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 위기의 순간, 현장의 부름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4월 1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현장 출동' 특집으로 고속도로 암행 순찰팀, 검시조사관, 무도실무관, 산림청 공중진화대원 등이 이날의 자기님으로 출연하여 대한민국의 사건사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고속도로 위 암행어사로 꼽히는 경북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 암행순찰팀의 김영태 경위가 첫 출연자로 등장했다. 암행순찰팀은 고속도로 위에서 난폭-과속 운전자를 단속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암행순찰은 사고 다발지역이나 난폭 운전차량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투입된다. 순찰차는 속도 제한에 대한 특례가 적용된다. 일각에서는 '함정 단속'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김 경위는 "과속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포착하고 뒤따를 뿐"이라고 해명하며 "오히려 암행차량에 단속 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고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암행순찰제 이후 김 경위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단속률을 기록하며 '고속도로 위의 저승사자'로 불렸다. 경북경찰청은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수 전국 1위로 이름을 올렸다. 하루 과속 단속건수는 100건 이상, 전국으로 치면 연간 1200만 건 정도의 교통 위반 사례가 적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례도 천태만상이었다. 고속도로 폭주하던 한 차량은 "국산 차가 자꾸 따라와서 달렸다"는 핑계를 댔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과속했다는 한 운전자는 순찰팀이 휴게소까지 함께 동행하기도 했다고. "불친절하다", "가만 안두겠다"며 경찰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순찰차를 들이받고 도주하는 차량을 추격 끝에 검거해보니 무면허에 마약사범까지 있었다고. 뻔뻔하게 해당 범인은 경찰들을 과잉진압으로 인권위에 신고했으나 해당 사건의 블랙박스 기록을 보여주며 무혐의를 증명했다.

김 경위는 "고속도로는 2차로 난 사고가 더 큰 경우가 허다하다. 도로 위에서 싸우다가 달려오는 차량들에 추가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 사고가 나면 처리는 경찰에게 맡기고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후, 여유가 된다면 주행하는 차량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게 가장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또한 김 경위는 "단속의 목적은 선량한 시민들의 돈을 뺏는 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궁극적인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속도로 운전은 일반 운전과 다르다. 속도도 높지만 교차로-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계속 주행하다보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고속도로 사고현장에서는 차와 사람이 멀리 떨어져있거나 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며 고속도로 사고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김 경위는 "현장에서는 제 파트너를 가장 믿는다"고 고백했다. 알고보니 김 경위는 처음 고속도로 순찰대에서 근무할 당시 동료를 현장에서 잃었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누구보다 안전을 중시했던 김 경위의 동료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졸음운전을 하는 트럭에 치여 현장에서 순직했다. 김 경위는 고속도로 순찰대에 복귀한 이후 종종 사고현장을 지날 때마다 동료를 추억하며 "사고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편안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한다"고 밝히며 애틋한 마음을 덤덤하게 드러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검시조사관은 사망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여 고인이 남긴 흔적으로 진실을 찾는 역할이다. 김진영 검시관은 사망사건이 발생하여 경찰에 신고되면 과학수사요원과 검시조사관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범죄 혐의점과 1차 사인을 파악하고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 검시관은 불과 촬영 반나절 전에도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왔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김 검시관은 처음 이 일을 택하여 현장에 나섰던 순간을 회상했다. "부패된 시신에서 나는 악취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냄새였다"며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던 첫 경험을 떠올렸다. 무섭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출동한다. 직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음은 따뜻하게, 머리는 차갑게 하려고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출동하여 사건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에서 1시간, 검시관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에 따라 수사의 방향이나 진실이 바뀌기도 한다. 목격자의 증언과 다른 시신의 상태, 현상 등을 파악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신고된 사건을 타살로 밝혀낸 적도 있다고.
 
