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날개를 얻어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한 호기심에 무리하게 날아오르던 이카루스는, 태양에 다가갈수록 날개가 녹아버리며 추락하고 만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선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이 언제든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2022년 지난 5월 루나 대폭락 사태도 이카루스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갑자기 99.99% 이상 폭락해 시가총액 50조 원 이상이 증발했다는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는 왜 무너졌는가. 한때 '한국의 일론머스크'로 불리운 권도형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김치코인의 신화로 꼽힌다. 

6월 11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달의 몰락-루나 대폭락의 진실' 편을 통하여 루나 폭락 사태와 권도형 대표의 의문스러운 행보를 조명했다.

권도형은 2018년 '테라폼랩스'를 창업하며 테라와 루나 코인을 만들었다. 창업초기 200원 내외였던 루나의 가격은 한때 12만 원까지 500배 이상 치솟았고 시가총액이 50조 원을 넘어서며 전세계 암호화폐 가운데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불과 32세의 나이에 암호화폐 업계의 큰손이자 성공한 창업가로 등극한 권도형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화려한 스펙과 성공신화 못지 않게 특유의 자신만만하다못해 무례하고 공격적인 언행으로 방송과 SNS에서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루나의 가치가 갑자기 이렇게 폭락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루나 사태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큰 충격을 줬다. 심지어 미국 재무부 장관 재닛 앨런조차 "우리가 수세기동안 보아온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사태)과 유사한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라며 이례적으로 루나 사태를 언급할 정도였다. 루나 피해자들은 엄청난 경제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공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한달전 루나의 폭락을 예측한 이들이 있었다. 이미 루나 폭락을 예견했다는 블로거 환은 "루나는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그 말은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막을 수 없는 구조라는 것"라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분석전문가 린 앨든 역시 "이미 자신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루나에 대해 경고했다.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발자 권도형 대표는 지난 5월 대폭락 직전까지만 해도 변함없이 루나의 장및빛 미래를 설파해왔다. 권도형은 폭락 사태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없이 새로운 코인인 루나 2.0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새로운 루나도 발행 2주만에 역시 90%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한 방송에 출연하여 "95% 이상의 코인 회사들은 2-5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을 보는 것도 즐겁긴 하다"라며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었던 권도형의 발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는 바로 자신이 예언했던 '몰락하는 95%'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권도형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가 천재로 불릴만큼 현실에 없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루나의 장점으로 꼽힌 스테이블 코인(법정화폐로 표시한 코인의 가격이 거의 변동되지 않고 안정된 암호화폐)은 암호화폐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내재적 가치를 보완하는데 획기적이고 과감한 해결방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교환 시스템을 바탕으로 오직 두 종류의 코인과 알고리즘만으로 암호화폐의 가격을 1달러에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발상이었다.
 
코인 사업이 승승장구하면서 권도형은 이를 확장하여 UST를 기반으로 한 예금시스템인 '앵커 프로토콜'을 발표한다. 디파이(탈중앙화 금융시스템)에서 '확정수익 20%'를 보장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또한번 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처럼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루나와 권도형의 인기는 지난 5월 대폭락 이후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몰락했다. 예상치 못한 어떤 이유로 일시적으로 페깅(고정 1달러)이 깨졌다.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복구하지 못하면서 망가진 알고리즘은 하루에 6조4천억개에 이르는 루나를 새로 발행하고 가격은 폭락했다. 암호화폐를 유지하던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테라와 루나가 동반으로 연쇄 붕괴에 이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방법이 제일 위험하고 공격적이라고 지적한다. 공격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많다는 이야기다. 김종환 암호화폐 전문가는 "시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알고리즘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경제에서 자동으로 물가를 안정할 수 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며 "그런게 가능하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동성이 큰 루나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는 구조적으로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난 2년 가량은 알고리즘에 의하여 잘 유지되고 있던 테라는 왜 무너지게 된 것일까. 업계에서는 누군가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루나의 가치를 폭락시키기 위하여 공격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가격하락에 배팅을 해서 수익을 내는 공매도 작전세력이 존재했고 그들이 이번 폭락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들은 기존 금융업계에서 테라-루나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전했다. 공격에 취약한 알고리즘 구조에다가, 권도형의 자극적인 언론플레이, 엄청나게 많은 돈이 몰려있는 상황은 먹잇감이 될 빌미를 제공하기 충분했다는 것. 이에 테라폼랩스의 핵심관계자라는 익명의 제보자도 제작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테라와 권도형 대표에게만 관심이 쏠려있고 실제 공매도 공격을 일으킨 자들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나 피해자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권도형을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암호화폐 사업을 이용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한편으로 그도 단지 피해를 입은 천재 개발자일뿐이라고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루나 피해자들은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권도형 대표를 고소했다. 만일 권도형이 암호화폐 구조를 짜고 피해자들을 모집할 때부터 그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했다면 기망행위에 해당한다. 고의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
 
피해자측 변호인은 "처음에 홍보했던 내용, 지금의 현상, 대폭락을 종합해보면 사기죄가 성립된다. 중간에 어려워지자 앵커프로토콜이라는 자금유치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이 개발했던 로직에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루나 폭락을 예측했던 이들도 '앵커프로트콜의 20% 이자 지급' 조건 등이 현실성이 없었고 시스템이 붕괴될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 한다.
 
