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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편집자말]
돈 없어도 사업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 수 있다. 단,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과 돈은 동급이다. 돈이 많다면,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적게 걸리지만, 돈이 없다면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 이때 시간은 기회비용으로 환산된다.

남편이 창업 초기에 어느 강의에 가서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만약 부모가 부자이거나, 배우자의 부모가 부자이면 5년 정도면 성공을 바라볼 수 있고, 둘 다 아니라면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10년 정도를 생각하세요."

우리 부부는 양가 모두 부자가 아니었으므로 10년은 족히 걸릴 터였다. 그래도 만약 10년 후 성공이 확실히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걸 확실히 보장하겠는가?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사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고,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고,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qimono,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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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업을 두려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잃는다는 것은 작은 금액이건 큰 금액이건 고통에 해당한다. 이런 두려움을 바탕으로 무자본 창업, 소액 창업이 성행하는지도 모른다. 무자본 창업은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더라도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험을 하고 싶은 욕망을 타깃으로 한다. 물론 남편과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남편은 이미 여러 번의 조그만 모험으로 실패를 쌓고 있었다. 돈은 적게 잃었지만, 문제는 기회비용이었다. 둘째 임신 즈음부터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갈 동안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외벌이 가장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남들이 맞벌이로 집을 사고, 자산을 불려가는 동안 우리는 빠듯한 생계를 이어갔다. 이때 내 소원은 남편이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 오는 것이었다.

다행히 기회비용을 잃고 나서 남는 건 있었다. 경험과 남편의 발명품이었다. 남편은 발명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사업화를 해야 할지 몰랐다. 빠듯한 형편에 투자할 돈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도 없었고, 특히 제조업 관련해서는 어떻게 판로를 개척해야 할지도 몰랐다.

남편이 창업 초기에 사무실 공간으로 활용하던 곳은 공공도서관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서는 도서관에 가서 무료 인터넷으로 일을 보고, 메일을 보내고, 자료를 찾곤 했다. 그러다 찾은 곳은 창업진흥원에서 제공하는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였다. 초기 창업자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3D프린터 등 시제품을 만들기 위한 장비에서부터 팩스, 프린터기 등 사무용 기기를 활용할 수 있어 초기 창업자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더불어 중소기업청에서 운영하는 '메이커 스페이스'도 풍부한 시제품 제작 장비를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물론 무료로 지원되는 공간인 만큼, 경쟁률도 치열했다.

지원센터의 공간을 얻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와 발표평가 등을 거치게 되는데, 남편의 경우는 이 사업계획서에 무척 정성을 들였다. 각종 공공기관을 매일 서핑하며 무료 창업교육은 전부 들었다. 비슷한 이야기도 다시 듣고, 사업계획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강사에게 달려가서 질문하기도 여러 번, 그렇게 수정된 사업계획서로 지원센터의 사무실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지원센터가 좋았던 점은 초기 창업자에게 세무, 회계, 법률, 마케팅 등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사업 경험이 전무한 사람에게 기초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 하나, 창업을 하는 다른 대표님들과의 인맥이었다.

초기 창업자들의 어려움을 서로 격려하며 버틸 수 있었고, 사업화와 관련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남편은 발명품을 3D프린터로 제작해 실험을 하며 좀 더 구체화 시켰고, 각종 공모전과 발명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만 39세 이하 대상 '청년창업사관학교'
 
어디선가 노력하고 있을 초기창업가들에게 이 글이 도움되길 바란다.
 어디선가 노력하고 있을 초기창업가들에게 이 글이 도움되길 바란다.
ⓒ ?CoolPubilcDomains,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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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부 창업지원자금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정부 창업지원자금은 신사업발굴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참고로 먼저 말하자면, 정부 창업지원자금은 100% 지원해주지 않는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70~80% 혹은 90%까지 정부 자금으로 지원해주고, 나머지 비용은 개인부담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용 출처가 명확해야 한다. 처음 사업계획서에 냈던 곳 이외에 다른 곳에 쓰면 안 된다.

