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 탁재영 작가, 연상호 감독 인터뷰 이미지

탁재영 작가, 연상호 감독 ⓒ 티빙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울분을, 드라마로나마 만족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의 왕>은 사실 대리 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연상호 감독)
 
지난 18일부터 매주 2회씩 공개되고 있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잔인한 복수극을 그리는 <돼지의 왕>은 연쇄 살인 사건 현장에 남겨진 20년 전 친구의 메시지로부터 과거 학교폭력의 기억을 꺼내게 된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연상호 감독은 사람들이 <돼지의 왕>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주인공 황경민(김동욱 분)의 분노가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 대중이 공분할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도, 거기에 그치는 작품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지난 29일 탁재영 작가와 연상호 감독을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돼지의 왕>은 연상호 감독이 연출해 2011년 개봉됐던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12부작 실사 드라마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그러나 두 작품은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제외하면 같은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주인공들의 직업, 살인이 시작된 계기 등 세부 설정이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 20여 년 전 중학생이었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했던 원작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잊지 못한 성인들을 조명한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을 관객에게 선보인지 올해로 11년째다. 세월이 지나서 새로운 내용으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서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연 감독은 "원작이 갖고있는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제작진이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해주신 것 같더라. 작가님, 감독님 두 분과 제작진 특히 배우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아역 배우들의 프로페셔널한 연기에 굉장히 놀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탁재영 작가는 "원작을 워낙 좋아했던 팬이었다. 작품을 드라마화 했을 때 '망작'(망한 작품)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썼다"고 화답했다.

당초 <돼지의 왕>을 드라마화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연상호 감독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시절부터 탁재영 작가와 친분이 있었던 연 감독은 주인공 황경민(김동욱 분)의 연쇄살인 설정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고. 영화에서 황경민은 아내를 홧김에 죽이는 데 그치지만, 드라마에서는 황경민의 연쇄살인 계획을 알아차린 아내가 동반자살로 이를 막으려 하다가 혼자 사망에 이른다. 이후 황경민은 계획했던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연쇄적으로 살인한다.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하고 둘이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했던 건 '어떻게 쓰지?'였다. 그때 제가 연쇄살인 구성을 제안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돼지의 왕>을 만들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냐'는 것이었다. 당시에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 않겠냐'고 답변했었다. 그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복수극같은 형태의 장르물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했다. 11년 전 관객들에게 들었던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 현재의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한다."(연상호 감독)

탁재영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과거 학교폭력의 상처가 현재의 성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원작에서도 성인들이 등장하지만, 원작에선 성인들이 현재의 삶을 통해 과거의 끔찍한 일들을 회상하는 구조다. 반면 드라마에선 끔찍한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 성인이 돼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 탁재영 작가 인터뷰 이미지

탁재영 작가 ⓒ 티빙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

드라마에도 과거 학교폭력 회상 신이 등장하는데 실사로 제작되면서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자극적으로 묘사한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폭력, 조롱, 성희롱 등 학교폭력 뿐만 아니라, 현재에서 가해자를 거세하는 등 수위 높은 장면들이 꽤 등장한다. 이는 대부분 원작에 없었던 드라마 오리지널 신들이다. 탁재영 작가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한때의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는 시간이 피해자들에겐 끔찍한 트라우마이고,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일단은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인물이 현재에 그 트라우마를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시청자에게 납득되고 몰입되려면 과거의 사건들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OTT로 편성되면서 검열 부담 없이 사건들을 더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부분도 있다. 어른들을 위한 스릴러이기 때문에 진솔한 연출을 통해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울림이 있지 않을까 싶다."(탁재영 작가)

극 중에서 황경민은 학창시절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해자에게 되갚아주려 한다. 자신을 성희롱했던 안정희(최강제 분)의 성기를 자르고, 약쟁이라고 조롱했던 강민(오민석 분)은 마약 중독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반대로 사적 복수를 정당화 한다는 우려도 남는다. 탁재영 작가 역시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4부까지 밖에 공개되지 않았다. 사적 복수를 지지하거나 응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은 시청자 분들이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방식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그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중후반부로 이어질수록 복수에 대한 정당성, 피해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게 정당한가,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시청자분들도 고민해보셨으면 좋겠다. 스스로 통쾌함을 느꼈던 부분을 되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는 것, 우리가 느낀 카타르시스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시면 좋겠다. 원작에서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또다른 가해자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행동하는 방식들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 메시지를 현재의 성인들에게도 연결시키고 싶었다."(탁재영 작가)

이에 연상호 감독은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계급 사회나 가해자를 비판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아직 초반이라 과거의 이야기가 전부 나오지 않았다. 황경민의 복수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떤 지점을 향해야 하는지가 앞으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해자들을 한 명씩 찾아가 끔찍한 복수를 자행하는 황경민의 곁에 있는 미지의 존재도 후반부에 드러날 예정이다. 아직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후드티 모자를 깊이 눌러쓴 아이는 목소리로만 황경민을 조종한다. 일각에서는 황경민이 어린시절 자신을 환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추측했지만 연상호 감독은 원작에도 있는 캐릭터라며 "어린 철이다. 아직 (과거 회상 신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말 그대로 '돼지의 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탁재영 작가 역시 황경민, 정종석에게 철이는 상징이자 이데올로기라며 "황경민이 행동하는 동력은 대부분 그 후드티를 쓰고 나타나는 인물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소심했던 황경민이 대범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과연 황경민한테 어떤 영향을 줬길래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하고 다닐까. 계속 지켜보시면 알게 되실 것"이라고 말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인터뷰 이미지

연상호 감독 ⓒ 티빙

 
"학교 이외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아"

극 중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였지만 현재 유명한 의사가 되어 잘 살고 있던 강민은 "그거 다 장난이었지 않냐", "내가 그렇게 죽을 죄를 지은 거냐"고 항변한다. 연상호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아마 가해자는 정말로 장난이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나는 작품이었다고 털어놨다.

"학교폭력이 없는 나라는 아마 없을 거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밤늦게 오니까 학교 이외의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거기서 오는 폭력은 학교폭력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 전부의 폭력이겠지. 그게 성인이 돼서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커뮤니티든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은 아이가 처음 대하는 세상이지 않나. 탁재영 작가도 그렇겠지만 저도 어렸을 때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아 나는 돼지다, 조용히 살아야 한다.' 아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세상 속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걸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보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연상호 감독)

마지막으로 연상호 감독은 성과주의에 매몰된 사회에서는 <돼지의 왕>같은 비극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11년 전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연 감독은 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폭력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폭력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11년이 지났지만) <돼지의 왕>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도 계급 사회,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저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만들 때마다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굉장히 많이 생각한다. 저부터도 그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즐거운 작품을 만들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겠다. 이런 것들이 지금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실천, 생활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연상호 감독)
돼지의왕 탁재영 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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