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First Contact : 핫 뮤직을 통해 콜트 기타를 접하다
 
1990년대를 풍미하던 < Hot Music >이라는 팝/록 전문 월간지를 기억하는지. 어정쩡한 텔레비전 매거진들 사이에서 상당히 독보적 위치에 있던 잡지다. 1990년 창간해 2008년 폐간했으니 꽤 장수했던 잡지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20세기의 마지막 시간인 동시에 대중문화 전성기의 영광을 간직한 매체였던 셈이다. 특히 아직 인터넷 접근성이 높지 않던 과도기에 AFKN이나 FM 라디오의 몇 안 되는 음악방송 외에 매주 갱신 발표되는 빌보드 차트나 최신 서양 대중음악 소식을 접할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창구로 기능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엔 아직 힙합이 본격적으로 상륙하지도 않았고, 국내 '아이돌 씬'의 음악적 수준이 일취월장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차 간극이 있던 때다. 당시 대중음악 전반을 섭렵하던 핫뮤직의 핵심 초점은 록이었다. 자연히 잡지의 광고지면은 음반회사를 제외하면 악기회사 지분이 적지 않았던 시절이다. 밴드를 꿈꾸던 기타 키드들은 잡지에서 종종 소개하던 펜더나 깁슨, 아이바네즈에 열광하며 각자 마음속 '나만의 기타'를 꿈꾸곤 했다. 그런 그들에게 핫뮤직이 종종 지면을 할애하던 '명품' 기타는 보석 등급처럼 회자되고 공신력을 가졌었다.
 
비싸고 짱 좋은, '때깔'부터 급이 달라 보이는 수입 브랜드 기타의 홍수 속에 언젠가부터 '콜트'라는 국산 기타 광고가 끼어들었다. 로커 출신으로 당시 가요계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던 세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손무현이 콜트 모델로 자신의 시그니쳐 기타를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국내 속주기타의 최고봉으로 불리던 이현석도 콜트 모델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콜트 기타의 평가는 대개 입문용으로 쓸 만하다는 것이었다. 즉 그 시절 기타리스트 꿈꾸던 이들의 첫 기타의 추억에는 콜트 기타의 지분이 상당했다는 이야기. 콜트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그렇게 고정되었다.
 
콜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10년이 넘게 지난 후였다. 그런데 이번엔 썩 좋지 않은 내용이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록커를 꿈꾸는 청소년들이라면 입문용으로 선택지에 오르게 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자랑스런 한국기업 콜트-콜텍이 '미래에 닥쳐올지 모를' 경영위기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즉 지금 현재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는데도)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졸지에 날벼락 맞듯 해고된 노동자들이 해외 원정투쟁을 다니면서 자신들의 사정을 음악인들에게 호소한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를 비롯해 적지 않은 이들이 연대의 뜻을 표명했다는 게 바로 그 두 번째 소식이었다. 세계 1위 록 기타 브랜드의 역설적 효과가 없진 않던 셈이다. 당황스러운 뉴스긴 하지만 그래도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지지하면서 상당히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으니 문제가 곧 해결되겠지 하던 안일한 생각 속에 금방 두 번째 인상은 사라져 갔다.
 
2_문화예술과 만나 영화로 변신한 투쟁의 기억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 달

 
하지만 이후로도 두 번째 소식의 연장선에서 콜트에 관련된 흉흉한 이야기는 드문드문 끊어지지 않고 전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관련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소규모지만 2011년 극장 개봉에 이른 <꿈의 공장>을 비롯해 <내가 처한 연극> 연작들을 선보인 김성균 감독과, 실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배우로 기용해 다큐멘터리 풍 드라마 <천막>을 만든 이란희 감독이 그 대표주자였다.
 
2007년 4월 단행된 정리해고와 직장폐쇄에 맞서 노동자들은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회사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라며 뜻을 굽히지 않고 버텼다. 기나긴 싸움 과정에서 한 명 두 명 떨어져나가는 흔한 일이 반복된다. 적은 인원만 남게 된 데다 인천과 대전으로 분리된 공장에 상호 모순되는 재판결과가 발생하면서 이로 인한 분리는 심화된다. 그런 곡절을 거치며 결국 투쟁현장에는 단 3명만 남게 된다. 기존의 '고전적' 노동투쟁방식을 고수하기란 불가능해졌다.
 
