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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인근 추기예프의 군용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 남성이 길을 걷고 있다.
 2월 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인근 추기예프의 군용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 남성이 길을 걷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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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쿠바사태 당시 미국은 소련이 대응할 수 없는 근거리인 이탈리아와 터키에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또한 미국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바를 침공했다. 이처럼 미국의 위협에 직면한 소련과 쿠바는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에 케네디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핵전쟁에 대비할 것을 요청하고 "쿠바뿐만 아니라 모스크바까지 핵미사일로 공격하겠다"고 소련에게 통보하였다. 미국은 플로리다에 25만여 명의 정규군과 천여 대의 전투기를 집결시켜 쿠바 공격을 준비하는 한편 8척의 항모와 수백 척의 군함을 동원하여 쿠바를 봉쇄하였다. 나아가 미국은 모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 준비시켰다. 특히 B52 핵 폭격기 등 미국의 1,000여대가 넘는 전략폭격기는 핵폭탄을 실은 채 영공에서 24시간 대기하였다.

실제로 미소의 군사충돌이 발생했다.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 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조종사가 사망하였다. 다른 미군 전투기들도 쿠바 영공에서 대공포 사격을 받았다. 같은 날 미국의 구축함이 소련의 핵잠수함을 추적하면서 훈련용 폭뢰를 투하하였다. 이를 실제 공격으로 착각한 소련의 핵잠수함은 핵 어뢰를 발사하려다 마지막에 취소하였다.

미국에게 전쟁은 

전쟁은 미국이 참전만 하지 않는다면 실은 복권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전쟁 물자를 미국 정부와 동맹국에 판매함으로써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이익을 본다. 항상 과잉생산으로 불황을 걱정해야 하는 미국정부도 경제가 활성화되어 정권에 대한 지지도 올라가니 전쟁을 내심 환영한다.

또한 미국이 참전만 하지 않으면 강대국끼리 싸우니 전쟁이 끝나면 미국은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유일한 패권국이 되는 셈이다. 유럽은 2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 후 미국의 유럽에 대한 전쟁채권과 복구지원 때문에 완전히 미국에 종속됐다.

그래서 미국은 은근히 전쟁을 원하고 전쟁이 나면 전쟁 물자를 유상으로 혹은 무상으로 제공한다. 심지어 전쟁 초기에는 양쪽에 수출을 하다가 이후에는 동맹국의 적국에 대해 금수조치를 한다.

이 경우 금수조치를 당한 동맹국의 적국 즉 양차 대전 당시의 독일, 2차 대전 당시의 일본은 전쟁 물자 부족 때문에 결국 미국을 공격한다. 이렇게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발생했다.

1차 대전의 시작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 난 직후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 물자를 지원하는 등 이미 경제적으로는 전쟁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런데 독일에 밀리던 연합군이 파병을 요청하자 윌슨 대통령은 내심 참전을 원하였지만 도덕적 명분을 필요로 하였다. 독일은 이미 연합군에 전쟁 물자를 수출하는 미국의 상선에 대해 "잠수함 U보트를 통해 무제한 공격을 하겠다"고 경고한 상태였다.

1915년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 U보트에 의해 격침되어 124명의 미국인 승객이 죽자, 윌슨 대통령은 참전할 것을 대비하여 군비를 증강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 등 민주당의 지지세력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윌슨 대통령은 1916년 대선에서 사실상 전쟁 불참을 약속하는 평화강령을 선언하였다.

1917년 독일은 멕시코의 카란사 대통령에게 "멕시코가 독일 편에 서면 전쟁에서 이긴 후 1848년 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다시 멕시코에 돌려주겠다"는 '짐머만 비밀전보'를 보냈다. 그런데 미국이 암호를 해독하여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해 3월 3척의 미국 선박이 독일 해군에 의해 격침되었다.

같은 해 4월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가 연합국에서 탈퇴하였다. 독일이 승리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자 여론은 전쟁 참여로 기울어졌다. 윌슨은 1917년 4월에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였고 그 해부터 50만 명의 미군이 유럽에 파견되었다.

2차 대전의 시작

히틀러는 유럽을 전부 정복할 때까지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고자 하였다. 히틀러는 먼저 영국을 굴복시킨 후 영국의 해군과 일본의 해군을 이용하여 미국과 해상 전쟁을 벌이고자 하였다. 히틀러는 영국이 독일에 패배하면 미국이 캐나다를 병합할 것이고 이에 반발한 영국이 자신에게 협조할 것이라고 믿었다. 히틀러는 유럽 정복 이후 일본과 함께 미국에 대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1941년 비밀회담을 하였다.

