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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인 제주풀무질 책방 내부 모습
▲ 제주풀무질  동네책방인 제주풀무질 책방 내부 모습
ⓒ 은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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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제주도에는 70개 가까운 동네책방이 있다. 먼저 동네책방이 무엇인지 보자. 나는 다음 다섯 가지가 있어서 동네책방이라고 생각한다.

1. 동네책방은 학교와 관공서가 모여 있는 도시 중심가에 있기보다는 마을에 있다. 제주도에는 팽나무가 많다. 길을 넓히고 집을 짓더라도 오래 된 팽나무는 베지 않는다. 동네책방은 마을에 있으면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팽나무 같은 마을지킴이다.

2. 동네책방은 학습지나 기술서적을 팔기 보다는 인문 교양 어린이 책을 주로 판다. 학력중심사회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지금 세상은 남과 경쟁을 해서 이겨야 잘 산다고 말을 한다. 영어 수학을 잘해야 이름난 대학에 들어간다.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려고 학생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푼다. 그럴수록 생각하는 힘은 줄어든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이 평화롭게 사는 길은 무엇인지, 내가 행복하게 사는 동안에 다른 이들은 불행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편하자고 만드는 기계가 자연을 더럽히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나라는 70년 넘게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이 열리는지, 지금부터 100년 앞서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살에 힘들게 살았는데 아직도 그런 구렁텅이에서 왜 못 벗어나는지. 이런 물음을 갖고 있는 책을 파는 곳이 동네책방이다.

3. 마을에 있는 문화 오아시스다. 동네 골목마다 노래방, 전자놀이방, 머리방, 점방, 복덕방, 소주방, 약방, 다방, 공부방이 있다. 그런 곳들은 많은데 책방은 찾기 힘들다. 책방이 있는 곳은 사막에 있는 샘터다. 메말라 가는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곳이 동네책방이다. 책방은 아이와 어른이 손을 맞잡고 와서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웃고 떠들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살가운 사람끼리 서로 책을 선물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눈다. 책읽기모임, 시낭송회, 음악회, 독립영화보기모임, 바느질모임, 타로모임도 한다. 글쓴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세상을 새롭게 보려는 토론을 하는 자리가 동네책방이다.

4. 동네책방은 동네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도시에 있는 큰 책방이나 전자 책방은 돈을 주고 책을 사고 파는 일을 주로 한다. 동네에 있는 책방은 아침밥은 드셨나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가요, 이 책 재미있나요, 지난번에 사신 책은 다 읽었나요, 혹시 읽을 만한 책을 또 골라 주실 수 있나요, 요즘 마음이 답답해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책 하나만 골라주세요, 우리 아이를 잠깐 책방에 맡겨 놓고 와도 되나요, 채식을 하고 싶은데 좋은 책이 있나요, 시는 평소에 잘 안 읽는데 시집 한 권만 권해 주실 수 있나요 하면서 마음을 나눈다. 또 손님들은 책방에서 세상을 바꾸는 서명운동을 하면 기꺼이 이름을 써 준다. 먹을거리를 가져와서 함께 먹기도 한다. 동네책방은 따뜻한 정을 나누는 쉼터다.

5. 동네책방은 세상을 맑고 밝게 사는 슬기를 나누는 곳이다. 지금 세상은 돈을 많이 벌면 대접을 받는다. 자연이 더럽혀지고 목숨이 있는 모든 것들이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해도 경제발전만 한다면 용서가 되는 세상이다. 동네책방은 그렇지 않다. 돈을 중심에 놓지 않고 생태 평화 인권 나눔을 생각한다. 경제성장지상주의와 학력중심주의를 벗어난 곳에 동네책방이 있다. 지금은 기후위기가 심해서 사람 목숨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목숨들이 위태롭다. 기계문명을 벗어나서 자연을 더럽히지 않는 삶을 찾는다. 그 한가운데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서 책읽기모임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을 하면서 자연을 더럽히지 않는 삶을 찾는다.

동네책방들이 망하는 이유
 
동네책방인 제주풀무질 앞 모습
▲ 제주풀무질  동네책방인 제주풀무질 앞 모습
ⓒ 은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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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소중한 동네책방들이 왜 망하고 있을까. 왜 홀로 제주도에만 동네책방이 많아지는 것 같을까. 먼저 동네책방들이 마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이유를 네 가지만 들겠다.

