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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미니즘을 처음 접한 건 대학 새내기 때 전공 수업에서였다. 그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명실공히(?) 페미니스트다. 일단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모임도 만들어서 운영해봤고, 페미니스트로 발언도 해보고, 집회도 개최해봤으며, 무려 TV와 유튜브에도 출연해봤다.

이 정도면 페미니스트로 할 수 있는 것들 중 유별난 것들은 대부분 해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일상적인 자리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들이나 가족들, 그리고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의견을 좀 강하게 말해야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런데 그 의견이 페미니즘을 경유할 때 종종 나는 난처하고 외로워진다.

나를 구성하는 생각과 말들 안에서 점점 페미니즘이 갖는 지분이 커지면 커질수록, 때때로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동떨어져 저 멀리 둥둥 떠다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둥둥 떠다니는 지영
 둥둥 떠다니는 지영
ⓒ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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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을들의 당나귀 귀2> 소개말에 나오는 '페미니스트 지혜'이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나에게 필요했던 게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얼마나 이 세상이 엉망진창인지 보게 될 수록, 얼마나 이 세상이 구린지 말할 수 있을수록 내 마음은 후련해지는 게 아니라 같이 구리고 엉망진창인 상태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많이 외로웠다.

내가 발을 딛고 선 땅을 떠나 둥둥 떠다닐 수 없다면, 이 땅을 어떻게 꿋꿋하게 걸어갈지 기묘한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을들의 당나귀 귀2>는 이 기묘한 '지혜'를 나누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세상을 향해 '나 페미니스트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여자들이 어떻게 그 미션을 해나가고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을들의 당나귀 귀 2 :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을들의 당나귀 귀 2 :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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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이, 신나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아직도 짐만 싸면 신이 나),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고(우리가 몸속에 품은 수많은 동사들), 좋아하는 것을 고집해보기도 하고(이 세계의 스테레오타입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나를 정직하게 꺼내보고(익숙하지 않은, 예상되지 않는), 섬세한 눈으로 새롭게 들여다보고(페미니스트 감각이 다큐멘터리가 된다면), 누군가를 위로할 용기도 내보고(마음의 능력을 믿는 영화), 사랑하는 마음만큼 싸워도 보고(온전히 사랑받기 위해 질문한다), 버티기도 해보고(내 '이야기'가 정치적 '담론'이 될 때), 다른 다양한 이야기도 잘 들어보고('소녀'와 '할머니'의 이분법을 넘어), 다른 다양한 존재를 잘 받아들여보려는('여기'를 확장하는 정치를 꿈꾸며) 이야기들 속에 이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관심이 없거나 두려움을 갖고 있던 영역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고, 페미니즘이 나에게 준 소중한 것들을 다시 깨닫게 됐으며, 이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운동을 싫어하고, 못 하는 사람인데 '우리가 몸속에 품은 수많은 동사들'을 읽으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 지난 삶에 대해 반성을 했다. 나는 얼마나 몸을 위해 그라운드를 써본 적이 없는가를 페미니스트로서 고민하게 될 줄이야. 슬프게도 글을 쓰는 지금은 어깨에 담이 와서 이틀 째 침대 생활 중이지만, 내 신체와 운동 사이의 거리를 앞으로는 보다 좁힐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음의 능력을 믿는 영화'도 영화 <우리들>과 <우리집>을 보며 위로를 받은 경험이 이미 있어서인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게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아픔의 고통이 있다는 건 같은 경험이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페미니즘을 배우고 나서 정말 수 없이 많이 느껴왔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페미니즘은 함께 춤추며 절망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준 동료였다. 그 외에도 모든 이야기들을 읽는 동안 '맞다, 페미니즘이 정말 그랬지'라고 무릎을 탁 치게 하기도 하고, '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구나'하고 머리를 탁 치게 하기도 했다.

분명 지금은 페미니스트로 살기 참 무섭고 힘든 시기다. 며칠 전 여성의 날 집회가 끝나고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불법촬영을 당할 뻔 했다. 다행히 친구의 빠른 저지로 찍히진 않았지만, 분노는 잠깐이었고 공포와 우울은 길었다. 예전엔 페미니스트들끼리 모이면 복작복작한 수다로 언제나 즐거웠는데, 점점 즐거움보다 우울과 불안, 슬픔을 이야기하는 일이 더 많아진다.

기존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렌즈가 생긴다는 건, 익숙한 세계를 조각내어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생긴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이 익숙했던 세계에서 도려내 저 멀리 어딘가로 쫓아낸 무섭고도 힘든 일 같다고 종종 느껴진다. 어느새 우리는 페미니즘이 줬던 행복보다 페미니즘으로 알게 된 분노와 슬픔에 잠식되어버린 듯 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지영이 찍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지영이 찍은 사진
ⓒ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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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 이겨내보자.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지지만은 않는 싸움을 위해, 쓰러지지 않기 위해, 페미니즘이 나에게 준 소중한 지혜를 행복하기 위해 써먹으며 오래오래 살아남자. '나를 잊지 않는 행복'을 위해 페미니즘은 존재하는 거니까.

을들의 당나귀 귀 2 -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손희정, 장영은, 김혼비, 전고운, 이경미, 김일란, 윤가은, 배윤민정, 은하선, 허윤, 김현미 (지은이), 한국여성노동자회, 손희정 (기획), 후마니타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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