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전설의 피날레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6월 4일 방송된 MBN <국대는 국대다>에서는 대한민국 유도의 전설 이원희가 출연하여 은퇴 13년만에 현역으로 돌아와서 2024년 파리올림픽 국가대표에 도전하겠다고 깜짝 선언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원희는 대한민국 유도 최초의 그랜드슬래머이자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2003년에는 무려 4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동안 무려 44승을 한판으로 따내며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심지어 국제대회에서 상대를 누르기만 해도 쉽게 이길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던져서 이기고 싶은 욕심에 그대로 일어나서 다시 시작한 경우가 많다고. 당시 권성세 국가대표 감독으로부터 농반진반으로 '쥐어박고 싶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원희는 "할만해서 한 거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고 거의 항상 이기고 들어오니까 혼이 날 일도 없었다.
 
떡잎부터 타고난 천재라는 이미지에 대하여 이원희는 고개를 저으며 "학교가 끝나면 밤10시까지 체육관에서 살았다"면서 노력의 결과물을 강조했다. 남들보다 힘이 세거나 특별하지는 않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원희의 현역 시절 명장면들이 이어졌다.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이원희는 16강부터 결승전에서 만난 러시아의 마카로프마저 전 경기를 모두 압도적인 우위 끝에 한판승으로 장식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아테네올림픽 유도 결승전의 시청률은 무려 53.5%에 이르렀다. 새로운 유도 슈퍼스타의 탄생에 전국이 열광하며 들썩였다.
 
이원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휩쓰는 대망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원희는 유도 종주국인 일본의 유도천재 다카마쓰 마사히로와 맞붙었다. 그동안 이원희에게 연패를 당했던 다카마쓰는 이번에야말로 승리를 따내겠다며 독기를 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기전부터 눈도 마주치지않고 인사도 피하는 다카마쓰의 모습은, 오히려 이원희의 승부욕만 더 자극하는 역효과로 이어졌다고. 이원희는 보란 듯이 빗당겨치기 한판승으로 다카마쓰를 압도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배성재는 1분33초만에 예상보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 결승전 때문에 방송3사가 모두 분량이 안나와서 당황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원희는 "일찍 끝내야 안 힘드니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도하 아시안게임은 국가대표 이원희의 마지막 경기가 됐다. 부상에 시달리던 이원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에서 패배한 직후 전격 은퇴를 선언하여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원희는 2005년 군복무시절 야간행군중 발목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목표 때문에 부상을 참고 금메달까지 따내기는 했지만, 이후 정밀검사를 통하여 발목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이 뒤늦게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이원희는 은퇴 13년만인 지난해 7월, 갑작스럽게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이원희는 "예전부터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게 마음 속의 숙제처럼 남아있었다"고 고백하며 "<국대는 국대다>를 통해서 제대로 준비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종목표는 국가대표로 2024 파리올림픽 출전이었다. 대한민국 유도는 2012년 런던 대회 더 이상 올림픽 금메달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은퇴 선수들의 마지막 도전 무대를 표방했던 <국대는 국대다>에서 진지하게 현역 복귀를 선언한 것은 이원희가 처음이었다.
 
이원희는 "'내 심장을 뛰게하는건 뭘까'라고 생각해봤다.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해냈을 때 심장이 뛰더라"고 고백했다. 이어 "멋있는 모습이나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 '제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 경기에 이기든 지든 열심히 준비했던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며 도전의 이유를 밝혔다.
 
적지않은 나이에 현역 선수들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만들어야죠"라며 우문현답을 던졌다. 설사 진다고 해도 "나에 대해서 돌아볼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나 자신을 체크할수 있는 기회니까"라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잃지않았다.
 
이원희의 상대 선수는 현 73kg급 국가대표 이은결이었다. 이원희의 제자이기도 한 이은결은 "시합장에서는 계급장 떼고 경기하겠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예상치못한 제자의 등장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못했던 이원희는 이내 "자신감없이 경기에 나간 적이 없다. 자신감을 만들어서 나가는 것"이라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이원희의 선배이자 대한민국 유도의 또다른 전설인 전기영-김미정 교수는 이원희의 복귀 소식을 듣고 현역과의 체력 격차를 우려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않았다. 전기영은이원희의 부탁에 도복을 갖춰입고 실전에 쓸 수 있는 기술 위주로 특별한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60일간의 특별훈련에 돌입한 이원희는 현역 선수들과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밧줄타기에서는 20대 제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남다른 클래스를 증명했다. 이어 이원희는 남녀 국가대표 선수들과 번갈아가며 대련을 진행했다. 이원희는 민첩한 여자 선수들과의 대련할때는 잡기 위주의 훈련, 힘이 좋은 남자 선수들과의 대련은 근력 위주의 훈련으로 목적이 다르다고 밝혔다.
 