1. 완전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 나라들은 책방을 지키려고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10%를 싸게 주어야 하는 부분도서정가제를 한다. 책은 한 권을 팔면 이익금이 평균 25%쯤 된다. 책값이 10,000원이라 치면 2,500원이 남는다. 밥집이나 찻집은 이익금이 70%가 넘는다. 어떤 사람들은 10,000원 짜리 찻값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10,000원 짜리 시집 한 권을 비싸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점점 책을 읽는 문화가 줄어들어서 그렇다. 낮에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지쳐서 책을 읽을 시간과 마음이 없다. 답은 간단하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야 하고, 적게 일을 하더라도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럼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책방은 어떻게 살려야 할까. 이 답도 간단하다. 책방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나 학교는 정가로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 주면 된다.

2. 어느 가게도 마찬가지지만 동네책방들도 대부분 가게를 빌려서 장사를 한다. 집 주인은 어떻게 하든지 월세를 많이 받으려 한다. 임대차보호법에는 해마다 5% 넘게 달세를 올릴 수 없고 10년 동안은 장사를 하도록 보장한다. 이것을 제대로 지키는 집 주인은 별로 없다. 장사가 좀 잘 되면 집 주인이 나서서 장사를 하겠다고 나가라고 한다. 또 건물을 헌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좋은 집 주인을 만나기 전에는 풀릴 수 없는 문제다.

3. 학력과 기술 중심 사회가 되면서 인문 교양 어린이 책들을 덜 본다. 도시에 있는 책방들은 그런 학습지와 참고서 매출을 팔아서 유지한다. 아니면 10%를 싸게 주더라도 도서관과 학교에 책을 납품하면서 겨우 버틴다. 이렇게 해서는 도시에 있는 책방들도 오래 못 간다. 그곳은 임대료도 훨씬 비싸고 일꾼들을 써서 임금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에 있는 동네책방들은 더하다. 도서관과 학교에서 책을 주문하는 일도 드물고, 납품액도 적으면서 그마저도 10% 싸게 달라고 하니 일은 일대로 하고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4. 전자책방과 대형중고서점이 책 판매를 싹쓸이한다. 인터넷서점은 출판사에서 책을 받을 때 실물매장보다 10% 넘게 싸게 받는다. 그러니 그곳은 10% 싸게 주어도 많이 남는다. 또 대부분 도서관이나 학교는 대형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산다. 도시 중고서점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책도 들어온다. 사람들은 굳이 제값을 주고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는다.

그럼 제주도에는 어떻게 해서 책방이 많은지 보자. 다음 두 가지만 말한다.

1. 제주도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잘 이루고 있다. 제주시나 서귀포시에 있는 일부 큰 책방에서는 참고서를 10% 싸게 주기도 하지만 마을에 있는 작은 동네책방들은 모두 정가로 책을 판다. 제주도에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책을 사면서 깎으려 하지 않는다. 또 동네책방 일꾼들도 도서정가제 뜻을 잘 이해한다. 아마 어느 한 곳이 책이 싸게 주면 다른 동네책방들도 그렇게 하게 되고 결국 제 살 깎아먹기다. 책방이 문을 닫는 길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기관에서 꾸리는 도서관이나 학교는 당연히 지역에 있는 책방에서 정가로 책을 사야 한다. 책방들은 10% 싸게 해서 책을 납품하는 일에 반대해야 한다. 내가 서울에서 26년 동안 책방을 했다. 도서관과 학교에서 정가로 사는 곳도 있다. 그곳이 행정감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만약 그런 일로 감사를 받는다면 '오히려 국가가 동네책방을 죽이는 일에 나서냐'고 맞서야 한다. 책을 1000권 주문할 것을 900권 주문한다고 도서관에 오는 사람이 줄어드나. 책을 많이 갖추기보다는, 있는 책들을 보러 도서관에 사람들이 오도록 힘을 써야 한다.

2. 제주도는 아름다운 풍경을 지녔다. 제주도에 있는 책방들도 아름답다. 제주도에 있는 책방들은 눈만 돌리면 한라산이 보이고 오름과 돌담과 밭과 바다가 있다. 제주도에 있는 책방으로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은 책도 사고 아름다움도 마음에 담는다. 내가 꾸리는 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책방이 예쁘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책방이 예쁜 이유를 세 가지를 댄다. 첫째는 책이 아름답다. 책 껍데기와 책 내용이 스스로 말을 한다. 둘째는 책방 가까이 있는 풍경이 아름답다. 물론 책방 안도 자연과 어울리게 꾸몄다. 셋째는 책방에 오는 손님이 제일 아름답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책이 있고 풍경이 아름다우면 뭐하나. 그곳에 사람이 없으면 쓸쓸하기만 하다. 그럼 책방에 오는 손님이 아름다운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될까. 아니다. 책방으로 사람이 오도록 해야 한다. 좋은 책을 갖춰 놓고 책방을 잘 꾸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책방이 오래도록 살아남는 길 ​​​​​​​
 