8년 전 모두를 안타깝게했던 송파구 세모녀 사건도 김 검시관이 출동했던 사건이었다. 사별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며 전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김 검시관은 당시 현장에서 발견한 유서에서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고 주인집에 편지를 남긴 것을 확인하고 "이분들이 이 글을 쓸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라는 심정을 이해할 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김 검시관은 유독 안타깝고 신경쓰이는 순간으로 아이들을 거론했다. 사고나 부모의 잘못으로, 혹은 나쁜 사람들에 의하여 잘못된 선택을 겪은 아이들을 현장에서 검시해야 할 때는 아무리 일로서 대하려고 해도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김 검시관은 전자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직장인으로 일하다가 대학병원 간호사를 거쳐 경찰 검시관이 된 이색적인 경력을 소개했다. 공대와 간호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이 도움이 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해철 사망사건'이었다. 당시 집도의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김 검시관은 의료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도의의 거짓을 잡아내며 손상 부위가 합병증이 아닌 '의인성'임을 밝혀내 신해철의 사망이 의료과실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매일 누군가의 사망을 봐야하는 직업에 트라우마는 없을까. 김 검시관은 "모든 죽음의 방법을 다보고,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시는지 본다. 내가 이 분 사연만큼 힘들 때 나도 이런 방법을 선택하게 될까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하여 "숨겨진 죽음이 정말 많다. 0.1%라도 숨겨진 죽음을 밝히고자하는 공직으로서의 사명감이 있고 그럴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김 검시관은 "현장에서 내가 믿는 것은 현장"이라고 정의하며 "과학수사의 기본은 모든 접촉은 현장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줘도 결국 내가 보는 객관적 실체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밝혔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무도실무관은 GPS로 감지되는 전자발찌 대상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관리-감독하여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청주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안병헌 실무관은 태권도 사범 출신으로 2013년도에 무도실무관 1기로 발탁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고.
 
전자발찌 제도는 강력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2008년경부터 도입됐다. 대상자는 살인, 강도, 유괴, 성범죄 등 재범률이 높은 4대 강력범죄 전과자들이다. 대상자들은 제한시간 외출금지, 피해자 접근 금지, 어린이 보호구역 출입금지, 주거지역 제한, 중독성 물질 사용금지, 전자발찌 분리 및 훼손 금지 등의 제약이 붙는다.
 
전자발찌 착용 기준은 재범 위험성이 점수로 매겨지고 13점 이상이면 상중하의 상으로 분류되는데, 유명한 성범죄자 조두순은 무려 17점이었다. 안 실무관은 위험한 범죄자들을 자주 상대해야하는 직업 특성상,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박치기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전자발찌를 끊고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를 신속한 연락으로 공항에서 체포한 적도 있었다고.
 
현장의 밤낮없는 노력에도 인력의 한계는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3만 4000명이 넘는 보호관찰자를 관리해야 하는 직원은 고작 312명에 불과하다. 보호관찰자 1인당 112명을 관리해야 하고 이는 OECD 평균의 약 4.1배에 해당한다. 안 실무관은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그래도 핑계를 댈 수가 없다. 현장에 가면 무조건 해야한다"며 책임감을 드러냈다.
 
안 실무관은 전자발찌 대상자들에게 "범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대상자들이 똑바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과거 안 실무관이 관리하던 대상자중 하나가 재범을 저지른 사례를 언급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고.
 
안 실무관은 "반성을 많이 하게 되는 직업이다. 범죄를 차단하는 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범죄를 단칼에 차단하는 멋진 일이 아니다. 매일 대상자들을 관리하면서 범죄 예방이 쉽지 않구나 실감한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라며 직업의 고충과 책임감을 토로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한 장면. ⓒ tvN

 
역대 최장기간(213시간) 산불로 기록된 지난 3월 울진-삼척 산불은 산불 3단계와 국가위기경보 심각단계까지 발령됐고 인근 마을 수천명의 주민이 대피했던 초대형 사건이었다. 최악의 화마를 잡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라상훈 산림청 공중진화대 팀장은 소방관이 민가에서의 소방활동을 맡는다면, 공중진화대는 헬기로 산불의 중심부에 투입되어 최전선에서 화마를 진압한다며 역할의 차이를 설명했다.
 