이후로도 투쟁은 계속 이어지지만, 노동자 다수의 단결된 조직력도, 법제도를 향한 호소도 하나둘 무너져 갔다. 시도를 해봄직한 거의 모든 방도가 어그러진 후 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장기전을 준비한다. 아무리 뭘 해보려 해도 가능하지 않는 조건 가운데 이들은 계속 싸움을 이어가는 과정을 고민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에 뛰어든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구성한 '콜밴' 밴드가 그렇게 탄생한다.
 
밴드를 만들어 투쟁현장을 방문하면서 다른 이들의 절박한 사정을 공감하고 음악으로 옮겼다. 고립된 장기투쟁에서 비롯되는 심적 부담을 덜고자 여러 공연과 연극, 글쓰기에도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된 문화예술인들과의 교류는 지속적인 연대단위를 유지하는 실용적 목적과 함께 평생 공장 노동자로 살았던 이들에게 새로운 체험의 순간이 된다. 기타를 만들어왔지만 정작 자신들의 완성품을 만질 일은 없던 노동자들은 이제 능숙하게 기타를 연주하며 자기 작품을 누려보는 체험을 경험한 셈이다.
 
콜밴 활동을 위해 그들은 자작곡도 만들고 연습도 열심히 한다. <햄릿> 공연에서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입고 배역을 맡는다. 임재춘은 '히로인' 오필리어 역을 맡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명대사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실존의 고민, 투쟁을 포기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과제와 통한다. 특히 임재춘은 농성일기를 연재하며 글을 쓰느라 끙끙 앓는다. (임재춘의 글쓰기는 2013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임재춘의 농성일기'라는 표제로 연재되었다. 훗날 이 연재기획은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해고자들은 책읽기 모임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프란츠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낭독한다. 인간 불굴의 의지와 개인을 짓밟으려는 합법의 탈을 쓴 억압의 굴레를 그들 자신의 실존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2019년 4월, 햇수로 13년 만에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지만 노사협상이 타결되고 3명은 농성과 투쟁을 정리한다. 10여 년 만에 얼굴을 본 사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많이 늙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고 전했다. 그러는 그들 역시 어느새 정년퇴직할 나이가 된 건 물론이다. 시간은 그렇게 무심히 흘렀다. 그리고 (아직도 온전히 끝나지 않은) 콜트-콜텍 투쟁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기 시작한다.
 
투쟁이 공식적으로 '정리'된 후 2편의 영화가 잇달아 세상에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이란희 감독의 드라마 <휴가>와 이수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재춘언니>가 나란히 2020년, 투쟁이 끝난 1년 후에 차례로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를 얻는다. <휴가>는 2020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과 독불장군 상, 독립스타 상을 수상했다. <재춘언니>는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인 비프메세나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한다. 두 편 모두 그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이 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각각 2021년 늦가을과 2022년 봄 개봉에 이른다.
 
두 편 모두 격렬한 투쟁현장과 저널리즘 차원 상황정리보단 10여 년간 장구한 투쟁을 지속한 사람들의 속사정에 집중한다. <휴가>는 3인의 해고노동자 캐릭터를 골고루 섞어서 한 명으로 통합한 모양새의 캐릭터를 내세운다. 대법원 최종심에서 해고 건 패소 후 짧은 휴가를 받아 지친 심신을 잠시 추스르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재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상황과 비교하면 영화 속 시간은 2014년 중후반이 될 테다.
 
<휴가>는 철저히 재복의 휴가기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의 인간적 고뇌와 투쟁에 대한 결단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대로 압축해 보여준다. 이에 대해 <재춘언니>는 다큐멘터리답게 조금 더 스트레이트하게 그들의 투쟁 전반을 아우르며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뉴스 다큐멘터리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재춘언니> 역시 싸움을 지속해온 3인 주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형상화하는 것과 함께, 그들에게 힐링과 치유기능을 적잖게 가져다준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비중있게 조명한다.
 
