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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기자말]
"우리 남편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해야겠다."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그랬어."
"내가 그 상황이면 너무 싫겠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남편을 대신해 혼자 생계를 꾸려가던 시절, 지인들에게 듣던 말들이었다. 주변을 봐도 대부분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불안해하거나 말리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왜 말리지 않았을까?

내가 남편을 지지했던 이유는 언젠간 나도 사업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한쪽이 돈을 벌면 다른 한쪽은 모험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만약 둘 중 한 명이 먼저 사업을 시작한다면 그건 남편이라고 판단했다. 경제적인 논리로 따져서 내 월급이 남편보다 많았고,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남편 회사보다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렇지 않은 현실
 
나는 빠른 부의 추월차선을 원했다.
 나는 빠른 부의 추월차선을 원했다.
ⓒ lucadg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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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업을 하려는 이유는 각자 달랐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난으로 인한 결핍이 컸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지만, 돈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내 아이들에게 그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직장인 월급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이유로 남편은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는 결핍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상상과 아이디어가 늘 넘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수첩엔 늘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을 언젠간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나의 욕망과 남편의 상상이 만나 사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직장생활하며 재테크로 부를 쌓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에 남편이 사업하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그래, 내가 당분간 돈 벌 테니, 당신은 사업해"라고 말했다. 남편 사업이 안정되면 나도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젊은 패기에 단순히 돈만 보고 선택한 결과는 참담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돈은 시간과 노력을 먹고 자라는 존재였다. 사업을 하는 동안 부자가 될 거라는 확신은 직장인보다 못한 수입으로 빚더미에 허덕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나의 단순하고 이상적인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은 우리를 비켜갔다.

경제적인 불안은 부부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가 본격적으로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서 내가 별 볼일 없는 직장인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였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회사에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그러니까 내가 남편을 내조하고, 사업에도 성공한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고단한 출퇴근을 견디며, 승진에서도 계속 탈락하는 별 볼일 없는 직장인이었다. 남들 눈에는 남편 대신 힘들게 생계를 책임지는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친 나머지 가끔은 어디론가 숨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남편에게 그냥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특별한 경력 없이 실패만 쌓아온 40대 중반의 남자를 반기는 회사는 없었다. 그때 남편과 참 많이 싸웠다. 우리는 "너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가끔 상상한다. 만약 내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이었으면, 남편 사업을 좀 더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었을까? 남자의 성공을 내조했던 여자들의 인터뷰처럼 "저는 남편의 가능성을 믿었어요"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게는 불안한 미래를 억지 희망으로 감싸는 것보다 현실을 살아내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경계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을 믿지 못했다. 남편도 나를 믿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신념은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신념. 그 신념으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치열하게 살아냈다.

경계를 지켰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따로 또 같이 가는 것이 부부 아닐까
 따로 또 같이 가는 것이 부부 아닐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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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에게 제품 양산 비용이 부족해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만, 내 월급을 줄 수 없었다. 당시 남편의 사업은 불확실했고, 월급을 준다고 한들 그 돈을 회수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우리에겐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게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사업으로 인해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온 가족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남편 사업이 자리 잡는 동안 내 월급은 사업 비용과 거리를 두었다. 내 월급은 가족의 생계,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그때 남편은 한 푼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지만, 내 의견을 존중했다. 남편은 정부지원사업을 받고 공모전에 참여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나는 나대로 생계를 책임지며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작년, 우리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내가 퇴사하면서 남편 사업을 같이 돕게 된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에서 같은 이야기로 만나게 되었다. 퇴사 즈음, 아직 작은 회사지만, 열심히 일하다보면 생활비는 벌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시간당 내 인건비를 계산해보니 사업을 돕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같이 사업하며 보니, 그동안 남편이 쌓아올린 것이 생각보다 탄탄했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제품에 대한 리뷰가 몇 천개 쌓여 있었고,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도 치열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지금에야 깨닫게 된 건,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했을 때는 불행했고, 의지하지 않았을 때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남편 사업을 여전히 지지할 것이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는 것이니까.

다만,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는 착각과 내가 회사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오래 달릴 마음의 준비를 할 것 같다. 착각이 깨지는 동안 나는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다. 배우는 동안 많이 아픈 건 덤이었다.

남편의 사업을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했던 지인들은 대부분 남편이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들의 직장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말은 30대까지만 유효하고, 연장에 연장을 하더라도 60을 넘기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직장인으로서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로 부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많다. 이미 주변에서도 많이 보았다. 직장인의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직장인의 '삶만' 바라보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시대를 탓할 수도 없고, 시대를 바꿔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만약 배우자가 사업을 한다면, 두 가지를 권유하고 싶다. 첫째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될 때까지 다른 한쪽은 현금흐름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생계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서로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재촉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를 믿고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다. 성공은 돈과 시간, 노력, 운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가족의 생계가 위험해질 수 있는데, 올인하거나 생계비가 없으면 조급해진다.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게 되고, 사업은 힘들어진다.

남편이 가끔 말한다. 내 월급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품과 회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사업에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도움이라는 것을. 어쩌면 부부의 세계는 서로에 대한 기대보다 각자 스스로 섰을 때, 더욱 굳건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확실 한 건, 우리는 각자 서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표라는 영역에서, 나는 마케팅이라는 영역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써 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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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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