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성공시키는 네이마르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브라질 네이마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 페널티킥 성공시키는 네이마르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브라질 네이마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있다. ⓒ 연합뉴스

 
무려 4년을 공들였다는 벤투호의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가 세계 최강 브라질 앞에서는 허망하게 와르르 무너진 모래성이 됐다. 기술-체력-조직력 등 모든 면에서 앞선 강팀이 강하게 전방압박까지 걸어올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보는 월드컵 본선의 현실을 깨닫게한 무대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6월 2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 축구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1-5로 참패했다. 전반 6분 만에 히샬리송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은 30분 황의조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균형을 맞췄지만, 41분 네이마르에게 페널티킥을 실점하며 다시 리드를 내줬다. 후반엔 네이마르의 멀티골과 필리페 쿠티뉴, 가브리엘 제주스에 연속 실점하며 대패했다.
 
한일월드컵 20주년 기념과 2022 카타르월드컵 대비를 겸하여 대한축구협회가 기획한 6월 A매치 4연전 시리즈의 첫 경기였던 브라질은 피파랭킹 1위의 강호였다. 남미예선에서도 14승 3무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네이마르, 티아고 실바, 다니 알베스, 마르퀴뇨스, 비니시우스, 쿠티뉴, 카세미루 등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브라질은 유럽 시즌을 마치고 일찌감치 한국에 입국하여 시차와 현지 적응을 마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수 있었다. 

선수단이 한국전을 앞두고 여유있게 관광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며 자칫 긴장감없이 설렁설렁 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브라질은 경기 휘슬이 울리자마자 눈빛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집요한 맹수처럼 한국을 몰아붙였다. 아시아 최종예선을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한 데다 EPL 득점왕 손흥민을 비롯하여 황의조-황희찬-정우영 유럽파 정예멤버들이 총출동한 한국이지만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와 전방압박 앞에서는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 신세였다.

한일월드컵 20주년을 기념하여 무려 6만 4872명의 관중이 상암벌에서 함께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거스 히딩크 감독까지 초대받은 축제 분위기에 브라질이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야말로 강자의 진정한 여유와 프로의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최상의 평가전 상대였다.

벤투호는 어떤 대책이 있는가?
 
네이마르 두 번째 PK골 세리머니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브라질 네이마르가 두번째 페널티킥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네이마르 두 번째 PK골 세리머니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브라질 네이마르가 두번째 페널티킥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는 브라질과의 역대 전적이 1승 6패로 더 벌어지며 절대 열세를 면하지 못했다. 벤투호는 지난 2019년 11월 중립지역인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평가전(0-3)에 이어 두 번째 대결에서도 완패를 당했다. 그나마 2년 6개월 전에는 좋은 찬스를 많이 만들어내며 '졌잘싸'라고 위안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때보다 전력과 조직력이 더 향상되었고 심지어 홈경기라는 이점에 불구하고 정작 뚜껑을 열자 점수차와 경기력은 오히려 더 벌어졌다. 

이로서 한국은 20경기 연속 홈경기 무패(16승 4무) 행진을 마감하며 2018년 벤투호 출범 이후로는 첫 홈 패배를 당했다. 벤투호의 최다실점(5골)과 최다 점수 차(4골) 패배이기도 했다. 그나마 황의조가 브라질을 상대로 오랜만에 골맛을 보며 1년여에 걸친 골가뭄에서 벗어났고 한국 선수로는 20년 만에 브라질전 득점자로 이름을 올린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물론 한국축구가 브라질같은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평가전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강팀을 상대로 우리의 현실과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브라질전이 벤투호에게 남긴 화두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만일 월드컵 본선에서 상대가 이처럼 강한 전방압박을 걸어오거나, 점유율 축구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벤투호에게 어떤 대책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벤투호는 출범 이후 지난 4년 내내 후방 빌드업에 기반한 점유율 축구를 추구해왔다. 짧은 패스를 통하여 볼소유권을 최대한 오래 가져가며 안정적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였다. 사실 이는 벤투만의 고유한 전술이라기보다는 현대축구의 보편적인 흐름에 가까웠다. 그런데 벤투 감독은 대표팀에 점유율 축구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스피드와 압박, 롱볼과 킥앤러시, 선수비 후역습 등으로 요약되는 한국축구의 고유한 스타일과는 거리를 뒀다. 

