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미국의 대공황 시절 유랑극단의 인간 군상과 성공에 목마른 아메리칸드림의 한 자화상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하는 첫 누아르 장르이면서도 크리쳐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기괴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둡다 못해 기이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전작과 비슷한 결이다.
 
4년 전 내놓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처럼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심연의 이야기에 접근한다. 감독이 던져 놓은 복선은 대부분 수거되며 연기 구멍 없는 배우들의 호연에 완벽한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을 선사한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촬영상, 의상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다.
 
원작자와의 주인공의 기묘한 평행이론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1946년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이듬해 '타이론 파워' 주연의 영화 <악몽의 골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원작 소설은 작가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1938년 말부터 1939년 초까지 '대니얼 할리데이'라는 남자가 들려주는 기인 이야기에 매료돼 집필한 허구다. 원작에는 총 10가지 쇼와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영화는 몇 가지로 각색했다. 소설에는 남부 흑인들의 북부 도시의 환상과 스탠턴, 몰리의 전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캐릭터 이해를 돕는다. 기회가 된다면 원작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상 소설의 주인공 스탠턴은 작가와 동일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레셤은 이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53세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술에 절어 집필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심각한 알코올 중독, 신경쇠약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 점차 눈이 멀어가고 설암도 생기는 등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아내도 떠나고 한 호텔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빠른 두뇌 회전과 습득 능력, 눈치가 빠른 미남의 매력적인 남성은 자신이 만든 저주(욕망)에 걸려 악몽의 골목길을 배회하게 되었다.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두려움을 먹고 사는 악몽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버지를 죽이고 유유히 유랑극단에 흘러 들어온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타로 점성술사인 지나(토니 콜렛)와 몰락한 독심술사 남편 피트(데이빗 스트라탄)의 도움을 받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부부는 상처받은 사람들은 늘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고 누구든 그 말을 해주길 바란다며, 타인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부분에 특출난 재능을 발견한 스탠턴은 훗날 뉴욕으로 떠나 상류층을 현혹하며 스타로 군림하게 된다.
 
사실 피트는 지나와 인간 본성을 연구한 이론으로 성공하기도 했으나, 그 위험성을 간파한 인물이다. 본인이 만들었지만 화를 부를 수 있는 악마의 책이라는 걸 알기에 스탠턴의 관심에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스탠턴이 닮고 싶은 아버지이자 죄책감의 근원이자 이중적이고 묘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노년의 남성으로 묘사된다.
 
한편, 절박한 스탠턴이 잠시 지낼 수 있게 허락한 클렘(윌렘 데포)은 닭 목을 물어뜯는 기인의 식사 장면을 보여주는 대가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사기꾼이다. 그는 기인은 만들어지는 거란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부랑자를 꽤내어 족쇄를 채우면 된다는 식이다. 두려움으로 기인이 만들어진다며 자신의 방식을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스탠턴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지 혐오하면서도 이상하게 빠져드는 그의 말에 취하게 된다.
 
스탠턴은 술로 인생이 위태로워진 피트와 기인을 목격한 후 절대 술은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중 전기를 온몸으로 맞는 소녀 몰리(루니 마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아버지를 여의고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부르노(론 펄먼)와 난쟁이 소령 모기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탠턴은 몰리와 뉴욕으로 떠나 독심술 쇼를 펼치며 성공한다. 그러던 중 심리학자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를 만나며 위기를 맞는다.
 
릴리스는 스탠턴과 몰리의 쇼에 나타나 훼방을 놓지만 이후 스탠턴의 심리 상담을 통해 친분을 쌓는다. 하지만 팜므파탈인 그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스탠턴은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마시게 되고 뉴욕 최고의 거물 에즈라(리차드 젠킨스)를 소개받는다. 이후 끝 모를 욕망에 사로잡힌 스탠턴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앞만 보고 달려보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꾹 눌러 담은 영화 예술의 정수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이트메어 앨리>는 매력적인 배경과 캐릭터, 스토리텔링, 미장센으로 로 중무장해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 힘들었던 1940년대 대공황 루즈벨트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최고의 엔터테이닝이라고 할 수 있는 카니발 공연단은 지금의 대중문화 예술의 의미와 인기를 누렸다. TV나 오락거리가 없던 20세기 초 사람들은 가끔씩 찾아오는 유랑극단에 매료되었다. 공터에 자리 잡고 놀이공원, 먹거리, 신기한 짐승쇼, 도박성 게임, 연극이나 타로점, 묘기 등을 관람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캐릭터는 독립적이면서도 스탠턴 내면의 기질을 상징한다. 욕심, 성공, 의심, 자비, 자신감 등. 각자의 이유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 스탠턴을 비롯해 누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인마저도 스탠턴이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응축된 조각 같다. 수미상관의 문학적 구성법을 적용한 오프닝과 클로징의 충격적 반복의 놀라움이 선명하다.
 
150분이란 긴 러닝타임을 할애해 복잡하고 매력적인 스탠턴의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릴리스 박사가 등장하면서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된다. 스탠턴의 외모는 물론이고 목소리 톤과 표정마저 다른 사람이 된 듯 달라진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내면 누구든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 공포가 인간의 본성으로 이어지는 열쇠라던 피트의 예언처럼. 범죄와 처벌이 법의 심판이 아닌 인생의 대가가 되어버린 사람의 말로는 씁쓸하다 못해 가슴이 아리다.
 
요즘 영화는 점점 러닝타임이 길어지고 있다. 극장에 일부러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과 위험, 숏폼 콘텐츠에 길들여진 습관을 되돌리기 어려워졌다. 마스크를 쓰고 갇힌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봐야만 하는 수고 때문에 이제 극장 나들이는 더욱 신중해지고 있다.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웰메이드라야만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오로지 극장의 몰입도와 영화적 마술을 경험하는 시네마틱 한 경험의 영화다.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가 모여 작은 역할도 기억에 남을 압도적인 캐릭터와 서사를 들려준다. 꽤 괜찮은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극장을 찾아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 다양한 등장인물과 긴 이야기 속을 유랑하는 스탠턴을 중심으로 곁가지처럼 등장하는 클렘, 지나, 피트, 몰리, 릴리스 마지막의 에즈라까지 이어지는 흥망성쇠를 목격하는 진짜 영화다운 영화다.
나이트메어 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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