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포스터 이미지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포스터 이미지 ⓒ (주)엣나인 필름

 
프랑스 파리. 80대 중반의 동양계로 보이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혼자 몸으로 세 마리의 반려 묘와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은 인생 황혼을 보내는 은퇴생활자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면에 펼쳐지는 내레이션과 자막해설을 통해 관객은 그녀가 87살 현역 피아니스트라는 걸 곧 알게 된다. 그것도 꽤나 저명한 음악가라는 것을. 그녀, 후지코 헤밍은 클래식에 문외한이더라도 누구나 종종 들어봤음직한 곡, 클로드 드뷔시의 '월광'을 가볍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제 영화가 두 시간 가까운 여정을 출발할 시간이다.
 
음악가의 거의 모든 것을 화면에 눌러 담은 정통파 인물 다큐멘터리
 
영화는 엄격하게 짜인 구조 대신에 후지코 헤밍의 현재 일상과 연주일정 동선을 졸졸졸 뒤따르며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피아니스트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공사를 넘나드는 현재의 시간' + '당사자의 증언 및 제공해준 각종 자료들로 재구성된 과거 생애'가 찬찬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보따리처럼 여유롭게 공개된다. 중간 중간 후지코 헤밍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여러 곡들을 연주한다. 오랜만에 접하는 클래식의 향연이 장구한 인생 여정 소화에 지친 귀를 즐겁게 해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다소 파편적 나열처럼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장편 데뷔작이라는 감독의 카메라는 그저 부지런히 초로의 피아니스트 행적을 쫓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식 연주회 장면은 영상의 질이 비교적 안정되고 깔끔하지만, 거리를 걷거나 집 안에서 즉흥적으로 포착한 순간들은 화질도 불균등한데다 핸드-헬드 수준의 화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좀 더 사적 기록이 충실하게 갖춰진 것처럼 효과가 발현되기도 한다. 긴장감 너무 갖지 말고 천천히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공적 활동과 사적 일상이 가로 세로 종횡으로 교차하며 우리에겐 비교적 생소한 주인공을 머릿속에서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감독의 '작전'이 들어맞는 셈이다.
 
여기에 주인공 후지코 헤밍의 어릴 적부터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큰 몫을 해낸다. 평소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자신의 생애 전반이 잘 기록되어 있었다. 본인이 직접 그려놓은 캐리커처와 일러스트가 솜씨가 평범하지 않다. 역시 예술가는 낙서도 뭔가 다르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시선을 고정해본다. 그림을 곁들인 일기와 기록물들을 통해 주인공의 생애를 조립하는 직소퍼즐이 하나씩 촘촘히 채워져 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1, 2월을 파리에서 보내는 중이다. 예술가의 도시 파리는 그녀가 가진 몇 군데 집들 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파리 예찬 속에서도 지인들과 꼼꼼히 1년 계획을 상의하기 시작한다. 8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후지코 헤밍은 매년 전 세계를 무대로 60여 건의 콘서트를 소화하고 있었다. (영화 완성 당시) 87살 나이라면 은퇴를 진즉 하고도 남을 법한테, 후지코 헤밍은 대체 왜 이렇게 연주에 집착하게 된 걸까? 서서히 감독은 그녀의 과거 기억을 호출하는 대장정을 개시한다. 그를 통해 1932년생인 주인공이 이렇게 황혼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비밀이 하나둘 밝혀진다.
 
노 음악가의 생애주기 재구성하기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 필름

 
주인공은 스웨덴인 아버지 '죠스타 게오르기 헤밍'과 일본인 어머니 '오츠키 토아코'가 독일에서 만나 낳은 아이였다. (일단 혈통의 기원부터 뭔가 대단해 보인다.) 아버지는 산업 디자이너,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교사로 일했고, 둘은 1920년대 후반 일본에 건너와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곧 부부간에 불화가 발생하고 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는 가운데 부양책임을 다하지 못하던 아버지는 후일을 기약하며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남동생에겐 아버지를 향한 기억 자체가 공백으로 남았다.)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으로 패전 직후 일본에서 남매들을 부양했지만 각박한 인심과 전후 궁핍한 사정은 어릴 적의 그녀와 동생에게 적지 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동생 오츠키 울프는 현재 중견배우로 활동 중이다.)
 
