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부호 존 록펠러,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 엄청난 재산을 넘어 세계를 움직인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세간에는 농반진반으로 '유대인의 역사가 곧 세계경제사'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또한 세계 경제의 메카 뉴욕에서는 세계 각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의 태반이 유대계 자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힘은 무엇일까.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3대를 훌쩍 넘어 무려 250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에 막강한 강자의 입지를 굳게 지키고 있는 유대인 가문이 있다.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집안으로 꼽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5월 8일 방송된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서는 <250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프레더릭 모턴 저)을 다루며 경제전문가인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가 나섰다.
 
250년 금융재벌이라면 어느 정도의 재산을 지닌 가문일까. 책 본문을 보면 '19세기 백년에 걸쳐 일가가 모은 재산은 4억 파운드(6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누구도 이처럼 많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 다섯 명의 형제는 신성한 왕권도 신성한 금권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5형제는 바로 돈 그 자체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화폐전쟁>을 집필한 중국 국제금융학자 쑹훙빙이 개인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을 추정한 결과, 19세기에 60억 달러라면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놀랍게도 '5경' 이상에 이른다.
 
흙수저로 출발한 로스차일드 가문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우리는 왜 로스차일드 가문에 주목해야 하는가. 지금은 로스차일드 가문하면 최고의 금융명문가를 떠올리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금수저 출신은 아니었다. 이들 가문은 자수성가형의 흙수저로 출발했고 18~19세기 당시만 해도 그들이 속한 유대인 계층은 기독교를 믿던 유럽에서 차별과 핍박을 받는 비주류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작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게토(강제 격리를 위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태동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탄생시킨 최초의 인물로 꼽히는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평범한 고물상 집의 아들로 태어난 훗날 엄청난 성공을 거둔 다섯 아들의 아버지가 된다.
 
마이어는 어린 시절 천연두로 양친을 여의고 소년가장이 된다. 본래 랍비(유대교 지도자) 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마이어는 양친의 사망으로 학교를 퇴교하게 되지만 3년간의 랍비학교 교육은 훗날 그의 인생에 지혜의 원천이 된다. 이후 마이어는 친척의 도움으로 은행에서 근무하여 금융기법을 마스터하고 다시 생가가 있는 게토로 돌아온다.
 
당시만 해도 마이어에게는 성(姓)이 없었고, 집앞에 붉은 방패 모양의 간판이 붙어있어서 친구들로부터 독일어로 이를 의미하는 로트칠트라고 불렸다. 마이어는 여기에 착안하여 자신의 성을 로드칠트로 정했고 이를 영어식 발음으로 바꾼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작이다.

마이어는 환전소를 병행하며 골동품을 판매했고 그중에서도 은행원 출신의 경험을 살려서 당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세계 각국의 고화폐 수집에 공을 들였다. 마이어가 귀족들과 거래를 트기 위하여 직접 향수를 뿌린 편지로 자신을 홍보하고, '우편주문 상품거래'를 도입한 것은,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초로 SNS를 통한 DM(다이렉트 메시지) 마케팅으로 평가받는다. 마이어는 핫센-카젤 공국의 군주 아들과 고화폐 거래를 성공시켰는데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한 국가 수장의 가족과 맺은 첫 거래로 기록된다.
 
마이어는 '어용상인(권력자의 비호를 받으며 궁중이나 관청에 물건을 대는 상인)'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일종의 명예였을뿐 사업에 별다른 특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권력자와 거래하는 어용상인이라는 직함은 그를 따라붙던 유대인 차별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데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마이어는 무려 20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이 중 10명은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유대인은 딸과 사위는 가문의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전통이 있었기에 5명의 아들만 사업에 동참한다. 마이어는 아들들에게 '다섯 개의 화살'의 예를 들어서 어떤 경우에도 단결할 것을 강조하고, 이후 다섯 개의 화살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대표하는 문양이 된다.
 
마이어의 다섯 아들인 암셸(독일), 살로몬(오스트리아), 나탄(영국), 칼만(이탈리아), 야코프(프랑스)는 각각 유럽 전역으로 진출하여 높은 지위까지 오르며 대성공을 거뒀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끈끈한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는 유대인 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과거 가나안에서 쫓겨나 전세계적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라고 불리우는 공동체를 형성했다. 유대인들은 랍비들끼리 편지를 교환하던전통을 발전시켜 종교적 견해 비롯하여 각종 경제-시사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다른 디아스포라와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 끈끈한 '유대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문화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 이를 바탕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각지에 은행을 설립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다국적 금융산업으로 발전시켰다.
 
금융산업에 주목한 유대인들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유대인들은 어떻게 금융산업에 주목하게 됐을까.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같은해,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이슬람을 격퇴하고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면서 유대인들을 추방한다. 유대인들은 이후 네덜란드에 자리잡았고 청어잡이를 시작으로 조선→무역→ 금융사업까지 진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유대인들의 특징은 한 분야에 뛰어들면 독과점으로 많은 이윤을 창출해낸다는 것이었고, 이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의 설립까지 이끌어낸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의하여 활성화된 '자본주의의 씨앗'을 사실상 완성한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꼽힌다.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사업수완이 좋았던 마이어의 셋째 아들 나탄은 영국에서 본래 무역업과 제조업을 하다가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주식 금융업의 가치에 눈을 떴다. 또한 당시 유럽에 빈번하던 '전쟁'은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빌헬름 9세의 재산관리를 맡게된 나탄은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진출하여 N.M 로스차일드 부자은행을 설립한다.
 