훈련장에서 이원희는 대결상대인 이은결을 만났다. 시합 준비 잘하고 있냐는 이원희의 떠보기에 이은결은 "이길 생각밖에 안하고 있다"며 MZ세대다운 당당한 패기로 화답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60kg 동메달리스트 이하림과의 세 번째 대련에서는 실전을 방불시키는 격렬한 승부가 펼쳐졌다. 이원희는 불꽃튀는 대결 끝에 이하림을 한판으로 제압했다. 거친 숨을 몰아쉰 이하림은 "너무 강력하다. 저는 못이기겠다
"며 현역못지않은 이원희의 힘과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VCR로 지켜보던 전현무는 "그동안 출연했던 역대 레전드중 가장 센 것 같다"며 이원희의 실력에 감탄했다.
 
이원희는 아테네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출신인 아내 윤지혜와 두 아이를 공개했다. 윤지혜는 "남편이 정말 유도를 좋아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도복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다시 운동한번 해볼까라는 말을 자주했다"며 남편의 마음을 이해했다.
 
최근 아빠의 뒤를 이어 유도를 시작했다는 딸 예하 양은 "아빠가 (시합을)못할 것 같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아 응원을 기대했던 이원희를 당황하게 했다. 예하는 "빨리 운동 준비하라. 안그러면 빵점 줄거다"라고 재촉하며 아빠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이원희는 역시 국대 출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선수촌 못지않은 강도 높은 홈트레이닝을 진행했다.
 
국가대표 후배인 조준호가 이원희를 위한 일일 코치로 나섰다. 조준호는 "국가대표 새싹을 밟으면 안되는거 아니냐"라고 딴지를 걸자 이원희는 "이은결이 나를 이기고 나가야지, 노장도 못이기는데 어디가서 누구를 이기겠냐"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이원희는 조준호의 도움을 받아 3인1조 훈련과 무한메치기 등 실제 현역 선수들 못지않은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조준호는 "생각보다 몸상태가 많이 올라왔다. 현역 시절의 60% 정도는 될 것 같다.시합이 안될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해볼만하겠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원희는 다음주 대결을 앞두고 "이번 대결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전초전이다. 유도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않다"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국대는 국대다>는 각 분야의 스포츠 레전드를 소환해, 현역 스포츠 국가대표 선수와 맞대결을 벌이는 초유의 스포츠 리얼리티 예능을 표방했다. 현재까지 팀전 방식으로 치러진 펜싱 종목을 포함하여 총 8명의 레전드가 등장했는데 여성선수인 현정화(탁구)-남현희(펜싱)을 제외하면 남성 레전드들은 모두 투기종목 출신들만 출연하고 있다. 이만기(씨름), 박종팔(권투), 심권호-정지현(레슬링), 문대성(태권도), 그리고 이원희다.
 
현재까지 남성 레전드들이 현역 선수를 상대로 이긴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유일하게 은퇴 선수들끼리만 맞붙었던 레슬링 편에서도 나이차가 띠동갑 이상 나는 젊은 정지현이 심권호에 완승을 거뒀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투기종목에서는 현역과 은퇴선수간의 신체적 격차가 '넘사벽'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투기는 아무래도 종목 특성상 부상의 위험이 높다. 지난주 출연했던 문대성은 굴욕적인 완패도 모자라 경기중 무릎 부상과 안면부 출혈로 시합이 중단되는 돌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만기와 박종팔은 선전했지만 자식뻘 나이차이가 나는 현역 선수들이 어느 정도 완급을 조절해주는 기색이 역력했다. 방송에서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과 감동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이미 중장년에 접어든 은퇴 선수들을 현역 선수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실전을 시키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는 지적이 끊이지않는 이유다.
 
반면 이원희는 <국대는 국대다>에 출연했던 역대 남성 레전드중 레슬링 정지현에 이어 두 번째로 젊다. 더구나 은퇴 선수가 아니라 현역 복귀 가능성까지 진지하게 거론하고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이전의 레전드들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할수 있다. 41세의 이원희에게 <국대는 국대다>가 본인이 원하는데로 현역 복귀의 전초전이 될지, 아니면 공식적인 은퇴에 쐐기를 박는 무대가 될지 그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국대는국대다 이원희 유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