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에 의식이 못 미칠 때 괴물이 탄생한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넷플릭스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이 한국사회를 뒤집어놓은 지 2년여가 지났다. 텔레그램 내에서 2019년 2월경부터 우후죽순 생겨났던 사이버 성범죄 목적 대화방 중 대표 격인 'N번방'과 '박사방' 운영자와 공모자들에 대한 사건을 통칭하는 해당 사건은 이미 너무 만연해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둔감해졌던 온라인 성폭력이 상상을 능가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입증한 실례로 충격을 줬다. 
 
본격적 수사는 2020년 초에 벌어졌지만 SNS상에서는 발생 초기부터 문제에 주목한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항상 사법제도의 대응은 늦었다. 꾸준히 해당 건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메아리가 될 뿐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첫 번째로는 이미 왜곡된 성문화가 만연해 상당기간 지난 시점이란 점이다. 어쨌건 예전보다 공개적으로, 눈에 직접 보이는 경우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 보니 할 일은 다 했고 온라인 공간을 일일이 다 어떻게 잡아내느냐는 안일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공권력의 규제를 벗어나는데 최적화된 SNS의 기능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영역에서 발생하는 공백을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씁쓸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텔레그램은 2013년 러시아 개발자인 두로프 형제가 만든 메신저 서비스로 최근까지도 광고를 허용하지 않고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등 상업화와 정부 검열에 싫증난 이들에게 대안적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도 5억5천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이용자를 두고 있다. 다른 메신저들과 대비되는 장점이 많아 필자 또한 꾸준히 이용 중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특성 때문에 국내에서도 근래 몇 년간 이용자를 늘려 왔지만 본사에서도 놀라워할 만큼 국내에서 텔레그램 가입자는 부침을 겪고 있다.  
 
2014년 후반 카카오톡 검열 논란 이후 대안으로 텔레그램 가입자가 폭증하기 시작한다. 이 당시 텔레그램의 이미지는 국가권력의 검열과 민간기업의 상업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심지어는 체제에 저항하는 대안적 사이버스페이스 해방구로 격찬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 이미지와 함께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텔레그램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이 존재했단 셈이다. 통제를 벗어나긴 했는데 자율적 자정작용 대신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게 된 이들이 기존 사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부작용은 제어 불능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혁신적 기술로 출발하더라도 사용자가 기존 체제의 부정적 면에 속박된 상황 그대로라면 거대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위험한 신세계'의 도래다. 
 
2_넷플릭스+독립영화감독‧전문배급사 협업사례 출발점
 
넷플릭스가 2022년 5월 18일 전 세계 공개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여러 면에서 담고 있는 내용 말고도 주목할 지점이 엿보인다. 해당 작품은 해외 OTT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장르, 즉 사회적 소재를 가공해 주제로 삼는 탐사보도 뉴스 다큐멘터리의 전형적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해외 수입 콘텐츠가 아닌 국내 자체제작으론 거의 첫 선을 보이는 시도이기에 충분한 의의와 화제성을 가진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본다면,
 
첫째. 2020년 한국사회를 한바탕 뒤집어놨던 일련의 텔레그램 사이버 성범죄 게시판 사건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뉴스의 연장선상 보도 외에 본격적인 개별 작업으로) 선두주자다. 즉 시의성과 화제성을 활용해 다큐멘터리의 강점을 극대화해 대중적으로 '팔리게' 만든 작업이다.
 
둘째. 사회적 비판을 적절히 (과도하진 않게, 하지만 충격적으로, 일정한 반향과 파장을 의도해) 다루는데 숙련된 경험을 가진 적절한 중견 독립영화작가를 기용하고, 관련 제작/배급사와 적극적인 협업을 진행했다. 연출을 담당한 최진성 감독과 제작과정을 담당한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는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감독과 전문 기업이다. 
 
셋째. 독립 다큐멘터리와는 비교할 바 없는 자원과 예산을 투입해 상당한 고증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을 보면 '때깔'이 다르다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자본을 투자하더라도 본전 이상 실적을 낼 판단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사업계획 하에 움직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상업화'로 씁쓸하게 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기획의 작업이 활성화될 긍정적 요소로 기능할 대목이다.
 
넷째. 시청자(관객)가 인지는 하고 관심은 있었지만 좀 더 심층적이고 상세한 정보를 원하는 수요에 부응한다. 보도매체 특성상 이슈가 타오를 때 집중되고 시일이 지난 후 평가나 정리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적 원인이 근절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시청자는 요약/해설에 목마르다.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 하더라도 일일이 검색해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이는 소수일 테다. 다수 대중의 정보 갈증을 보편적 기준에 맞춰 제때 제시하는 수요-공급 순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본 작품은 딱 그런 전형적 시도의 예시처럼 짜여 있다. 이런 시도의 경우 원 재료라 할 소재가 최우선이다. 그 점에서 영화가 택한 내용은 이만한 소재가 드물 정도로 최상급 재료에 속한다. 그렇다면 남는 건 소재를 낭비하거나 훼손치 않고 적절한 가공과 포장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는 솜씨, 그리고 태도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측면에 집중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3_2년 전 사회적 충격을 재현하고 정리하는 성실함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캡쳐 영화 이미지 캡쳐 ⓒ 넷플릭스

 
해당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시류에 편승한 선정적 기획들이 우후죽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며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곤 했다. 4.16 세월호 참사나 미투 운동의 사례처럼 말이다. 다행히 사건의 본질을 왜곡 훼손하는 이런 어설픈 시도는 여론의 무관심 하에 결국 실현되진 않았다.

