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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랜 세월 햇볕과 비바람에 변색하고 약해진 비닐하우스가 추위에 얼면서 터져버렸다. 그래서 보수공사를 했다. 비닐이 찢겨 너덜거리는 모양새도 그렇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불협화음이 주변의 분위기를 더 사납게 만들어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32㎥ 약 40평의 비닐하우스, 철골조마저 망가지지 않았기에 비닐만 교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선뜻 나설 수 없었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지역은 작은 산골짜기의 분지라 광주에 비해 평균 기온이 3~4℃ 낮고 겨울은 열흘 정도 빨리, 봄은 또 그렇게 열흘쯤 더디 오는 곳이다.

그래서 명절은 당연한 듯 쉬었고, 기온이 낮고 서리가 내리는 날에는 하늘을 탓하며 비닐이 춤추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을 핑계로 나서지 않았다. 사람을 부를까 하고 알아봤더니 비닐하우스 일을 하는 사람의 일당은 30만 원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부담이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한 달쯤 보냈을 것이다. 예전에 비닐 씌우기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힘들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조금 억울하여 내가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먼저 찢긴 헌 비닐을 철거하는 작업을 했다. 비닐을 고정했던 밴드 안의 굽은 철사는 부분적으로 녹이 슬어 서두른다고 빨리 제거되는 것은 아니었다. 벗겨낸 낡은 비닐을 처리하고 철사는 묶어 쓰레기로 버리는 데 네 시간가량, 즉 반나절이 걸렸다.

그리고 지난 2월 25일, 농자재 마트에 들러 하우스 치수에 맞는 비닐과 부속 자재를 구입했다. 하지만 당장 시작하려는 마음과 달리 며칠간 바람이 강하고 흐린 날씨가 문제였다.

비닐하우스 지붕에 비닐을 씌우는 일은 주로 바람이 잦아든 아침에 주로 하는데, 이슬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습기가 많으면 비닐이 매끄럽지 못해 비닐이 찢길 수 있기에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또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면 추워서 일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정도 해가 올라 이슬이 사라지고 바람 없는 시간을 기다렸는데 그 순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 2월 28일 오전, 이슬이 걷히고 바람이 없는 틈을 타서 비닐을 펼쳐 막 지붕을 덮으려는 순간 어디서 달려온 바람 한 덩어리가 우리 일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은 아니었으나 비닐의 네 모서리를 고정하기 위해 바람을 상대로 힘 겨루기란 역시 쉽지 않았다.

아내가 한쪽을 잡고 내가 다른 한쪽을 고정하려는 순간 바람에 비닐은 낙하산처럼 펼쳐지더니 와르르 무너져 흘러내리고 고정해놓은 비닐도 찢겨나가는 꼴이라니!
몇 번 반복되는 실패에 화는 났으나 그렇다고 바람을 핑계로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설치된 골조에 비닐을 덮었다고 하우스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우스 전체에 둘러친 일명 '쫄대'라는 홈이 패인 밴드에, 쉽게 휘지 않고 자르기도 어려운 만리장성 모양의 강철을 끼워 비닐을 고정하는 일과 앞뒤 문짝에 비닐을 고정하는 일, 지붕의 비닐이 날지 않도록 줄로 묶는 일이며, 환기를 위해 출입구 양쪽 벽의 비닐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개폐를 설치하는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비록 괭이로 땅을 파는 일보다는 힘은 적게 들었다고 하지만 종일 서서 하는 작업이었다는 점, 또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 때문에 피로감은 거의 비슷했다고 본다.

오전에 비닐을 덮고 오후에는 비닐을 고정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눈에 거슬리는 미숙한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완성된 비닐하우스를 보니 인건비 지출을 막았다는 점, 또 뜻밖의 재난지원금이 재료 구입에 도움 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이 일을 해냈다는 점 때문에 느끼는 흐뭇함과 보람도 컸다.

시간이 가면 모든 생명체는 더러는 성장하여 모습과 색상을 바꾸기도 하지만 존재의 대부분은 짧은 시간에 소멸한다. 생명이 없는 사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햇볕과 바람에 풍화되거나 사람의 손에 닳아 모습이나 형태는 물론 성질까지 변한다. 처음에는 보물처럼 소중하던 새로운 물건도 퇴색하거나 훼손되어 가치를 잃으면 버림받는 경우를 많이 보고 겪는다.

아마 우리가 자연의 순리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그런 경험들이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변화를 순리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이 변화에는 두려움을 갖는다. 변화의 종착지가 어디인 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난 7년간 몇 차례의 수술과 고통을 겪으면서 내 처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지나간 시절과 모습을 회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솔직히 약한 내 모습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무의식까지 통제하는 여러 가지 조건, 즉 희망의 크기는 작아지고 집착하는 사물의 종류도 점점 줄어드는 나이와 병의 후유증이 남긴 주의 사항은 작은 일조차 주저하도록 압박하는 요인이었다. 욕심을 내어 무엇인가 저지르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의 무게가 두터웠기에 작은 소망도 가만히 접거나 매사에 의지를 꺾으며 사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작은 비닐하우스는 자신과 관련 없는 하찮은 풍경일 수 있다. 하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에게 비닐하우스는 채소를 기르고 여러 농기구를 맡길 수 있는, 작지 않은 편안한 집이다.

때문에 새롭게 단장한 비닐하우스는 개인이 이룬 미약한 성취일 수 있다. 세상에 영원토록 아름다우며 튼튼한 것이 없듯이, 오늘의 비닐하우스 역시 언젠가는 다시 세월의 햇볕과 바람에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성취감은 또 다른 시작일 수 있다. 비록 언제 끝날 줄 모르지만 불확실한 삶의 영속성을 기대하는 원동력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카페 등에도 실립니다.


태그:#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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