해했다.
 
몬스터즈는 8회초 2사후 이홍구의 몸에 맞는 공, 김문호의 안타로 다시 동점 주자를 내보냈으나 정성훈이 땅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이대은은 8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랐으나 제구 난조로 계속해서 볼이 쏟아졌고 선두타자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자, 결국 이승엽 감독은 마지막 투수인 심수창을 투입했다.
 
이대은은 덕아웃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쥐며 "사실 좀 겁난다.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자랑이라고 할 수있는 게 구속이었는데 구속도 안 나오고 제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점수까지 내줬다. 내 자신이 너무 작아보였다"며 자책했다.
 
몬스터즈, 창단 이후 5경기 만에 첫 패배

다행히 심수창은 무사 1루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등판했음에도 노련미를 발휘하며 후속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막아내고 추가실점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공격에 나선 몬스터즈는 9회 선두타자 류현인의 안타와 정근우가 몸에 맞는 공으로 잇달아 출루하여 무사 1, 2루의 기회를 잡았다.
 
정보명 동의대 감독은 1차전 선발투수였던 에이스 손민규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택근이 외야플레이로 물러났고 타석에는 이날 4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박용택이 들어섰다. 박용택은 "화도 나고 짜증도 나더라. 오늘 경기 지면 무조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며 스스로의 부진을 자책하고 절치부심했다.
 
박용택은 손민규를 상대로 중견수 키를 넘기는 장타를 터뜨리며 부활했다. 하지만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며 인정 2루타(바운드된 공이 펜스를 넘어가 야수가 잡을 수 없을 때 2루타 취급)가 되며 2루주자였던 류현인의 득점만 인정되고 1루주자 정근우는 3루 진루에서 멈춰야 했다. 동점이 된 줄 알고 환호했던 몬스터즈 선수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던 박용택은 졸지에 적시타를 치고도 동료들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이어진 공격에서 몬스터즈는 정의윤의 사구로 1사 만루의 찬스를 이어갔고, 서동욱이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내며 밀어내기로 결국 극적인 5-5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홍구가 뼈아픈 병살타를 기록하며 역전의 기회를 놓쳤다.
 
동의대의 마지막 9회말 공격, 심수창은 첫 타자를 바깥쪽 삼진으로 잡아냈으나 천적 강준서에게 또다시 2루타를 허용하며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다. 끝내기 허용 위기에서 심수창은 허지원을 고의사구로 내보내고, 이날 3안타 4타점의 맹타를 휘두르던 3번타자 유태웅과 정면승부하는 파격적인 노림수를 선택했다.
 
심수창은 유태웅에게 3루수 앞 땅볼을 유도해내며 완벽한 병살플레이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3루수 서동욱이 치명적인 송구실책을 저지르며 공이 2루수 뒤로 빠졌고 그사이 동의대의 2루주자가 홈을 밟으며 끝내기 득점이 되고 말았다.

6-5 승리를 거둔 동의대는 1차전의 역전패를 보기좋게 설욕했고, 몬스터즈는 창단 이후 5경기 만에 첫 패배를 기록했다. 1승 1패를 기록한 몬스터즈와 동의대의 승부는 결국 3차전으로 넘어가게 됐다.

몬스터즈 선수들은 하나같이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시작 때와 달리 라커룸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패전투수가 되어버린 심수창은 "제가 현역 때도 연패(최다 18연패)를 많이 해보지 않았나. 왜 패전은 항상 나를 따라오는가라고 생각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의 실수로 영웅에서 역적이 되어버린 서동욱은 "당황스럽긴 한데 핑계대지는 않겠다. 제가 잘못 던진 게 맞다. 안 좋게 경기가 끝나서 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라고 자책했다. 유희관은 "야구를 하면서 수많은 패배를 겪었는데 오늘의 1패가 왜 이렇게 열받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송승준은 "짜증이 많이 났다. 내가 은퇴했지만 가슴속에는 아직 피가 끓고 있구나, 지는 걸 너무나 싫어하는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승엽 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졌다는 게 화가 몹시 난다. 제 책임이 크다는 게 화가 나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게 더 화가 난다"며 패배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경기를 마치고 제작진과 다시 모인 몬스터즈 선수단은 패배를 복기하며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방송 이래 처음보는 몬스터즈 선수들의 심각한 표정과 가라앉은 분위기에 장시원 PD도 약간 당황할 정도였다.

이승엽 감독은 "오늘이 고비였는데 그 고비를 못 넘겼다. 패배를 했기 때문에 저희의 의지를 다시 불사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설명하며 "스포츠에서는 역시 끝나고 나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승자만이 웃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
 
캡틴 박용택은 "진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드러움(?)이었다. 첫 경기를 할 때 인터뷰에서 다들 똑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살아있음을,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고. 오늘 지고나서 다들 또 한번 느낀 것 같다. '진짜 나 야구선수구나'라고"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박용택은 "다음 경기에서는 예능은 0.01%도 없이 총력전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몬스터즈 선수단은 다같이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경기에서의 설욕을 다짐했다.

그동안 고교팀들과의 경기가 프로와 아마의 분명한 수준차를 보여줬다면, 동의대와의 경기는 실제 대회나 리그 경기를 연상시키는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경기를 패배한 이후의 라커룸 광경을 통하여 프로 선수들이 실제 어떤 감정과 분위기에 놓이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최강야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다른 장면이었다. 

또한 첫 패배를 통하여 프로 출신 레전드들이 마치 현역 시절로 돌아간 듯한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은, 그들이 이 프로그램을 단순히 방송이나 예능이 아닌 '진심'을 다하여 임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강야구 동의대 이승엽 심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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