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고 설 명절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대통령 선거에 쏠리기 시작했다. 연일 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며 떠들어대는 제1야당의 후보도 그러하거니와 그래도 '그들'은 아니지 않냐는 여당 후보까지.

전 국민의 개혁을 향한 요구에 힘입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태어난 현 정부는 개혁에 실패했고 반성하지 않는 그들에게 민심은 등을 돌렸다. 그 덕에 쫓겨나다시피 했던 적폐의 본산은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연명하다가 느닷없이 지지율 1위를 점하는 위용으로 당당히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형국이 됐다. 매일매일 온갖 매체에서 끊임없이 혐오를 창출해내는 이 시국에서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매스미디어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도 시민사회는 별다른 말이 없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시대정신을 말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저 좀 더 나은 정책을 찾아 정책협약을 하는 데 바쁘다. 아무도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절망적이다. 지상파뿐만 아니라 우후죽순으로 자라난 온갖 매체들이 새로 태어날 대통령선거로 연일 나팔을 부는데 정작 그들을 뽑아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말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동네 구의원도, 우리 지역 국회의원도 아닌 대한민국 국정을 5년간 이끌어갈 사람을 뽑는 일인데 말이다. 문득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봤자 5년짜리들인데, 이 나라 평생 주인은 국민인데 왜 우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아니 왜 귀 기울여 듣는 자가 없는가? 최소한 이때 만큼은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이런 데 정말 당선되고 나면 우리를 정말 개돼지 취급을 하지 않겠는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구나, 뭐라도 해야겠다. 한번 해보자!

경솔하고 귀가 얇으며, 심지어 정의롭기까지 한 - 이건 평생 고생을 맡아놓은 불행한 인간형이다- 예술가들이 급기야 일을 저질렀다. 만약 우리 이웃들이 대선후보가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영화 <발언시간>의 시작이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사람은 퀵서비스 노동자였다. 그는 서울살이 50년이 지났지만 6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스팔트위 매연 속을 매일 달려야 먹고살 수 있다. 연 평균 4조원에 육박하는 시장인 퀵서비스 산업. 이 곳도 사람이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퀵서비스는 관련법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뿐인가. 하루 평균 9시간을 일하고 월평균 330만 원이 넘는 수입이 있으나 알선 수수료 56만원, 오토바이 기름값 16만원, 지입료 10만원, 통신비 10만원 등을 떼고 나면 월 평균 순수입은 200만원 남짓이라고 했다. 법으로도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하루종일 매연 가득한 거리를 달린 댓가로 얻은 수입의 3분의 1을 뜯기는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 이 답답한 현실에 누가 응답하고 있는가?

퀵서비스 노동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소문을 들은 농민이 연락이 왔다. 왜 농민들의 이야기는 넣어주지 않느냐고. 일부러 제외했다기보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섭외에 자신이 없었던 제작진은 그 분의 도움으로 청년농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 20대에 청년 창업으로 고생만 하다가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겠다고 나선 젊은 농민을 만났다.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는데 청년들의 어려움에 마주쳤다.

농사만 지어도 먹고살게 해달라는 농민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인공이었던 노동자는 30년 전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가 해고됐고,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으나 복직되지 못하고 여전히 길위에 있다. 부당해고 판결이 나도 집행되지 않는 나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잔인한 나라. 그것이 얼마 전 선진국대열에 섰다며 폭죽을 터뜨렸던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이 사람들이 대선후보로 내세운 공약은 참 소박하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에 서기 전에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공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공약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당신들이 아닌 우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서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들릴 때까지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영화 <발언시간>이다.

이런 영화를, 그것도 딱 한 달 만에 만들어 올리겠다고 텀블벅에 올렸다. 어떤 이들은 이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스스로도 이건 미친 짓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매일 늘어났다. 이 답답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인건비 생각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제작비라도 모아달라는 생각으로 7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아달라 올렸는데 그 금액을 훌쩍 넘기는 제작비가 모였다.

기운이 났다. 그래서 이 돈으로 인건비를 나눌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는 또 다시 꿈을 꾼다. 제작비를 쓰고 남은 돈으로 이런 영화를 또 만들자. 앞으로 계속 우리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만들자. 그렇게 우리는 시민영화제작소(가)를 만들 꿈을 꾼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작지만 절대로 지워지면 안 되는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영화 <발언시간>은 7일 제작위원 시사회를 열 계획이다. 절대적인 다수이지만, 스피커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라. 그리고 함께 이야기해주시라. 당신도 발언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발언시간 20대 대선 시민들의 대선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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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삶터의 예술공동체 마루 대표, 공연예술인노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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