푸른 눈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백인 혼혈 혈통을 숨기려고 무척 애를 썼다고 밝힌다. "귀축영미"를 표방하던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에서 북유럽 계 혼혈이란 건 인종차별은 물론 자칫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직감한 것이다. (일본군은 동남아시아에서 같은 전체주의 국가이던 스페인 민간인들도 학살한 바 있다.) 심지어 배급으로 연명해야 하던 패전 직후 상황에서 출신을 문제 삼은 이웃들의 분풀이와 따돌림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늘 떠나고 싶었던 게 능히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영화는 정치적/역사적 쟁점과는 거리를 두지만 격동의 시대를 평범하지 않은 조건에서 태어나 자란 후지코 헤밍에게서 온전히 그런 과거를 지울 순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어린 그녀를 상당히 엄격하게 조기교육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 영재교육에 집착하는 한국사회 교육열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상상이 갈 풍경이다. 어릴 적 후지코 헤밍은 어머니의 강압적 훈육에 종종 맞붙어 대립하긴 했지만 아직 어린 그녀가 어머니를 거역할 도리는 없었다. 집안 형편도 개인 강습을 보낼 처지는 못 되었지만 어머니의 은사인 독일 음악가 레오니드 크로이처가 그녀의 재능을 좋게 평가해 강습을 맡아준다.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음악영재의 진로는 14살 적 걸린 중이염에 이은 한쪽 청력 상실로 첫 번째 시련을 겪는다. 오랜 노력과 치료 덕분에 약간의 호전은 있었지만 정신적 좌절과 방황은 필연적일 터이다. 그리고 도쿄예술대학을 마친 뒤 유학을 준비해 보지만 일본 특유의 부계 국적부여 때문에 주인공은 일본에서 살아도 무국적자 신분인 꼴이라 유학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이 흘러간다.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외국인이었다면 후지코 헤밍은 일본국적을 자연스럽게 취득했을 테다. 하지만 그 반대인 상황은 일본에서 성장했음에도 주인공에게 일본 국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체성 혼란과 그에 따른 불이익이 꿈 많던 시절을 찢어놓았다.
 
마침내 태어난 곳인 독일 대사의 도움에 힘입어 난민 대우로 독일예술대학에 진학하지만 국적문제와 청력한계는 주인공이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전망을 잃게 한다.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같은 거장들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아 첫 리사이틀 기회를 얻었지만 심한 감기로 또다시 청력 결함이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경쟁 치열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렇게 주인공은 낙오하고 만다. 결국 졸업 후 십여 년 넘게 후지코 헤밍은 피아노 교사로 그칠 뿐이었다. 생활은 빈궁했고 연애는 애초에 실패한 상태다. 그런 판국에 멀리 일본에서 좋지 않은 전갈이 날아온다. 애증 관계였던 어머니의 사별 소식이다. 20년이 넘는 유럽생활을 정리하고 주인공은 일본에 돌아왔지만 그저 그런 나날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중년을 넘어서도 후지코 헤밍은 피아노 교습으로 생계를 불안정하게 이어간다. 그래도 연주는 결코 놓지 않았다.
 
평생을 따라다닌 불운에 대한 보상처럼 일생에 딱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가 우연히 그녀에게 찾아온다. NHK 방송국에서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과 연주 세계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큰 화제를 얻게 된다. 1999년의 일이다. 나이 60이 되도록 그저 그런 피아노 강사로 마칠 것 같던 후지코 헤밍의 삶은 "인생 60부터!"의 실사 판으로 재탄생한다. 데뷔앨범이 클래식 앨범으론 보기 드문 성공을 국내에서 거두고 뒤이어 카네기 홀 공연 등 주인공이 평생 꿈꿔왔던 거의 모든 것이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이후 기반을 정립한 후지코 헤밍의 나날이 영화에서 소개되는 지금의 모습이다.
 
황혼에도 저물지 않는 예술 혼과 도전정신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 필름

 
그런 판타지 같은 사연들을 하나둘 공개하면서 영화는 경계인으로서 일본과 프랑스, 독일, 미국 집들을 오가며 과거의 인연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후지코 헤밍을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피아노 독주회를 주로 진행하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포맷 형태 연주자들과 협연하는 것도 과감히 시도한다. 그녀가 대륙별로 흩어진 거처들과 그 곳들을 거점으로 벌이는 활동은 후지코 헤밍의 음악 세계가 그저 기구한 인생역정으로 반짝 조명된 스타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가지는 영향력을 공인받는 기능도 수행한다. 오대양 육대주 종횡무진 펼쳐지는 연주여행은 러시아부터 아프리카, 일본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를 포괄하고 있었다.
 
여정의 와중에 주인공의 사적인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후지코 헤밍의 첫사랑 이야기 이후 별다른 연애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독신으로 평생을 보낸 주인공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로 가족처럼 대한다. (바쁜 일정 와중에도 반려동물 구호를 위한 자선공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나가다 길에서 만나는 개에게도 인사를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대단하진 않아도 세계 곳곳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지만 자선을 행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아마 그녀 자신이 불우하던 시절 (은인이 없진 않았지만) 타국을 전전하며 가난하고 주목받지 못한 일생을 살았던 것에 대한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가족 대신 학창시절 머물던 하숙집 일가족이나 재능을 인정한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
 
하지만 음악가로서 프로 의식은 결코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영화 내내 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해야 하기에 청중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자 까다롭게 피아노 상태와 공연장 상황을 체크한다. 괜히 피아노를 선택한 바람에 공연 때 직접 악기를 갖고 이동할 수 없다며 넉살 좋게 웃기도 하지만 썩 좋지 않은 피아노를 만져야 할 때는 거의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음은 청춘일지언정 너무 늦게 발견된 후지코 헤밍의 육신은 87살 생물학적 연령을 부정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로서 적절한 신체 조건은 그녀의 강점이지만 평생 발목을 잡았던 청력 문제는 여전히 질곡으로 다가온다. 공연에선 나날이 청력감퇴 문제가 애로로 작용한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인트로 타이밍 같은 문제는 치명적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도 동료와 청중에게 책임을 다해야 하는 무게감은 아들 뻘 지휘자에게 진솔하게 고민을 토로하는 면모로 드러난다. 프로페셔널한 태도다. 평생 꿈꿔왔던 순간들을 망치기 싫은 예술혼의 발현일 것이다.
 
