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것인가 뇌가 시키는 것인가. 우리가 사랑의 각 단계에 빠졌을 때 뇌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왜 화내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가. 4월 10일 방송된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서는 뇌과학자 정재승 사부와 함께하는 '뇌사부일체' 3탄으로 '뇌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휴식시간에 정 교수는 가끔씩 커피 한 잔을 들고 해가 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감상하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실제로 과학자들이 뇌를 살펴보니 완전히 비목적적으로 뇌를 이완할 때, 그냥 뇌가 가고자하는 대로 내버려두다보면 어느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설명하며 "멍때리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놓치지말라"고 당부했다. 요즘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뇌를 쉬게 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 현실이다.
 
남자친구 vs. 연예인 사진... 여학생 뇌 사진의 반전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자리로 돌아온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뇌와 사랑의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랑은 가슴이 반응하는 걸까, 뇌가 반응하는 걸까. 

정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강의한 사랑학 수업을 통해 사랑에 빠진 대상을 데려와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고 MRI로 뇌 사진을 찍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사랑이 가장 달달할 무렵인 연애 6개월차 여학생에게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준 뒤 촬영한 사진에는 뇌 여기저기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동시다발적인 반응이 확인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풍성한 감정이 우리의 뇌 곳곳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
 
또다른 실험은 같은 여학생에게 이번엔 연인이 아닌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뇌 반응이었다. 놀랍게도 연인의 사진을 봤을 때보다 오히려 뇌가 더 새빨갛게 변하며 더 격렬한 반응이 확인했다. 정 교수는 "사랑? 필요없다. 우리는 아름답고 잘생긴 걸 보면 더 풍성한 자극을 얻는다"는 씁쓸한 반전 결론을 제시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 결혼 15년차 아내에게 남편 사진을 보여줬을 때의 반응은 어떨까. 뇌 일부에서 붉은 색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연애 6개월차 여학생 때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새하얀 백지 수준이었다.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보다는 반응이 있다고 해석했지만, 정 교수는 "사실 인간이 뭘 보더라도 이 정도 뇌 반응은 뜬다. 거실에서 소파를 봤더라도"라는 반전으로 멤버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서로 첫 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이란 가능할까. 이승기와 리정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양세형은 "서로 첫 눈에 반할 정도가 되려면 그만한 외모적인 매력이 중요하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결혼한 100커플에게 '서로 첫 눈에 반했는가'라는 설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답한 커플은 불과 12커플이었다. 첫 눈에 반한 사랑을 만날 확률은 그만큼 낮기 때문에 운명적 사랑만 기다리다보면 자칫 인연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
 
사랑에도 유통기한은 있을까. 정 교수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멤버들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유명한 노부부의 사랑을 예시로 들며 반발하자, 정 교수는 "사랑에 유통기한이 없는 사람들이 드물게 가끔 있기에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작 정 교수 본인의 사랑에 대해서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며 위기를 벗어났다.
 
정 교수는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유통기한이란 '열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열정만으로 일상을 살 수는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 사진을 보면 강박증 환자의 뇌와 비슷하다고. 실제로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에서는 사소한 대화나 표현 한 마디에도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적인 관계의 다른 사람 사이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만한 행동들도,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묵인하고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일정한 단계를 거친다. 사랑의 1단계는 아드레날린(흥분과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뇌 호르몬), 2단계는 도파민(욕망, 쾌락에 영향을 미치는 뇌 호르몬) 상태로 접어들며 설렘으로 시작하여 열정과 중독에 빠지는 모습이 연애 초기의 뜨거운 연인의 감정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 시기는 일정한 유효기간이 있다. 평생 도파민 사랑만 하기에는 인생은 길고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3단계는 옥시토신(신뢰, 친밀감을 느끼게하는 뇌 호르몬)의 단계다. 늘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한 서로의 일상같은 사랑으로 편안한 애착관계에 해당하며 '사랑의 안정기'로도 불린다. 각자 상황에 따라 뇌 호르몬의 유효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 
 
부부가 서로 섭섭했던 이유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부부간의 애정관계를 분석한 옥시토신 그래프에 따르면 출산 이후 부부간의 옥시토신이 급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에게 애착이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는 것. 특히 아내 측의 감소도가 남편보다 더 높았다. 그러다보면 애정도가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남편은 아내에 대한 섭섭함이 많아지게 된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의지도 아닌, 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우리의 뇌와 몸 자체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유부남인 김동현 역시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지만, 정 교수의 설명을 듣고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부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알고 겪는다면 서운해하기보다 서로 이해를 하고 사이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
 
아이에 대한 부모의 옥시토신 농도는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상승곡선을 그린다. 아내는 임신 때부터 이미 아이를 자신의 몸 안에서 키우며 애착관계를 형성한 데다 출산 후에는 옥시토신이 더욱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그에 비하여 남편은 아이와의 애착관계 형성이 아내보다는 더디게 천천히 쌓여간다.
 
