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된 서울시청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된 서울시청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박장식

 
1996년생 동갑내기 세 명과 '베테랑 리드' 형이 함께 합작해 만든 국가대표도 낭만적이지만, 태극마크가 없는 친구에게 국가대표를 선물하고 싶다는 꿈도 충분히 낭만적인 꿈이었다. 그런 꿈을 남자 컬링 서울시청 선수들이 현실로 만들어냈다. 

17일까지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2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 결승에서 경북체육회를 만난 서울시청(스킵 정병진·리드 김태환·세컨드 김민우·서드 이정재) 선수들은 여러 경험으로 다져진 상대의 전력을 이겨내고 3년 만에 국가대표 자리에 다시 올랐다. 

김태환 선수는 강원도청 시절, 정병진 선수와 이정재 선수는 3년 전 서울시청에서 국가대표를 역임한 이력이 있지만, 정작 정병진·이정재 선수와 함께 팀을 창단할 때부터 있었던 김민우 선수는 군 공백으로 인해 태극마크를 달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친구에게 태극마크를 달아주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우승이라는 결실로 다가왔다.

국가대표 영광 뒤, 짧지 않았던 방황

서울시청 선수들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18-2019 시즌 국가대표를 역임했었다. 당시 나갔던 세계선수권에서는 당시 '맏형' 김수혁 선수가 해당 대회에서 가장 좋은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로 꼽히며 '콜리 캠벨 메모리얼 상'을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2019 한국선수권에서 경북체육회에게 한 시즌만에 국가대표를 내줘야 했고, 창단 때부터 감독을 역임했던 이재호 감독이 갑작스럽게 팀에서 물러나는 일도 생겼다. 갑작스럽게 사령탑이 빈 데다 또 다른 공백도 발생했다. 당시 창단 멤버였던 선수들 역시 군 복무 탓에 팀을 이탈했다. 

엎친 데 덮친 일들을 수습하느라 한국 컬링 국내대회 사상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던 코리아컬링리그에도 참여하지 못했던 서울시청 선수들. 선수들은 코치 없이 대회에 나서는 등 팀 정상화까지 꽤나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 공백은 지난해 초 양재봉 감독이 새로이 선임되고 나서야 해소될 수 있었다.
 
 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서울시청 선수들이 승리를 예감한 듯 웃으며 스톤 방향을 잡고 있다.

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서울시청 선수들이 승리를 예감한 듯 웃으며 스톤 방향을 잡고 있다. ⓒ 박장식

 
지난해에는 '창단 멤버'였던 전 서울시청 황현준 선수와 의기투합해 루체른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해외 투어 대회에도 여럿 출전하는 등 재기를 노렸던 선수들이지만,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출국 며칠 전 대회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런 만큼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선수들의 집념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예선 기간 때 만났던 정병진 스킵은 "이번에는 지난 아쉬움을 덜어내고자 더욱 높은 곳에서 싸워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각오 덕분일까. 서울시청은 예선에서 6승 1패를 거두며 경북체육회에 승자승으로 밀린 2위로 결선 무대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다짐이 현실로, 그리고 아낌없었던 상대의 축하

결승전에서 만난 경북체육회와 서울시청. 두 팀의 경기는 처음부터 탐색전이었다. 승자승에 따라 후공권을 가져간 경북체육회는 세 번의 엔드를 블랭크 엔드로 넘겼다. 대랑 득점을 시도했지만 서울시청 선수들의 공세가 만만찮았던 탓에 경기는 탐색전 양상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경북체육회는 4엔드에서야 두 점을 따내며 첫 득점을 올렸고, 서울시청 역시 2점을 5엔드 올리며 경기의 균형을 맞췄다. 6엔드 경북체육회가 다시 1점을 얻어내며 앞서나가나 싶었지만, 서울시청은 후반 엔드를 자신들의 기회로 만들기 시작했다. 서울시청은 7엔드 한 점을 내기 시작하면서 공세를 이어나갔다.

8엔드에는 경북체육회의 마지막 샷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나왔다. 경북체육회가 자신들의 스톤을 오히려 쳐내며 서울시청에 1번, 2번, 그리고 3번 스톤까지 안겨주게 된 것. 그렇게 서울시청은 한 번에 석 점의 빅 엔드를 스틸로 따내게 되었다. 이어진 9엔드에서도 서울시청은 한 점을 더 스틸해내며 승기를 잡았다.

10엔드, 넉 점 차이 상황에서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경기 도중 하우스 안에 스톤이 남지 않아 경북체육회가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사라지면서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서울시청이 3년 만에 국가대표로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우승한 서울시청 정병진 선수에게 경북체육회 김수혁 선수가 축하의 포옹을 건네고 있다.

2022 한국컬링선수권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우승한 서울시청 정병진 선수에게 경북체육회 김수혁 선수가 축하의 포옹을 건네고 있다. ⓒ 박장식

 
그리고 그 순간, 경북체육회 선수들의 스포츠맨십도 빛을 발했다. 오랫동안 서울시청 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었던 김수혁 선수가 서울시청 선수들을 안으며 승리를 축하했고, 창단 준비 과정에서 함께 했던 김학균 선수도 친구이자 라이벌이 된 서울시청 선수들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새로운 국가대표에게 축하를 보냈다.

"민우에게 국가대표, 꼭 이뤄주고 싶었는데..."

경기 후 공식 인터뷰를 통해 정병진 선수는 "우리 팀에 유일하게 민우가 한 번도 국가대표를 못해서 그것을 꼭 이뤄주고 싶었는데,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며 친구에게 국가대표를 다시 달아준 기쁨을 먼저 나눴다. 이어 인터뷰 자리에서 김민우 선수에게 함께 박수를 보내는 훈훈한 모습도 이어졌다.

이어 정병진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를 한 번밖에 못 나가봤었다. 이전 남자대표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초로 메달 받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국가대표 기간 동안의 각오를 전했다.

이정재 선수는 "지난 유니버시아드 준비 열심히 했는데 나가지 못해 실망을 많이 했었지만, 이번 한국선수권에서 좋은 결과 낼 수 있어서 기쁘다. 우리에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 양재봉 감독님을 필두로 하나로 뭉쳐진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양재봉 감독 역시 "선수들이 네 명밖에 없는데,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한마음 한뜻으로 한 덕분"이라며, "이어지는 범대륙선수권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최선을 다해서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앞서 국가대표가 확정된 여자부 춘천시청(스킵 하승연)과 함께 3년 만에 함께 국가대표에 다시 선임되었다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서울시청 선수들은 1년 간의 국가대표 역임 기간 동안 유럽을 제외한 국가들이 참가하는 범대륙 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컬링 한국컬링선수권대회 서울시청 컬링팀청 정병진 경북체육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