히틀러의 신질서는 실제로 독일의 전쟁계획에 반영되었다. 히틀러는 유럽을 정복 중이던 1941년 1월 31일 연설에서 "올해는 유럽의 신질서가 도래할 것이며, 이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히틀러의 신질서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으며 특히 히틀러가 애초부터 미국과 전쟁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기 9개월 전인 1941년 3월 15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히틀러의 신질서는 유럽정복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모든 선거체제를 전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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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해 10월 27일 "독일은 대서양 건너편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하지만 그들의 잠수함과 레이더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고 "미국이 획득한 히틀러의 전쟁 계획 지도에 따르면 히틀러는 파나마를 포함한 중미를 점령하고 재분할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 준비에 전념하자 미국은 1939년 독일과 일본 등 여러 나라와 동시에 전쟁을 하는 무지개 전쟁계획을 수립하였다. 무지개 전쟁계획은 미국이 영국이나 프랑스와 동맹을 맺는 경우와, 맺지 않는 경우에 독일, 일본과 동시에 전쟁을 하는 계획이었다(Steven, 2002).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두 나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하여 폴란드와 발트3국을 각각 점령하기로 하였다. 독일은 그 다음달 9월에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7년 '격리연설'에서 "미국이 국제정치의 무법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윌슨주의가 추구하는 평화추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임을 밝혔다. 1938년 미국은 중국에 무기판매를 결정했고, 일본에 대한 금수조치를 권고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군은 미국에게 참전을 요구하였고, 프랑스가 1940년 6월 독일에 항복하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전쟁 참여 명분을 찾았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에 대해 원유 등 금수조치를 함으로써 일본의 공격을 유발하였다.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과 일본의 동맹인 독일에 대해 동시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우크라 전쟁, 3차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국제정세는 이미 완성됐다. 미국과 동맹국이 러시아의 국경인 우크라이나에 미국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고 한다. 때마침 러시아와 전쟁을 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동맹국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미국과 전쟁을 한 쿠바가 소련을 끌어들이려 한 쿠바사태와 완전히 같다.

미국과 나토는 엄청난 전쟁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여 러시아를 전쟁의 늪에 빠트렸다. 동시에 러시아에 전면적인 제재를 함으로써 러시아의 전쟁능력을 고갈시키고 있다. 러시아가 전쟁에 이기려면 우크라이나에 전쟁 물자를 제공하는 미국과 동맹국의 선박, 비행기, 차량을 공격할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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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계 대전이 가능한 진영 대결도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은 나토와 우크라이나이다. 북과 미국은 현재 전쟁상태나 마찬가지이고, 러시아는 미국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북의 행동을 원한다. 북이 미국 본토를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면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북의 입장에선 70년 동안 고통스런 북미전쟁에서 이제는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핵전쟁이 가시화되면 미국이 양보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항하는 러중북

3차 세계 대전을 가장 피하고 싶은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앞으로 20~30년 후면 전쟁 없이 미국을 누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미국은 아직 군사력이 우위일 때 중국을 누르고 싶어 한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대해 경제전쟁뿐만 아니라 대만보호를 위한 군사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길 원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한다면 이번 기회에 대만을 점령해 중국을 통일하고 싶어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미국은 러시아, 중국, 북이라는 3개의 핵무장 국가와 전쟁상태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물자를 실은 미국과 나토의 선박이나 항공기를 공격하여 재래식 전쟁으로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 아니면 우크라이나에 본보기로 전술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북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중국은 대만해협을 봉쇄하고 대만과의 전쟁을 준비할 수 있다.

바이든과 미국 의회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자국과 나토가 공격받으면 러시아와 전쟁하겠다고 발표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유럽에 있는 전투기 등 전략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미국의 여론은 전쟁반대이다. 하지만 미국인이나 미국의 재산이 러시아로부터 공격받으면 여론은 바뀐다. 이미 러시아군에 의해 미국의 뉴욕타임즈 기자 1명이 사망하고 한명이 부상당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바이든이 핵전쟁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지 않는 한 여론은 전쟁으로 오도될 수 있다.

미국의 오만

3차 대전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미국 탓이다. 조지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편입하려고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와 전쟁을 하도록 부추겼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경제적으로 봉쇄하고 제재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핑계로 미 군사력을 중국 인근으로 보내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북에 대해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압살정책을 취하고 있다. 아프가니탄에서 졸속적으로 철수하여 국내외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이든이 군 통수권자로서 자존심 회복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러시아가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미국과 서유럽은 러시아, 중국, 북과 핵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미국이 미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다고 물러 설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보면 푸틴이 "모스크바를 핵공격하겠다"는 케네디보다 덜 호전적인 것으로 보인다.

친미 여론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다. 러시아와 중국, 북을 동시에 궁지에 몰면 이들이 동맹을 맺어 미국에 대항할 수 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동유럽과 대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재래식 전쟁을 거쳐 핵전쟁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결국 모스크바,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 LA, 워싱턴, 서울, 평양, 북경 등 대부분의 도시는 사라진다.

세계대전을 막으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하다. 러시아, 중국, 북과 같은 도전국가를 붕괴시키겠다는 미국의 오만이 세계전쟁의 위기로 몰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겠다는 바이든의 한마디면 이 상황은 종료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 한마디를 이미 써놓고 푸틴의 인내심과 러시아의 맷집을 확인하려고 끝까지 상황을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https://ohhangang.blogspot.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우크라이나, #핵전쟁, #대만,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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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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