그런 도전과 시련 와중에 세계 구석구석을 찾는 연주회 실황들이 포개어진다. 80대 중반에 감히 소화하기 힘들 만큼 강행군이다. 컨디션 조절에 유독 신경을 쓰는 면모도 종종 발견된다. 세계 각국을 방문하는 와중에 자연히 목격되는 주인공의 추억과 지역들에 대한 품평도 여행기로서 소소한 잔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대목은 주인공의 연주 리스트다.
 
어느 순간 후지코 헤밍의 공연 레퍼토리가 대부분 19세기 낭만주의 사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은 깨닫게 된다. 그 트랙리스트를 공유하는 호사를 누리는 순간은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덤의 행운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줄줄이 호명되지만 주인공은 낭만파의 집대성이자 피아노 독주 리사이틀의 전형을 창시한 프란츠 리스트와 본인을 많은 면에서 등치시키려는 숨은 꿈을 드러낸다.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를 배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산맥, 카를 체르니('체르니' 피아노 교재의 바로 그 체르니)나 <아마데우스>의 진 주인공 안토니오 살리에리, 안토니오 로시니 등에게 사사하거나 영향을 받았고, 쇼팽이나 드뷔시와 교류를 이어갔다. 라흐마니노프는 제자 계열에 속한다. 당대 기라성 같은 음악가 중에 리스트는 유독 드물게 장수하며 피아노 중심의 음악활동을 펼쳤고 이는 장수 중인 후지코 헤밍과도 이어진다. 주인공 또한 어머니의 은사이기도 한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조건 없는 개인교습을 받았던 인연이 있다.
 
리스트는 큰 손을 이용해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대가와 자신의 두툼한 손의 조건을 은근히 비교하는 후지코 헤밍의 호승심은 귀여운 할머니의 면모와 함께 나이와 국적을 초월해 최고가 되고픈 예술가의 욕망을 드러내다. 그래서 유독 리스트의 곡을 연주하거나 거장이 집대성한 19세기 낭만파 경향에 대한 기호, 그리고 헝가리 음악인과의 협연이 잦다. '벨 에포크'에 대한 후지코 헤밍의 애찬은 그저 경계인의 향수나 로망을 넘어 자신이 추구하고 이상적으로 여기는 음악이 꽃피는 토양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그렇게 이제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알 길 없는 자신의 모래시계를 응시하며 대가의 숨결을 재현하려는 주인공의 예술적 야심이 불타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100세 시대가 곧 도래한다고 떠들지만 나이가 들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물러앉게 되는 추세는 여전한 가운데 주인공의 예술가로서의 경쟁심이 황혼에도 건재하다는 것 자체가 영화 후반에 지속적으로 확인되면서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저 '인간극장' 등속으로 본 작품이 그치지 않게 하는 장치들이다. 후지코 헤밍이란 예술가에 대해 경외감이 드는 순간들이다.
 
라 캄파넬라 연주가 상징하는 것들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 (주)엣나인 필름

 
그녀의 데뷔앨범 표제이자 자신의 공연에서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대표곡이 있다. 현존하는 그 누구보다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자부심 가득한 곡이기도 하다. 바로 주인공의 롤 모델이자 음악적 지향,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시리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라 캄파넬라'다. 숱한 낭만파 시절 거장들의 곡을 영화 내내 연주하고 있지만 이 곡의 대우는 남다르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연주하는 곡들은 친절하게 자막으로 정보가 표기된다. 아마 영화 끝나고 나면 몇몇은 재생 목록을 만들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라 캄파넬라' 연주가 영화의 절정을 점유한다. 이 영화가 그저 연로한 예술가에 대한 예우 차원을 넘어서는 헌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독 스스로 증명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금도 기량을 연마하며 경쟁심에 불타는 창조적 욕망을 분출하는 후지코 헤밍의 존재감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공연 한복판으로 관객은 침묵 속에 자리하게 된다.

그와 함께 에필로그가 서서히 전개된다. 인생 마무리를 생각해야 할 시기인 그녀가 이별 후 다시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 엄한 조기교육으로 갈등이 컸던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뒤따른다. 평생을 상처로 남았던 기억들을 온전히 자신의 한 부분으로 품어 안는 인간적 성숙이 오랜 무명과 궁핍으로 숙성된 예술가의 면모 한켠을 차지한다. 그렇게 한 예술가의 초상이 무빙이미지로 온전히 화면 가득 담기던 두 시간이 저문다. 크레디트와 함께 은은하게 빛나지만 결코 쇠락과는 거리가 먼 드뷔시의 월광이 영화 도입부와 수미상관을 이루듯 흐른다. 흘러간다.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잉그리드 후지코 게오르기 헤밍 코마츠 소이치로 오츠키 울프 라 캄파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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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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