테라폼랩스 개발에 참여했다는 강형석씨는 "이자 20%를 제공한다는 것은 온전히 권도형의 아이디어였다"라고 폭로하며 설계구조를 듣고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서 그만뒀다고 밝혔다. 놀라운 것은 권도형은 이자 제공방법에 대하여 설명을 전혀 하지 못했고 다른 직원들도 대표가 알아서 할 것이라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고.
 
또한 강씨는 권도형이 회사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고 왕처럼 운영했다고 폭로했다. 본인이 한국인이고 미국의 규제를 따르지 않겠다고 강조했던 것과 달리, 회사에서는 영어가 아니면 대화도 하지 않았고, 직원들과 소통이 없는 모순된 행보를 보였고 주장했다. 강씨는 권도형이 천재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어려운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라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권도형이 앵커프로토콜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걸 몰랐을 수는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사기 구조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라고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지급 준비금이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권도형이 트위터로 남긴 대답은 '너희 엄마에게서'였다.
 
또다른 의문은 권도형이 구입했다는 비트코인의 행방이다. 권도형은 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지전,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비트코인 8만 개를 구입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테라 가격을 방어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하지만 폭력사태 이후 가격방어에 실패했다면서 비트코인의 구체적인 사용내역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테라폼랩스측은 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답을 피했다. 
 
해외의 한 블록체인 분석업체에서 루나 재단의 자금흐름을 추적한 결과 35억 달러(4조4천7백9억 이상)의 비트코인이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 등으로 이동한 정황을 파악했으나, 거래소 이후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다.
 
수상한 정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 있던 테라폼랩스 사무실은 모두 문을 받았다. 놀랍게도 루나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올해 4월에 테라폼랩스의 국내 법인이 해산된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제작진은 권도형 대표를 만나기 위하여 싱가포르 사무실과 자택을 찾아갔으나 행방이 묘연했고 이메일로 전한 인터뷰 요청도 답을 얻지 못했다.

강형석씨는 테라-루나 재단이 몰래 자산을 만들어서 불리는 프리마이닝(암호화폐 사전발행)을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테라폼랩스의 경우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1조 5천억 규모에 이르는 사전발행을 백서를 포함하여 어디에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것. 권도형은 관련 기사가 나오기 직전, 문의가 있을때만 답변을 했고 외부 사이트에 사전발행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하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리 발행한 코인을 '차이'라는 서비스를 통하여 한국 원화로 교환될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SDT(사전발행코인)가 KRT(1원 고정테라)로 다시 원화로 바뀌어 나간다는 것은, 임의로 미리 발행한 코인이 현금화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SDT는 정작 재단이 공식적으로 개한 자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비자금인 것. 이를 두고 강씨는 "재단쪽에서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가 UST나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메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그게 옳은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이 서비스를 통하여 암호화폐를 현금화해 준 자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홍 교수는 "이 원화는 절대쓰면 안 되는 '고객예치금'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차이 고객들이 예치한 금액이 전혀 상관없는 테라폼랩스가 자연히 흘러가는 구조가 형성된 것. 이 예치금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명백한 사기가 될 수 있다.
 
더 무서운 가능성은 테라 측에서 사전에 발행한 SDT와 교환된 돈이 차이 고객이 아닌 제 3자로부터 온 경우다. 이렇게 되면 출처가 불분명한 대량의 현금을 미리 찍어낸 SDT와 교환하는 과정을 통하여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수단'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제작진은 암호화폐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약 1천만개의 SDT가 KRT로 교환된 것이나 차이의 지갑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테라의 암호화폐 탐색기는 검색이 불편한 구조로 되어있었고 정확한 거래내역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전문가는 이것이 시스템상 오류인지 의도적으로 숨긴 것인지 해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테라폼랩스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권도형은 20%의 이자를 유지하고 앵커 이자 보관소의 적자를 메우기 위하여 절대 빠져나가서는 안 될 안정성 자금을 인출하여 이자보관에 넣었고, 트위터에 주기적으로 자랑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암호화폐 종사자가 서모씨는 중요한 이야기를 지적했다. "암호화폐 사업을 하면서 놀랄때가 저희끼리 상식적으로 문제없겠지 하는 부분들이 불법인 경우가 많다. 특히 금융은 그렇다"라고 밝히면서 "암호화폐 사업가들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라 블록체인, 누구도 감독하지 않는 영역에서 금융적인 생각을 하는데, 자기들끼리 논리적으로는 탄탄할지 몰라도, 왜 제도적으로 불법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라는 것. 서씨는 "그래서 어린 천재들이라고 하는 게 위험한 것"이라고 뼈있는 지적을 남겼다.

루나 폭락 사태는 과연 운이 없었던 어느 천재의 뼈아픈 실수였을까. 하지만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번 사태는 재해도 불운도 아닌, 인재에 가까웠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숫자만 국내에서만 28만에 이른다. 이런 상황임에도 권도형은 루나 사태와 프리마이닝-자금세탁 의혹 등에 대한 명확한 해명도 없이 무책임한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검찰과 미국 재무부 등도 이미 권도형에 대한 조사에 돌입한 상황이다.
 
테라와 루나로 대표되는 암호화폐 광풍이 인간을 태양으로 데려다줄 듯했으나 흔적없이 녹아버린 '날개'라면, 단계적 성장을 무시하고 성공에만 눈이 멀어 폭주한 권도형과 그에 동참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은 현대판 '이카루스의 분신'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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