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31일은 한일월드컵이 개막한 날이다. 대한민국을 축구로 하나되게 만들며 영원히 잊지못할 영광의 추억을 선사했던 한일월드컵이 어느덧 20주년을 앞두고 있다.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주년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히딩크 감독과 월드컵 4강 주역인 홍명보, 박지성, 안정환, 설기현, 이운재, 송종국, 이천수,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 겸 아산재단 이사장 등은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20주년 만찬회를 열고 월드컵의 추억을 회고하기도 했다.
 
또한 협회는 한일월드컵 20주년을 기념하여 6월에 당시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과의 A매치 평가전, 월드컵 스타들의 소장품 바자회, 축구 관련 산업 박람회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기획했다. 축구계와 미디어에서도 다시 한일월드컵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로 재조명받고 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처럼 여전히 우리가 한일월드컵을 추억하며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일월드컵이 단지 축구를 넘어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드컵 개최와 4강 신화는 한국축구의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드컵 유치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일본과의 공동개최가 준 라이벌 의식은, 한국 축구계와 사회 전반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안겨줬다. 이는 곧 축구계에 대한 대대적인 관심과 투자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축구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 기여했다.
 
월드컵 개최를 위하여 최신식 월드컵경기장이 신축됐고 그에 따른 부대 시설과 각종 시스템이 구축됐다. 파주 NFC 등 대표팀 전용훈련장이나 전문적인 지원체계도 이때 처음 자리잡았다. 지금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천연잔디 구장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했다. 월드컵 준비과정에서는 '일회성 행사에 불과한 월드컵을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들어 경기장을 신축하는 게 낭비'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우여곡절속에서도 어렵게 형성된 인프라들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는 물론, 이후로도 K리그와 한국축구 발전의 근간으로 자리잡으며 소중하게 활용됐다. 만일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변화였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한일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5번의 월드컵 본선 도전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세계축구의 변방이었다. 축구협회는 월드컵 개막을 약 1년반 남겨두고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며 지휘봉을 맡기는 모험을 선택했고, 전례없는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히딩크호는 당초 16강 정도의 성적을 목표로 했지만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을 달성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역사상 아시아팀 최고의 성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이다.
 
물론 월드컵에서의 성과가 모두 히딩크 감독의 공로만은 아니었다.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서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준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 대표팀을 위하여 무한희생을 감수한 K리그, 어마어마했던 홈팬들의 성원들도 모두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을 성공의 발판으로 극대화해낸 것은 히딩크 감독의 역량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단지 4강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넘어서 한국축구에게 최초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인물로 꼽힌다. 강한 체력과 압박, 멀티플레이어, 선후배 위계질서 타파, 언론 대처능력, 강팀과의 정면승부, 공정하고 합리적인 실력 위주의 무한 경쟁,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현대적인 대표팀 운영 시스템의 구축 등에 이르기까지, 히딩크 감독이 제시한 화두들은 한국축구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에 대한 혁신으로 이어졌다. 대중들은 한 명의 혁심적인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성이 조직 전체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도 체험하며 히딩크 리더십에 열광했다.
 
또한 히딩크가 발굴해 낸 '한일월드컵 세대' 선수들은 이후로도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황금세대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선수들 중 병역미필자들은 월드컵 16강 이후 병역혜택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박지성-이영표 등은 히딩크 감독과 함께 유럽까지 진출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맏형격인 홍명보-황선홍-최용수 등은 지도자와 행정가 등으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안정환처럼 방송계나 '제 3의 길'로 진출하여 성공한 사례들도 있다. 이밖에도 김병지, 이천수, 이을용, 최진철, 설기현, 김남일 등 많은 인물들이 월드컵 후광을 등에 업고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축구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일월드컵의 영광을 보고 꿈을 키운 축구 키드들은 이후 2002 세대의 뒤를 잇는 한국축구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한국축구는 2002년의 성공을 바탕으로 유소년 축구 육성과 중장기적인 플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002 세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던 2010년대 이후 등장한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이강인, 황희찬, 황의조 등 이른바 'MZ세대' 스타들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U-20 월드컵 등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특히 현재 한국축구의 간판으로 꼽히는 손흥민은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유럽 빅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아시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역사의 연속성을 감안할 때 한일월드컵의 성공과 2002세대가 구축한 기반이 없었더라면, 손흥민의 등장도 결코 쉽지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일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충격은, 축구라는 스포츠를 매개로 '전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경험'을 이끌어 냈다는 데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적 이슈가 벌어졌을 때 남녀노소, 진영, 계층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분열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하지만 2002년 6월의 대한민국은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하자는 목표로 하나가 되었고, 전국은 오롯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이는 전세계를 놀라게 하며 한국의 위상과 존재감을 알리는데 대표팀의 성적 이상으로 기여했다. 대한민국에서 축구만이 아니라 스포츠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4강신화라는 히딩크호의 기대 이상 성과와 맞물려 '우리도 세계와 당당히 맞설 수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줬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 동질감과 에너지가 하나로 모여 분출되었을 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만들어낼수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2년의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대표팀보다도 같은 꿈과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했던 집단 응원의 추억이 더 강렬하게 회자되는 이유다.
 
하지만 2002년의 영광이 항상 긍정적인 영향만 남긴 것은 아니다. 4강신화가 남긴 거대한 후유증은 이후의 축구대표팀에게는 한동안 넘기힘든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대표팀은 이후 2002년만큼의 성적을 재현하지 못했고 지나치게 높아진 일부 팬들의 눈높이와 조급증 때문에 항상 비교당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히딩크 이후의 대표팀 감독들은 항상 히딩크와 비교되며 압박과 저평가에 시달려야했다. 히딩크 이후 유일하게 2010년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룬 허정무 감독조차 이룬 성과에 비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한국축구가 너무 오랫동안 '2002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독이 되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축구도 세상도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한국축구가 20년이 지난 아직도 식상한 2002 월드컵 이야기만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서사나 방향성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별은 손이 닿을 수 없는 그 자리에 별로서 남아있을때가 가장 아름답다. 2002년의 영광은 한국축구와 우리 국민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고 변하지 않을 전설로 남았다. 공정한 경쟁과 체계적인 과정의 중요성, 인재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 불공정한 악습의 타파 등 한일월드컵이 남긴 교훈은 앞으로도 꾸준히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가야한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팔이와 맹목적인 '신격화'로만 끝나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남긴 성과만큼이나 그 한계와 부작용은 없었는지, 지금의 시대에 뒤처진 부분은 없는지 새로운 성찰이 있어야 발전도 가능하다.
 
어쩌면 2002년의 성공이 지금까지도 한국축구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발상의 전환'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것이 아닐까. 한일월드컵이 만들어낸 4강 신화와 국민통합은 절대 운이나 기적이 아닌,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키우고 스스로 쟁취해낸 노력의 성과였다.
 
히딩크호는 세계축구와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딛고 성장했다. 평가전 대패로 '오대영'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철학과 소신을 유지했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방식으로 도전과 혁신을 멈추지 않으며 마침내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그리고 한일월드컵 20주년을 맞이한 지금, 앞으로 20년 뒤 미래의 한국축구와 사회에 필요한 다음 세대의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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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월드컵 20주년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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