3_영화 속에 담긴 '재춘언니'의 시간들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 달

 
이수정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3명 중 임재춘을 선택한다. (<휴가>의 '재복' 또한 이름과 가족상황, 농성장 내 역할 등에서 임재춘의 지분이 가장 큰 캐릭터다) '언니'라 불리며 특유의 사교성과 친화력을 선보여온 임재춘인지라 비단 <재춘언니> 외에도 콜트-콜텍 투쟁을 다룬 작품 중 절반 이상에서 자연스레 주인공 포지션을 꿰찰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재춘언니는 투쟁을 거듭하며 과묵한 중년 노동자에서 자기 안에 존재하던 다양한 여성적 면모와 문화적 소양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런 발견의 기쁨이 작지 않음에도 그에게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엔 역부족이다. 투쟁 시작할 때 10대 초반이던 두 딸과의 갈등이나 생활고를 해결해야 하는 일상의 투쟁을 그는 묵묵히 견딘다. 그는 농성장에 텃밭을 가꾸고 식사를 책임지며 주변 사람들을 돌본다. 엄마처럼, 언니처럼.
 
영화의 초반은 2013년 투쟁현장에서 출발해 2014년 대법원 패소결정까지 나아간다. 타 작품들에서도 소개된 연극 활동과 문화공연, 연대집회 참여 등이 투쟁국면과 교대로 빼곡히 등장하며 끝이 없을 것 같은 천일야화는 이어진다. 하지만 <휴가>에서도 주요한 배경이 된 대법원 재판 패소 후 실제로 3인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막막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영화의 딱 절반이 흐른 시점에서 다큐멘터리는 그 속도가 (흥미 측면에서라도) 가속되기는커녕, 정지궤도에 오른 듯 무겁게 가라앉는다. 화면 속 주인공과 동료들의 표정은 무겁다. 입은 꾹 다문 상태다. 어쩌다 툭 내뱉는 말투에도 힘이 없다. 관객의 시선에도 그들의 위태로움이 온전히 전달되는 순간이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지나 시간은 4년을 점프한다. 후반부에선 2018-2019년, 그들의 막판 결사적인 싸움의 시간들을 집중해서 조명한다. 그들은 혹시나 안 해본 종류의 투쟁이 나중에 발견될까봐 두려운지 '삼보일배'도 하고 무기한 단식농성도 벌인다. 아마 영화 속에서 가장 급박하게 전해지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 사장실 기습점거도 여기에서 등장한다. 본 작품에서 몇 안 되는 후련하게 뭔가 성공하는 쾌감이 일순간 밀려든다.
 
한데 그 순간 의외적인 장면들이 목격된다. 영화 내내 늘 부드럽고 온순하게 보이던 재춘언니가 사장실에서 박영호 사장과 십여 년 만에 대면한 그 순간만은 목청을 높이고 핏대를 올리며 (아마 자신에게 가능한 수준에선 최대치로) 거칠고 위협적인 언사를 선보인다. 화를 내며 사장을 보위(?!)하려는 직원들을 윽박지를 때 그는 절규하듯 외친다. 내가 이 회사에서 먹은 밥이 너보다 훨씬 많다는 식이다. 텃세부리는 게 아니라 30년을 콜트-콜텍에서 일하며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자긍심의 발현이다. 그리고 평소 모습답지 않게 재춘언니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장에게도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 얼마 후 아쉬움 가운데 협상이 체결된다. 암전이 찾아온다.
 
그전까지 영화의 화면은 내내 흑백에 머무른다.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이 어느새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세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표시하듯 이수정 감독은 13년의 시간이 그저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더라도 당사자들에겐 사회와 유리된 격리의 시기가 아닐까 하는 입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투쟁 후 재춘언니의 삶을 확인하러 간 감독의 카메라는 마지막 5분 동안 컬러로 전환된다. 하지만 그 원색의 찰나는 빛나는 승리 후 평안한 휴식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며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건설현장 인명사고의 70~80%를 차지한다는) 촘촘한 비계(족장) 위를 아슬아슬 오르는 임재춘의 모습에서 여전히 재춘언니의 삶은 위태롭다는 사실이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건 주변에 유리된 채 세상과 단절되던 순간은 종결되었다는 각인과도 같은 5분이다. 귀환 이후 재춘언니가 겪은 상황의 총천연색 재현은 그런 복잡한 감정 속에 저물어간다.
 