공중진화대는 넓은 지역을 민첩하게 커버해야하는 특성상 방화복도 일반 소방관들에 비하여 얇고 가벼웠다. 울진-삼척 산불 당시 사고 지역이 산세가 험하고 가파르다보니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전국에 있는 공중진화대가 총출동하여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라 팀장과 대원들은 산불이 시작된 3월 4일부터 출동하여 주불 진화가 완료된 13일까지 무려 10일간이나 현장을 지켰다고.
 
대형 화재로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가량, 축구장 2만 9000개 규모에 해당하는 땅이 불길에 휩싸였다. 화재 원인은 담뱃불 실화로 추정하여 현재도 조사중이라고. 경남 지역은 50년 만에 최악의 겨울 가뭄에다가 산세까지 험했고, 휘발성 물질이 포함된 소나무 군락지가 많은 지역에다가, 바람까지 겹치며 이래저래 산불에 있어서 최악의 조건들이 모두 맞아떨어지며 발생한 비극이었다.
 
산불 현장에서는 너무나 많은 위험과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산불 진화의 또다른 고충은 숨은 불이 며칠 뒤에 다시 발화하기도 한다는 것. 라 팀장은 "산불은 일반 화재같은 완전 진화가 없다. 숨어있던 작은 불씨가 3~7일 뒤에도 다시 발화할 수 있다"며 고충을 밝혔다.
 
라 팀장은 "매번 다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산불에 갇혀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그 정도는 훈장이려니 생각한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울진 화재 당시 소방대원, 군부대, 경찰 등 수천명의 인력들이 투입되어 고군분투했다. 그중 공중진화대원 104명은 화마의 최전선에서 10일간 밤낮없이 불과 맞서 싸웠다.

같은 시각 강릉에서는 방화로 인한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라 팀장은 "뉴스를 보며 어이없고 황당했다. 한쪽에서는 산불을 끄기 위하여 밤낮없이 애쓰는데 이럴 수 있나 싶었다"며 씁쓸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던 산불의 막을 내리게 한 건 다행히 하늘에서 내린 단비였다. 라 팀장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날은 저와 대책본부에 있던 많은 분들이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그만큼 간절했던 거다"며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회상했다.
 
산불은 비극이었지만 그속에서도 훈훈한 장면이 있었다. 울진 산불로 고생한 대원들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피해 지역의 많은 상인들이 진화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라 팀장은 "주민들이 격려해주면서 고맙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직업을 잘 선택했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 고백했다.

라 팀장은 여러 번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위험한 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산불 전문가라는 자부심이 있다. 불만 보면 몸이 반응하는 불나방 기질이 있다. 산불 현장에 가서도 성격상 뒤로 못간다, 계속 앞장서니까 걱정하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며 천직임을 밝혔다. 50대의 나이에도 라 팀장은 "공중진화대라는 일을 하는 한, 할 수 있으면 계속해야 한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조직이니까. 특별히 어렵지 않은 한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공중진화대원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박준호 대원은 "지나온 길에 불이 꺼지는 게 느껴지면 그게 큰 보람이 있더라. 저는 우리 나라에 104명 밖에 없는 직업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신유승 대원은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를 두고 한 달 동안 집에 못들어가기도 했던 일화를 밝히며 "현장에 가야하는 걸 그냥 받아들이는 게 책임감이다"라고 밝혔다.
 
심해찬 대원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고 저희가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라 팀장은 "그동안 공중진화대가 인원이 적다보니 많이 알려지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다보면 나중에는 국민들이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장으로 가장 먼저 출동하는 이들에게 죽음과 위험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위험한 현장을 누비며 대부분 한두 번쯤은 상실의 아픔을 겪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 슬픔은 때로는 사명감을 뒤덮고 삶을 짓누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때로는 다른 상실을 막기 위하여 현장에 다시 뛰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이기에 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현장의 최전선을 누비고 있다.
유퀴즈 공중진화대 검시조사관 무도실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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