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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화가 조풍류의 자리는 늘 바뀌었다. 그는 한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예술가다. 화가이자 소리꾼, 직업인이자 풍류객, 자연인이자 문명인인 까닭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이 모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다. 그는 강원 산간에서 남도로, 다시 제주로 이주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현재 자리잡은 곳은 바로 서울이다.

#화가의 현재 : 자연 속 문명

"전 세계 도시를 둘러봐도 서울처럼 개성 있는 도시가 없어요. 산과 자연과 문명이 이렇게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 없단 말이죠." 조풍류는 변치 않는 자연을 그리되, 현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서울이라는 '자연 속의 문명'을 그리는 이유다.  

서울에 자리한 조풍류의 '푸른 여정'은 인왕산을 거쳐, 북한산, 남산, 도봉산, 수락산 진경으로 이어졌다. 진경산수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캔버스에서 밤은 짙으나 밝고, 낮은 화려하면서 소박하다. 조풍류의 '밤'은 보름달의 빛과 문명의 빛이 공존하며, 조풍류의 '낮'은 자연의 색과 인간의 흔적이 어우러진다.

이렇듯 자연과 문명의 빛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화가의 '살아있는 눈'에 있다. "서양화의 눈은 하나의 카메라 같지만, 한국화의 눈은 망원렌즈와 현미경을 함께 갖췄어요. 서양의 원근법과 동양의 역원근법의 차이죠."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세상 속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때문에 그의 진경에서는 '올려다 보는 것'(고원법)과 '앞을 보는 것'(평원법),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심원법)이 모두 존재하며, 서로 다른 빛과 색이 공존할 수 있다. (작품·백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캔버스천에 먹·호분·분채·석채, 122*190, 2017) 
 
백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캔버스천에 먹·호분·분채·석채, 122190, 2017
▲ 백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백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캔버스천에 먹·호분·분채·석채, 122190, 2017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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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지향 : 상상의 공간, 상상의 색

'살아 있는 눈'을 가진 화가가 세상으로 직접 걸어들어가는 지점에서 상상력이 개입한다. 화실 안에서의 작업이 상상을 불러오는게 아니라 세상 안에서의 작업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게 한다. 상상은 가상이 아니라 '진실 너머의 진실'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공간도, 새로운 색도 모두 진실에 근거한다.

이제 화가의 시선은 진경(眞景)이 아니라 진경(眞境)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인왕산 너머의 인왕산을 만나는 것이다. 보는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대로 그린다. 하늘은 짙푸르며, 노랗게 변주된다. 산은 검으며, 어느새 빨갛게 타오른다. 선은 선명하다 이내 흐려진다. 그렇게 산과 하늘이 만나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공간, 새로운 색이 탄생한다. (작품·인왕산, 한지에 먹·호분·분채·석채, 65*35, 2017)
 
인왕산, 한지에 먹·호분·분채·석채, 6535, 2017
▲ 인왕산 인왕산, 한지에 먹·호분·분채·석채, 6535, 2017
ⓒ 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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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어디서 바라본 것도 아니고, 실제로 가본 곳도 아니에요. 그저 어떤 기억에 의존해서 그린 거예요" 그가 말하는 '어떤 기억'이 상상의 기억이든, 고향의 기억이든, 미래의 기억이든 우리는 이 작품에서 조풍류의 지향점을 미리 엿보게 된 것일지 모른다.   

#화가의 여행 : 진경眞境의 공간

화가 조풍류의 최종 종착지는 서울이 아니다. 그는 '서울 연작'이 마무리되는 대로 지금의 자리를 떠나려 한다. 진경(眞景)이 곧 진경(眞境)이 되는 공간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바다라도 건널 것이다. 

그가 찾는 '진경의 공간'은 '예술의 공간'일 테다.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공간, 죽음과 생명이 어우러지는 공간, 빛과 색이 버무려지는 공간, 노래와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 공간. 화가는 이 '예술의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예고했다.

"예술적인 삶을 살아야 작품이 나와요. 그러려면 나만의 자리에서 나만의 삶을 살아야겠죠."

태그:#조풍류, #윤갤러리, #인왕산, #백악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진경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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