대표팀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점유율 축구를 내세워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지난 두 번의 대회와 달리 모처럼 여유있게 조기에 본선행을 확정지으며 점유율 축구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표팀의 성적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벤투 감독을 향한 의구심의 시선도 일제히 찬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겉보기에 순항하는 듯 했던 벤투호의 호성적 뒤에는 치명적인 불안요소가 있었다. 일단 강팀과의 대결을 통한 검증과정이 매우 부족했다. 벤투호는 현재전까지 총 44차례 A매치를 치러서 28승 10무 6패를 기록했는데 이 중 대부분이 아시아 약팀들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아시아를 제외한 타 대륙팀과의 경기는 12차례(6승 3무 3패)였지만 여기에는 아이슬란드-몰도바-조지아 등 유럽에서도 약체팀들과의 경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작 브라질-멕시코 등 월드컵 본선 수준의 강호들과 최정예 멤버로 정면대결했을 때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약 6년 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지금의 벤투와 비슷한 점유율 축구를 추구하며 아시아 무대에서 2차예선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6년 6월 A매치에서 유럽의 강호 스페인을 상대로 무기력한 1-6 참패를 당하며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의 허상이 드러났다. 슈틸리케는 이후 몰락을 거듭하며 아시아 예선 기간 중 경질됐다. 그에 비하면 벤투는 월드컵 본선을 확정했지만 남은 시간이 이제 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했던 것,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브라질전 대패 자체보다 벤투호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진짜 문제다. 

벤투호의 진짜 문제
 
브라질 수비도 막을 수 없는 손흥민 돌파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브라질 선수들을 드리블로 돌파하고 있다.

▲ 브라질 수비도 막을 수 없는 손흥민 돌파 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브라질 선수들을 드리블로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이 보여줬듯이 점유율 축구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극적인 전방압박을 통하여 아예 시작부터 빌드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이 막히자 한국은 거의 반코트 게임이 되어 수비에만 급급했고, 역습과 골결정력에 최적화된 손흥민을 보유하고도 무용지물이었다. 한국도 지지 않고 전방압박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볼을 관리하고 패스를 전개하는 탈압박과 빌드업 능력도 브라질 선수들이 몇 수 위였다.

월드컵같은 큰 무대일수록 우리가 잘하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못하게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다. 만일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상대국들이 한국의 전력을 분석하려한다면 브라질전은 '벤투호 공략법'의 교과서가 될 만한 경기였다. 

물론 월드컵 본선이라고 해서 상대팀들이 모두 브라질과 같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이나 우루과이 역시 객관적인 전력에서 분명히 한국보다 우위에 있으며, 높은 수준의 빌드업과 전방압박 전술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가나 역시 예전만큼의 위용은 아니지만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강팀이다. 이런 팀들을 상대로 벤투호가 준비한 빌드업과 점유율축구가 먹히지 않을 때 과연 대안이 준비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런 질문과 우려는 이미 3~4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2019년 아시안컵 8강 탈락(카타르전), 2021년 한일전 참패 등 심지어 아시아권팀들을 상대로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가 통하지 않았던 순간은 많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벤투 감독은 그때마다 점유율 축구 기조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받았다. 브라질전 패배 이후에도 벤투 감독은 여전히 "스타일을 수정할 시간이 없다. 단지 실수를 줄여나가는 게 관건"이라며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점유율축구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축구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열세를 인정하고 수비와 역습에 좀더 집중하거나, 롱볼을 올려서 우당탕당 맞부딪치는 뻥축구가 더 효율적인 순간도 존재한다. 2000 한일월드컵 4강신화, 2018 러시아월드컵 '카잔의 기적(독일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벤투 감독은 한국축구만의 장점과 특색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오직 하나의 정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틀안에 한국축구의 다양한 창의성을 가두려고 하는 '답정너' 느낌이 강하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강팀의 입장에 있기에, 경기를 주도하며 지배하는 축구가 가능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의 한국은 대부분의 팀들을 상대로 언더독에 가깝다. 심지어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들은 이미 한국보다 오래전부터 점유율 축구에 더 능숙하다. 운이 많이 따라줬던 아시아 최종예선에서의 성과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벤투호가 점유율 축구에 대한 확증편향이 더 심해지고 자칫 '플랜B'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다면 월드컵에서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 

브라질전은 여전히 한국축구가 세계 강호들과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줬다. 앞으로 6월 남은 세 번의 A매치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과가 좋지못하다면 한국축구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심각한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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