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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작가에게는 큰 축복인 6.25전쟁

작가는 모름지기 평생을 두고 꼭 쓰고 싶은 작품이 있다. 나에게는 2021년 가을에 펴낸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이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 후기의 첫 문장이다.
 
"나는 이 한 편의 작품을 쓰고자 76년을 살아왔다."
 
고려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시절 학과장이시던 소설가 일오 정한숙 선생은 '창작론' 강의시간이면 후배요, 제자들을 몹시 담금질했다.

"한국인은 지난 6·25전쟁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이 땅의 작가에게는 그 전쟁이 큰 축복이다. 국토분단에다,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의 제재가 어디 있느냐? 너희 가운데 누군가가 6·25전쟁을 깊이 공부하고 대작을 쓰라."

나는 대학 졸업 뒤 곧장 최전방에서 소총소대장으로 복무를 했다. 그때 대남·대북방송을 거의 매일 밤낮으로 들었다. 매주 수요일, 수색작전 때는 휴전선 철책으로 넘어오거나 미처 넘어가지 못한 대남·대북 선전 삐라들을 포대에 수거했다. 그러면서 왜 동족끼리 이런 유치한 장난을 하는가에 대해서도 군복을 입은 사람답지 않게 몹시 분개했다.

1997년 9월, 나는 정한숙 선생님의 유택으로 가는 길에 스승의 옥체를 운구하면서 관 속의 스승님에게 나직이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제가 6·25전쟁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쓰겠습니다."
"그래, 박도! 자네, 여태 내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군. 고맙다. 자네가 꼭 통일로 가는 길에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대작을 쓰시게."
"네, 스승님!"


그때 관 속의 스승님이 벌떡 일어나 내 등을 두드리시며 격려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네 차례나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소재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를 방문했다. 그곳 가까운 데에 숙소를 붙박이로 정하여 연 80여 일 동안 머물면서 6.25전쟁 사진을 원 없이 살펴보고, 후세를 위해 2500여 매 입수해 왔다.

버지니아 주 남쪽 군사도시 노퍽 시의 맥아더 기념관에도 두 차례나 탐방했다. 그곳 기록물도 다 뒤진 뒤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이란 작품을 어렵게 탄생시켰다. 나는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남 주인공 인민군 김준기를 기왕이면 정한숙 선생의 고향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그 고장 일대인 영변 약산, 묘향산, 청천강 언저리 산하를 많이 그렸다.
 
박도의 <전쟁과 사랑>
 박도의 <전쟁과 사랑>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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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가장 행복할 때

다행히 영변, 묘향산 일대는 2005년 남북작가대회 때 직접 그곳 산하를 둘러봤기에 사실감이 나게 그릴 수 있었다. 평안도 방언은 방언학의 대가 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의 자문을 받으며 집필했다. 그밖에 배경지도 내 발로 일일이 답사했다.

이 작품은 북녘 인민군 전사 김준기와 남녘 의용군 최순희 여간호사 간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파란만장한 그들의 인생행로 끝에 재회하여 그때까지 생존하고 있는 북의 어머니를 찾아 뵙는 이야기다.

그들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만나 서로 풋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진 뒤 20여 년이 지난 뒤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후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그곳에서 결혼을 한다. 그런 뒤 미국에서 평양면옥으로 성공하여 반세기 만에 베이징을 거쳐 고향 영변으로 뒤늦은 신행을 가는, 현실 속의 분단 극복 이야기다.

이 작품 <전쟁과 사랑>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르게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시원케 풀어줄 것이다. 또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끝내 약속을 지킨 지고지순한 남녀의 뜨거운 순애보다. 이 작품은 오래도록 8천만 겨레의 가슴 속에 그 여운이 남을 것으로 믿는다. 작가의 양심에 따른 서술이었다고 감히 말씀 드린다.

내가 이 작품은 쓰게 된 동기 부여는 대학시절 정한숙 교수님의 <창작론> 시간 때의  당부 때문이었다. 후일 정한숙 선생님이 문예진흥원장으로 재임 시절 대학로 사무실로 찾아뵙자 매우 반겨주셨다.

"어이, 박도! 작가는 말이야 바둑판에 돌을 놓을 때(200자 원고지를 메울 때)가 가장 행복한 거야."
  
고려대 국문학과 3학년 시절의 필자(1967년),
 고려대 국문학과 3학년 시절의 필자(1967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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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작가를 격려해 주시던 그 말씀이 어제 같다. 늘 내 영혼을 지배해 왔던 스승의 그 말씀이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40여 권의 작품을 써왔고, 현재에도 부지런히 집필하고 있다. 이 모두가 스승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또, 그분은 강의시간에 틈틈이 "너희들, 서둘러 문단에 나갈 생각보다 원고지를 사과 궤짝에 두 짝 정도 가득 채운 뒤에야 데뷔하라"고 일렀다. 데뷔작이 곧 마지막 작품이 된 작가들이 많다고 사전에 깊이 공부할 것을 대단히 강조하셨다. 그 말씀 탓인지 팔십 줄의 나는 여태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긁적이고 있다.

일오 정한숙 선생님, 내 저승에 가면 꼭 찾아뵙고 싶은 은사님이시다. 오는 7월 2일 일오 정한숙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앞두고 몇 자 적어봤다. 

덧붙이는 글 | 일오 정한숙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일시 : 2022년 7월 2일(토) 오후 1-6시
장소 : 고려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국제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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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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