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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했던 홍매가 속절없이 진다. 숨어있던 꽃들은 겨울 추위를 이기고 새싹을 내밀던 노루귀, 복수초도 오는 계절을 막지 못하고 자신의 시간을 더 잡지 못한다. 옛 시인은 연연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 세세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이라고 인생무상을 노래했는데, 그 시에는 짧은 시간 숨죽여 작은 미소를 남기고 속절없이 사라지는 꽃들의 무상함도 담겨 있어 여운이 길다.
  
일명 스노우드립이라고 수선화의 일종인데 꽃이 아주 작다.
▲ 워러노이 일명 스노우드립이라고 수선화의 일종인데 꽃이 아주 작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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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화의 일종으로 워러노이처럼 꽃은 매우 작다.
접사렌즈로 잡은 사진이다.
▲ 실라   수선화의 일종으로 워러노이처럼 꽃은 매우 작다. 접사렌즈로 잡은 사진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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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낮이 길어진들 인생이 길어지지 않고 밤이 짧아진다고 꽃들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반가운 까닭은 더 많은 꽃을 만날 수 있으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리라.

설중화(雪中花)혹은 수선화(水仙花)가 봄 길을 밝히는 계절이다. 여러 시인이 수선화를 아끼고 예찬하는 뜻깊은 시를 남기고 어떤 가인은 아름다운 노래로 감동을 남겼다. 꽃을 보고도 시를 지을 수 없고 노래할 소리도 없는 평범한 사람은 두어 편의 시구를 새기며 수선화 길을 걷는다.
  
무리지어 핀 꽃은 봄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 노란 수선화 무리지어 핀 꽃은 봄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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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시인 황정견은 '淤泥解作白蓮藕(어니해작백연우) 진흙탕에서 백련이 솟아나고 ​糞壤能開黃玉花(분양능개황옥화) 더러운 흙에서 수선화는 피어난다'라고 했다.
실제 수선화는 양지와 음지를 가리지 않고 토양의 성분에도 영향을 덜 받는데, 아마 시인은 그런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으로 공감한다.

사실 지난 세월 내가 지켜본 수선화는 꽃을 피우는 시기는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흙에서도 잘 적응하는 식물이었다. 그리고 번식력도 뛰어나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보니 황정견 시인은 '可惜國香天不管(가석국향천불간) 아까운 미인을 하늘도 알아보지 못하고, 隨緣流落小民家(수련유락소민가) 인연이 없어 타향의 민가에서 떠도는구나'라고 한탄했을 것이다.
  
하나의 꽃대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리며 향이 짙은 편이다.
▲ 하얀 수선화 하나의 꽃대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리며 향이 짙은 편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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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차갑고도 빼어났네. /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 /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인터넷을 뒤적이다 수선화를 아주 좋아하여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종자를 구하고자 했다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만났다. 위의 시가 제주도 귀양살이 중 우리 토종 수선화를 발견하고 남겼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으나, 애지중지하였다는 일화와 함께 기억하고 싶어 소개한다.

제주도가 원산지인 향수선화는 이름 그대로 향기가 짙다. 하나의 꽃대에 두세 송이의 꽃을 선보이며 또 꽃이 오래 가는 귀한 식물이기에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겨울이 추운 지역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가까이 하려면 묘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로사의 정원에는 키가 작지만 다른 수선화에 비해 일찍 피면서 꽃이 똘망똘망하한, 일명 '떼떼수선화'가 한창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노란 수선화는 이제 피기 시작하고 있다. 일경다화(一莖多花), 즉 하나의 꽃대에 서너 송이의 꽃이 피는 하얀색 수선화도 곧 뒤를 이을 것이다.

어린 싹이 아직 얼어 있는, 자신의 몸무게보다 수십 배 무거운 흙을 박차고 나오는 수선화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기적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리지어 피는 수선화에서 봄 길을 밝히는 황금색 등불을 보았다. 세심한 관찰은 마음의 여유 없이 안 되는 일이고, 관찰은 의문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기초라고 하지만 수선화를 보면 "그냥 좋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일명 떼떼수선화라고 하는데 일찍 피는 수선화다.
▲ 애기 수선화  일명 떼떼수선화라고 하는데 일찍 피는 수선화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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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안정이라는 심리 치유로 웃음 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숲치료, 원예치료 등이 알려졌기에 나 역시 관심은 가졌으나 효과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암 수술을 받고 긴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겪었던 나는 이제 꽃을 통한 원예 치료의 효험을 믿는다.

그 꽃의 중심에 봄날의 수선화가 있음을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혹시 나에게 나르시즘 혹은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것 아니냐며 놀리는 사람이 있어도 화를 내지는 않을 듯하다. 봄볕이 따사로운 날에 나의 봄을 시샘하는 망령들은 빼고 가까운 지인을 불러 내 마음을 전하고, 수선화 한 뿌리쯤 나누고 싶다. 우선 주민과 소통을 위해 낮이면 대문을 활짝 열어두겠다는 결단(?)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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