지금 제품을 사업화하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정부지원사업 중 하나는 '청년창업사관학교'였다. 청년사관학교는 창업아이템을 가진 예비 및 청년창업가를 지원하는 제도인데, 이 제도를 통해서 지금 회사의 모습을 거의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스와 직방도 청년창업사관학교 출신이다. 남편은 2017년, 2018년 두 번에 걸쳐 입교를 했었다(청년창업사관학교 제도라 '입교'라는 표현을 쓴다).

이 제도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제목에서처럼 청년들을 위한 제도라 만 39세 이하 대상이다(2017년 모집요강은 기술경력자에 한해 만49세까지 지원 가능했고, 2018년엔 이전 졸업자에 한해 10% 정도 재입교 가능해 지원했다). 최대 2년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창업공간과 자금을 지원해주는데, 최대 1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창업자금은 사업비의 70%를 정부가 지원하고, 입교자가 30%를 부담한다. 개인부담 30%는 현물 20%, 현금 10%인데, 현물에는 인건비가 포함된다. 즉, 10%에 해당하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지원 가능하다.

1억 원을 전부 주는 것은 아니다. 금액은 선정 사업마다 차등 지원된다. 중간 평가 제도가 있어서 성과에 따라 금액이 늘어날 수도 있다. 최대 1억 원 이내에서다. 이 돈은 창업자의 통장으로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는 업체로 돈을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금형제작을 하게 될 경우 금형제작 업체에 돈을 주고, 창업자는 제품을 받는 형태다. 이곳에서 남편은 시제품을 제작하고, 특허 등록 및 지식재산권 등록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연결해준 컨설턴트의 지원으로 마케팅과 판로개척을 할 수 있었고, 비로소 기업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이 제도는 매해 연초에 공고하고 모집하는데, 모집요강이 매년 조금씩 달라지니 자세한 사항은 K-Startup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겠다).

남편은 10%의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공모전과 해커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받아 모았고, 혹시 상금이 아니라 상품을 줄 경우엔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절박했던 남편은 당시 공모전이나 해커대회에 나가면 꼭 상을 받아왔다. 그때 남편의 별명은 '공모전 헌터'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이후 6년 정도 흘렀다. 그동안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전환했고, 현재는 한 대학교의 산학협력관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성장해서 나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는데, 대학교 근로장학생 지원을 받아 같이 일하다 2020년에 정식직원으로 채용했다. 이외에도 재택근무 인력과 배송과 물류 담당하는 파트타임 인력까지 하면, 1인 기업의 모습에서 나름 기업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업 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려면

앞서 양가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라면 사업성공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10년이 아니라 몇 달 만에도 성공하는 사례도 있고, 한 달에 천만 원 벌기는 생각보다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 모두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아마도 10년 걸릴 모양이다. 6년 했으니 4년 남았을까? 더디게 커 왔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소원이던 남편이 주는 생활비도 꼬박꼬박 벌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너무 큰 큰 목표를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작은 책상 하나, 3D프린터기 하나, 제품 하나를 바라보고 천천히 달려왔다.

우리는 0원에서 시작했으므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책상이 있는 사무실, 프린터기, 전화기, 팩스 등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소중했다. 처음 책상이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을 때의 환희, 청년창업사관학교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 남편의 들뜬 목소리, 고객의 첫 구매. 모든 순간이 짜릿했고, 감동이었다.

가끔 사업 자금이 충분했거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짜릿함과 감동이 덜 했을 것 같다.

만약 지금 0원인데, 사업가를 꿈꾸고 있다면 작은 것부터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 창업지원자금도 무언가를 보여주고 증명해야 합격 확률이 높다. 작은 것이라도 시도하고, 이루고, 쌓는 것, 그런 과정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초기 창업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도 작은 행동을 쌓고, 다음 목표를 향해 걷는다. 어디선가 기회비용을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창업가에게 글이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태그:#연재기사, #창업, #1인기업,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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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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