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초로기 치매는 젊은 치매로 불리는 병이다. 치매란 나이 들어 발생하는 병이란 인식이 점점 옅어지는 추세다. 65세 이전인 이른 나이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는 주로 젊은 여성에게 많이 일어난다. 젊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병이 아니란 소리다.
 
가장 무서운 것은 뇌세포 손상 속도가 빠르고 강하다는 점이다. 감정 조절이 힘들고 대화에 어려움이 있다. 전두엽 이상으로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거나 엉뚱한 말을 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통째로 잃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기억뿐만 아닌 인간  존엄성까지 잠식한다.
 
너무 빨리 찾아와 무서운 질병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수진(서현진)은 이혼 후 딸 지나(주예림)를 아빠가 있는 미국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잘나가는 변호사, 완벽한 엄마로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힘에 부칠 때가 많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지나를 돌봐주는 이모님이 또 그만두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빠(안성기)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아빠와 어쩔 수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그날도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던 중 교통사고로 병원을 찾게 된다. 머리를 조금 다친 것뿐인데 의사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렵게 꺼낸 그 말은 부녀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수진은 뜻밖에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완벽했던 일상은 하루하루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영화는 치매라는 질병을 벌어진 가족의 틈을 메우는 장치로 활용했다. 당차고 똑똑한 수진은 아빠에게 도움받기를 꺼린다. 30년간 이어진 해외 근무로 아빠는 딸과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했다. "나는 혼자 컸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딸을 향한 부채감과 부성애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서서히 아이가 되어가는 딸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다.
 
초로기 환자 역의 서현진은 딸이 자신을 절대 봐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는 엄마이자, 응석 부리지 않는 딸은 연기했다. 서현진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와 다른 얼굴을 후반부에 선보이며 차기작을 기대하게 한다. 그래서 묵묵히 그림자처럼 차갑고 꼿꼿한 딸 곁에서 머물러 주려고 했던 안성기의 차분함이 돋보인다.
 
간병인이 된 아빠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간병인이 된 아빠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육아일기를 쓴다. 오늘은 딸이 무엇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자신은 그 상황에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적어나간다. 점차 심각해지는 딸을 환자 모임(학교)에 데려간다. 분리수거와 시간 맞춰 해야 할 일(밥상머리 교육)을 가르친다.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듯 차분하고 부드럽게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
 
젊은 치매는 대체로 찬란했던 시절에 찾아온다. 그래서 질병이지만 형벌 같다. 젊음이란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요소가 초로기 치매 앞에서는 잔인하게만 들리는 이유다. "기억도 없이 좀비처럼 살아가는 게 사람이야?!"라던 수진의 외침은 인간의 존엄까지 갉아먹는 병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그래서, 아빠는 물심양면으로 딸 곁에서 퇴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최후의 1인이 되길 자진한다. 어두운 밤 북극성 방향을 알려주는 카시오페아 별자리처럼 길잡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직접적으로 북극성을 찾아주기 보다 간접적으로 북극성을 찾을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게 가족임을 에둘러 말한다.
 
영화는 예측가능한 신파로만 치닫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 앞에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기관과 주변의 도움이 열려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카시오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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