대신에 비교적 예산의 제약을 덜 받고 자유롭게 표현하기 좋은 단편 독립영화에서부터 해당 사건과 연결성을 지닌 작업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본 작품이 등장하던 때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듯 독립영화 진영에서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몇 편의 장편영화들이 비슷한 시기 첫선을 보였다. 올해 전주에서 한국경쟁 대상과 배급지원상-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나란히 수상한 정지혜 감독의 <정순>과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이 대표적인데 해당 작품들은 차후 별도로 소개하려 한다. 이미 적지 않게 출현한 단편영화들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사회의 명백히 실재하는 어두운 이면에 대한 사회문화적 반영이라 봐도 무리가 없겠다.
 
공개된 결과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리 없겠지만 제목처럼 사건의 요체인 일련의 범죄 온상,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실태와 이를 운영하던 수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자연스레 범죄 스릴러의 장르 양식에 충실하게 전개된다. 적지 않은 여성 시청자가 초반 몇 분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후기를 올리기도 했던 바, 아무리 순화하고 또 순화해도 사건의 기본 윤곽을 어렴풋하게 형상화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거부감이 만만찮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이제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들어봤을 사건이지만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해당사건은 재빨리 희석되어버린 듯한 기분도 든다. 한국사회가 워낙 스펙터클한 속도중독 사회인지라 대중의 관심과 흥미는 금방 다른 데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본 작품에 등장하는 소수의 언론과 방송, 헌신적 활동가들이 그 안일함을 돌파해 이 새로운 조류가 가진 가공할 위협을 알아차린다. 작품 초반은 그 경악스런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을 무척 조심스럽게 재구성하지만 그런 고심 끝에 내놓은 결과물 역시 충분히 보는 이를 질리도록 할 만큼 차고 넘치게 충격적이다. 영상 이미지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뉴스 기사 읽는 것과는 비교 불가한 경지에 도달한다. 텍스트 독해만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수준의 이미지 파도를 영화가 연속적으로 선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정보와 골격만 남겨둔 채 대역을 이용한 재연과 애니메이션, 기 공개된 보도 자료들로 재현한 이미지들에 실제 해당 사건에 결합했던 이십여 명의 인터뷰가 결합되면서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영화는 1시간45분을 질주한다. 이미 뉴스로 다 확인된 결과인데도 범인들이 초반에 공론화를 수행한 언론방송인들에게 가했던 공격과 그로 인한 윤리적 고뇌가 화면 너머로 무겁게 전해진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 힘들었던, 놓쳐버린 지점이 생생하게 재연되는 순간이다.
 
결국 여론화되면서 공권력이 가동되자 그간 자신들을 쫓던 이들을 조롱하던 범인들은 차례로 검거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순간 권선징악이 구현되는 찰나의 희열에 매몰되지 않는다. 상업적 의도에 머물렀다면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천신만고 끝에 주인공이 악당을 체포하는 장면과 쿨하게 뵈는 후일담으로 끝낼 법 한데도 이 영화는 체포 이후에 후속타로 뒤따르는 숙제들을 (재미를 희생하고서라도) 조명하는데 노력한다. 
 
4_극영화와는 구분되는 다큐멘터리의 힘이 "살아 있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영화는 사건의 주범이라 할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이 34년, 박사방 운영자 "박사" 조주빈이 42년의 실형을 대법원 확정판결 받았으며 관련해서 총 3757명이 검거되고 245명이 구속되었음을 에필로그에서 자막으로 차례로 내보인다. 관련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과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는 일각의 비판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의 수사와 단죄가 이뤄졌다고 보일 만하다.
 
하지만 뒤따르는 자막은 왜 이 작품이 여전히 충격적인지, 해당 사건이 어떤 어두운 그림자를 여전히 드리우고 있는지를 소리 없이 웅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적으로 N번방 모방 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 'N번방 영상은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끔찍한 후일담이다. 그나마 해당 사건은 공급자 몇 명의 본보기 처벌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모혐의가 적용되어 "범죄조직"으로 규정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중형을 내릴 수 있었다. 작은 전진인 셈이다.
 
헌신적인 제보와 수사로 (만 단위를 훌쩍 넘는다는 N번방 접속자의 가공할 규모에 비해선 아쉬울지언정) 적지 않은 공범들까지 검거되고 실형에 처해졌다는 결말이 정보로 제공되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하다는 결론에 영화는 도달한다. 재수 없어 걸렸다며 참회와 반성은 보이지 않는 소수의 말단이 걸러졌을 뿐이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몸통은 여전히 건재하며, 왜곡된 성의식을 온존시키는 한국사회 구조적 모순이 끊임없이 악화 일로를 걷는 중이다. 
 
여전히 좀 특수하고 정도가 심한 유형의 성폭력 정도로 해당 사안을 인식하던 (본인 포함) 한국남자들은 (한계 가득한) 실정법상으로도 범인들이 '범죄조직'으로 규정되어 단죄 받고 있음을 본 작품을 보고 난 후 약간이나마 더 조심하게 될 테다. 적어도 그 역할만으로도 이 영화는 기본소임을 해낸 셈이다. 이미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적잖은 화제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본 작품의 충실한 효용이 확인되는 중이다.
 
<작품정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Cyber Hell: Exposing An Internet Horror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2.05.18. 공개|105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구성 최진성
출연 김완 오연서 추적단 불꽃
최광일 장은조 정재원
조승노 최지훈 이민상
전인재 유영실
손준호 김호진
이수정 강인욱
김혜정 서승희 박수진 조은호 유승희
강철구 최한겨레
조커
PD 김태훈, 김화범
촬영 박홍열
제작 (주)인디스토리
제공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방을 무너뜨려라 N번방 박사방 사이버 성폭력 다큐멘터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