책이 쌓인 모습(자료사진).
 책이 쌓인 모습(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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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책방 일을 하는 일꾼들 마음에 있다고 본다. 마음이 중요하다. 일꾼은 책을 좋아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출판사를 하거나 책 유통을 하거나 책방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돈은 못 벌지만, 책으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세상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책 일을 해야 한다. 또 책방에 손님이 왔는데 책을 한 권도 사지 않고 그냥 나가도 너그럽게 봐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참 힘든 일이다. 특히 제주도에 있는 책방들은 예뻐서 사진만 찍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떤 책방들은 꼭 책을 사거나 차를 마셔야 책방에 들어올 수 있다.

어떤 책방은 미리 돈을 내야지만 책방 문을 열어준다. 참 안타깝다. 그 마음은 잘 알겠지만 어느새 마음 한 쪽이 불편하다. 또 책방 일꾼은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한다. 제주도에 있는 많은 책방들은 책방 대표가 자리에 없거나 책방 문을 여는 날이 일정하지 않은 곳이 있다. 사람들이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을 일부러 찾는 것은 책을 사려는 마음도 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일꾼들과 눈빛 맞춤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 책방만이 가지고 있는 책들은 책방 일꾼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 책방에 있는 책들이 마음에 들면 손님들은 다시 찾아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책방을 알려 준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다. 도서관이나 학교에 10% 싸게 책을 주는 납품에 애쓰기보다, 그날그날 오는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정가로 책을 팔면서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책방이 오래도록 살아남는 길이다.

그런 손님들은 책이 비싸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책방 일꾼이 권하는 책이 좀 비싸더라도 고맙다는 말을 하며 산다. 책방 일꾼은 손님들에게 권해 주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방 일꾼이 읽은 책들은 자연스럽게 손님들에게 권해 주게 된다.

6년 동안 운영한 책방 닫으며... 그 일꾼은 슬퍼했다

이제 글을 마쳐야겠다. 2022년 3월 말에 경기도에 있는 한 책방이 문을 닫았다. 6년 동안 책방을 하면서 책방 안에서 200회 넘게 문화 행사를 했다. 책방을 살리려고 국가기관에서 하는 지원사업을 찾아 다녔다. 그 책방 일꾼은 말했다. 3월 4월이면 국가기관에서 하는 응모사업에 뽑히려고 컴퓨터를 앞에 놓고 씨름을 하는 자신이 지쳤다고. 부동산업자들은 수수료를 받고 일을 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작가와의 만남을 꾸리면서 모임에 올 사람들을 모으는 자신이 힘들다고 했다. 책만 팔아서 책방을 꾸리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고.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꿈으로 책방을 열었는데, 언제부턴가 납품과 국가지원사업에만 마음을 뺏겨서 이젠 내려놓는다고. 언제부턴가 자신의 책방은 국가기관을 알리는 홍보업체가 되었다고. 그렇게 해야 책방 월세를 낼 수 있는 스스로가 비참했다고 말이다.

물론 그 책방 일꾼은 6년 동안 책방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힘을 받았고 아름다운 꿈도 꾸었다. 책방 일을 계속하면 그마저 꾸었던 꿈들이 달아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꾸리는 책방은 아직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제발 국가기관은, 동네책방들을 살린다고 하면서 되레 이들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네책방을 살리고 싶으면 가까운 책방에서 정가로 책을 사라. 책을 딱 한 권만 사도 좋다. 도서관과 학교 사서 일꾼들은 발품을 팔아서 동네책방을 찾아와서 책방 일꾼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네에서 문화를 일구는 일에 나서라.

동네책방은 동네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하는 아름드리나무요, 목마른 사람들이 찾아가는 샘터요, 세상을 올곧게 바꾸는 씨앗을 심는 텃밭이 되고 싶다.

2022년 4월 23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 일꾼 은종복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지난 23일 제주 공공도서관인 우당도서관에서 열린 이야기마당 '모다드렁 책방 이야기'에서 제가 발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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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에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을 2019년 6월 11일까지 26년 동안 꾸렸어요. 그 자리는 젊은 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제주시 구좌읍 세화에 2019년 7월 25일 '제주풀무질' 이름으로 작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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