4_연극이 끝난 뒤: 기억과 기억들을 잇다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재춘언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 달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 관객 상당수는 마치 갈증을 느끼듯 타는 목마름으로 재춘언니가 지금 스크린 앞에 나타났음 하는 바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에게 묻고 싶은 게 한가득 더 생겼을 테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나 정직하고 스트레이트하다. 오직 재춘언니를 위해 그에게 투영되고 형상화된 13년간의 투쟁 기록인 이 작업은 기억되어야 마땅한 가치와 함께, 작가가 발견한 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올곧은 결과물이다.
 
영화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흘렀다. 재춘언니는 경비원으로 삶을 이어가는 중이라 한다. 그 동안에 이수정 감독은 재춘언니가 주인공 중 일인으로 참여해 시를 낭독하는 풍경을 수록한 전작 <시 읽는 시간> 개봉을 치렀다. 그리고 <재춘언니>로 연 타석 개봉에 임하는 중이다. 여러 편의 콜트 투쟁을 담은 영화가 선보여 왔지만 본 작품은 그중에서도 마무리 집대성에 가까운 의의를 지녔다.

그런 연장선에서 결말 직전 (다른 감독의 기록용도 촬영분량을 얻어 와서 수록한) 2009년 풍경은 무척 이질감이 드는 풍경이다. 아직 다수가 함께 뭉쳐있던 노조 단합행사 풍경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콜트-콜텍 투쟁에 저렇게 많은 이가 참여했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측은지심이 섞인 궁금함을 유발한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고 많은 조건이 바뀌었다. 그런 고독과 좌절의 위협 속에서 담담하게 견디는 재춘언니를 비롯한 3인의 모습은 울림이 깊다. 13년의 세월이라는 너른 간격 속에서 재춘언니와 '동지'들이 보여준 것들은 참 많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체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거리들이 (잔잔한 물가에 돌을 던지면 일어나는 파문처럼)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순간이다.
 
우직한 인내의 투쟁현장과 함께 콜트-콜텍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문화예술 코드가 본 작품에선 더없이 빛을 발한다. 그들이 참여했던 <구일만 햄릿>(2013), < 서울데카당스-Live >(2014), <법 앞에서>(2014) 공연실황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조명된 부분이지만 괜시리 더 반갑기만 하다. 자막과 음성으로 전달되는 임재춘 <농성일기>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셰익스피어 <햄릿>, 카프카 <법 앞에서>도 문득 내용이 궁금해지곤 한다.
 
영화 속 음악의 사용도 이채로운데 콜밴의 자작곡 '주문'과 '서초동 점집'은 그 어떤 격한 투쟁가 못지 않게 그들이 처한 상황과 억울함을 대변해준다. 낙천적인 기운으로 투쟁을 이어가는 순간에는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가, 노동자 투쟁 다큐멘터리에서 접하리라 예상치 못한 스페인 춤곡 '라 폴리아'가 콜트-콜텍 싸움의 다른 노동자 투쟁과의 변별력을 부각하며 뇌리에 남는다. 이런 세밀한 배려와 장치를 통해 그저 철지난 화석처럼 잊게 될 역사를 감독의 솜씨로 부활시킨다. 본 작품과 재춘언니의 저서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임재춘·최문선 지음, 2016, 네잎클로바 출판)를 복기한다면 임재춘과 동료들의 지난 시간은 조금이나마 더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을 테다.
 
<작품정보>
재춘언니 Sister J
2020|한국|다큐멘터리
2022.03.31. 개봉|97분|12세 관람가
감독 이수정
출연 임재춘, 김경봉, 이인근
특별출연 박영호, 이희용
촬영 이수정
편집 고동선
음악 전유진
제작 생의 한가운데
배급 (주)시네마 달
 
2020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이수정)
2020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임재춘과 콜트-콜텍 노동자들)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 임재춘 콜트기타 콜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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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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