나탄은 콘솔채(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만기없는 영구 공채) 투자와 금괴 사업 등에 진출하여 엄청난 시세 차익을 누리며 가문을 번창시켰고, 1814년 워털루 전투에서도 한발 앞선 정보력으로 전쟁의 승리를 미리 파악한 덕분에 주가가 폭등했다.
 
이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뛰어난 정보 시스템 덕분이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대륙 곳곳에 흩어진 형제들간 비둘기로 편지를 나누고 똑똑한 정보원들을 고용하여 전문연락원을 양성하는 등 체계적인 정보교환 시스템을 구축한다. 또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보안을 위하여 중요한 문서마다 유대언어인 이디시어에 고유의 암호를 섞어 사용했다. '정보가 곧 돈'이라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철학이 형성된 배경이다.
 
가문을 일으켜 세운 마이어는 68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우리 집안의 자산은 일체 공표하지 말라", "돈이야말로 유대인을 구원하는 단 하나의 무기임을 명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마이어의 유언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공식적인 자산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비판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주가조작단'으로도 불린다. 나탄이 워털루 전투의 승전 정보를 미리 접하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진 틈에 헐값으로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하루에 20배 가까운 차익을 올린 데서 비롯됐다. 당시 영국 채권의 62%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손에 들어간 반면, 영국의 명문 자산가들은 대부분 파산했다. 이를 두고 '로스차일드가 영국을 샀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강경한 유대인 혐오정책을 추진했던 히틀러의 독일 나치 정권이 지어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나탄이 의도적인 속임수로 주가를 조작한 것인지는 알수없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전이나 이후로든 다른 이들보다 빠른 정보력을 적극 활용하여 교활한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한 것만큼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주식 용어로 이른바 '양털깎기'라고 불리우는, 대중의 공포를 이용해 고의적 불황을 만들어 주식이 최저가일 때 대량매수하여 자본을 수탈하는 투기 방식을 자주 써먹었다. 나탄은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영국 최고 채권가이자 영국 중앙은행의 공채발행 실권자로 등극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당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고전하던 영국에 밀수를 통한 군자금 수송까지 전담했다. 이미 자본력과 금융전쟁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버틴 영국에 패한 나폴레옹도 오죽하면 워털루 전투를 앞두고, "유럽에는 오직 하나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로스차일드다"라고 한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스토리

 
영국 경제를 장악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1819년 영국을 세계 최초의 금본위제 국가로 만들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2004년에야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철수하기까지 약 200년 가까이 세계 금 시장을 장악해왔다. 영국 파운드화와 런던 금융시장이 전 세계를 주무르던 시절, 로스차일드 가문의 자산은 약 1억 3600만 파운드로, 영국 최고 부자라는 왕가(500만 파운드)의 27배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본문에는 '나폴레옹과 함께 로스차일의 업적과 이름은 당대를 혈통과 간판의 시대에서 돈과 능력의 시대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산업혁명을 앞당기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일찍이 철도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일각의 반대론과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름값을 믿고 사람들이 몰리며 철도 주식 청약이 대성황을 이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막강한 인맥과 정보력을 활용하여 철도산업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이렇게 구축된 철도 인프라는 산업혁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산업화는 유럽을 바꾸어놓은 데 이어 1860년대에는 미국으로까지 확산됐다. 오늘날 전세계에 철도나 항구, 전차, 수도 등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 산업에 투자하기 위한 자본이 활발히 움직이게 되는 선례를 마련했다. 유럽 각국에 포진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규모 자금 조달로 전세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은 유대 민족 국가인 이스라엘 건국에도 상당히 기여했다. 20세기 유럽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을 내걸고 자신들만의 유대국가 건설을 추진한다. 마이어의 손자이자 다섯째 제임스의 아들인 에드몽 로스차일드는 시오니즘 운동에 투신하여 팔레스타인 땅을 매입하여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이스라엘 영토의 80% 이상이 에드몽이 매입해준 땅이라고.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유대인이 유랑민이 지낸 200년의 세월 동안 에드몽 로스차일드에 버금가거나 그와 견줄 만한 인물을 발견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번영에 최대 위기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등장이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침공하여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과 국적을 모두 박탈하고 추방했으며 대분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의 트라우마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2차대전 종전 과 가문의 재건 이후에도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것을 숨기고 자산 규모도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것이 관행이 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이들 가문은 지금도 금융-석유-다이아몬드-레저-우라늄-와인-백화점 등 다방면의 사업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건재하다. 거대 유대계 자본의 배후에는 항상 로스차일드 가문이 있다는 이야기 나온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대표하는 문장에는 콩코디아(Concodia), 즉 '협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보와 인맥, 단결력, 기회 활용,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가문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번창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성공비결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협력은 단지 가문의 이익이나 소수의 이권만을 위해서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감, 모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공존에 바탕을 두었을 때 그 가치를 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서재 로스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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