정 교수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탄생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아빠들은 태어난 아이의 존재가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남편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 때문에 이번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이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하여 아이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부부간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다가 망가지기 쉽다.
 
정 교수는 "부부는 서로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설사 예전만큼 충만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 아이 역시 서로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번에는 뇌가 느끼는 질투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명한 '깻잎 논쟁'에 이어 '카풀 논쟁'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성 후배를 차에 동승하고 나를 데리러와서 후배는 조수석에 나를 뒷자리로 태운 연인을 용납할 수 있는가. 이승기와 리정은 차에 태우는 것은 이해한다에 손을 들었고, 김동현, 유수빈, 양세형은 태우는 것조차 아예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질투 관련 논쟁들이 많이 발생한다. 정 교수는 질투하는 사람의 뇌 구조에서는 '사랑', '통제', '공포', 세 가지 감정과 관계된 영역이 모두 활성화된다고 설명했고 멤버들도 크게 공감했다. 상대를 사랑할수록 질투 상황에 민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연인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연인과 다른 이성간의 관계에 질투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인 간의 관계에 강한 확신이 있다면 의심이나 질투감도 적어진다.
 
양세형은 상대가 그만큼 매력적인 이성일 때 공포심을 느낀다는 이승기-리정에게 "우리(김동현-유수빈)같은 사람들은 그냥 다 공포를 느낀다"며 외모적인 매력의 차이가 질투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연인 관계에서 질투와 집착은 한 끗 차이"라며 질투의 이유를 잘 파악해 서로를 배려하고 노력한다면 더욱 튼튼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까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SBS <집사부일체>의 한 장면. ⓒ SBS

 
사랑을 위한 노력은 연애만이 아니라 결혼 후에도 필요하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화를 참는 것'이다. 왜 우리는 상대방에게 화를 표현할까. 화를 낸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분노다.
 
정 교수는 호랑이나 사자를 예로 들며 화를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상황을 통제할수 있는 힘을 가진 최상위 포식자이기 대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개들은 무섭거나 경계되는 존재를 보면 마구 짖어댄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때 화를 내면서 위협적인 권력이 있는 것을 보여서 상대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진상 손님들이 갑질하고 화를 내는 모습은, 호랑이보다는 멍멍이 전략에 가깝다. 화를 내는 것은 겉으로 통제권이 있는 것처럼 보일뿐, 실제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냈을까? 우리가 화를 내지 말아야 할 또다른 이유와 관련되어 있다. 그 대상이 부모, 배우자, 아이 등 내 가족이나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멤버들도 이미 정답을 예상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반성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까. 우리의 뇌는 '나'를 생각하는 영역과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이 구분되어있는데, 나와 가까운 관계(소중한 대상)일수록 나에 가깝게 저장되어 있다. 정 교수는 특히 "한국 사람들은 나를 인지하는 곳에서 엄마도 인지한다. 나와 엄마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라고 인지할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한다. 이를 두고 정 교수는 "너무 사랑해서 내 맘대로 통제가 안 되면 불같이 화가 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내는 화에는 어쩔면 서글픈 사랑이 담겨있었었던 것.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담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승기는 가족을 생각할 때 "엄마, 아빠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떠올린다"고 밝혔다. 나와의 관계를 떠나 '독립된 인간' 그 자체로 먼저 인식하게 되면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정 교수는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마음대로 세상을, 사람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기력감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자식은 엄마를, 부모는 자식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각자의 인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기본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함께 행복한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강의를 마치며 이승기는 "과학은 인간의 삶을 이롭게하는 기술적인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신과 마음까지 치유가 가능하다"는 소감을 밝히며 뇌과학 안에서 인생의 많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리정은 "통제되지 않는 현실에 항상 제 탓을 해왔는데, 어른이 되면서 모두가 겪는 과정이라는 게 많은 위로가 됐다"고 고백했다.
 
정 교수는 "뇌과학은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지만,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면서도 "뇌과학을 통하여 현명한 뇌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집사부일체>는 이날 방송을 끝으로 하차하는 멤버 유수빈의 졸업식을 하며 뇌과학 3부작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집사부일체 정재승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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