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의 레전드' 류중일 감독이 태극군단의 새로운 지휘자가 됐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23일 류중일 감독을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제 19회 하계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사령탑은 과거와 달리 KBSA가 중심이 되어 '공개 모집'을 통해 지원자를 모집하고, 경기력 향상위원들의 평가를 통해 선발되는 방식을 거쳤다. 류 감독은 총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자격이 충분하다. 류 감독은 현역 시절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KBO리그를 대표하는 내야수였다. 지도자로서도 친정팀 삼성을 2011년부터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 4년 연속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이끄는 업적을 세웠다. LG 트윈스에서도 2019-2020년 2년 연속 4위로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역대 국내 야구인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 들 만한 커리어다. 불과 2년 전까지 프로 구단의 사령탑을 맡고 있었기에 현장감각이나 현역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에서도 문제가 없다. 대표팀 사령탑도 이미 경험이 있다. 아직 전임감독제가 아니던 시절,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지휘봉을 잡았다.
 
친근하고 소탈한 성격도 강점으로 꼽힌다. 권위적인 이미지의 감독들과 달리, 류 감독은 선수들과도 스스럼없이 농담과 스킨십을 주고받으며 먼저 다가가는 데 능숙하다. 특히 이번 AG 대표팀은 일부 와일드카드를 제외하고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될 대표팀 감독으로서 소통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
 
사실 류중일 감독 정도의 커리어라면, 대표팀에서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셔가서 추대하는 게 모양새가 더 어울린다. 프로에서 이미 성공한 거물급 지도자들에게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는 현실적으로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만 클 뿐 절대 그리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뤄본 백전노장이 굳이 대표팀 감독에 다시 지원해야할 만한 이유는 찾기 힘들었다.
 
같은 이유로 이번 대표팀 감독 후보에 지원하라는 제의를 거절한 프로 감독급 지도자들도 다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류 감독은 진정한 야구인답게 기꺼이 어려운 길에 다시 한번 도전을 선택했다. 현행 KBSA 규정상 양질의 대표팀 감독 후보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류 감독의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쉬움과 우려의 목소리도 조금씩 나온다. KBO에서의 훌륭한 커리어에 비하면, 대표팀 감독으로서 류 감독이 보여준 성과는 아쉬운 면이 있다. 대표팀이 아직 전임감독제가 아니던 시절, 첫 도전이었던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는 사상 최초의 1라운드 탈락이라는 흑역사를 수립했다. 이듬해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며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지만, 상대팀들의 수준이 낮았던 데다 병역문제를 둘러싼 선수선발과 경기력 논란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프로무대에서도 삼성 시절까지는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연속 우승을 달성했지만, LG에서는 우승후보로 꼽히던 전력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가을야구 진출에 그친 것은 만족하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어느덧 노장 감독의 반열에 오르며 단기전에서의 경기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나 현대야구의 트렌드에 뒤처진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대표팀 감독은 젊고 참신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승엽이나 박찬호같은 지도자 경험이 없는 야구계 레전드들에게 지휘봉을 맡기자는 파격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나 이들은 KBSA의 대표팀 감독 자격 기준을 채우지 못해 후보조차 될 수 없었다. 또다른 레전드인 이종범 LG 트윈스 2군 감독도 이번 공모에 지원하여 아들 이정후(키움)와 '감독-선수 부자 국가대표'의 탄생을 기대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단지 나이가 젊거나 스타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감독도 잘할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대표팀 감독은 경험하는 게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새로운 감독이 이끌어야 할 첫 무대는 아시안게임이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실패를 겪은 야구계에게 이번 대회는 재도약의 발판이 돼야 할 국제대회다. 우승도 우승이지만, 침체된 대표팀과 한국야구의 분위기를 전환하고 새로운 세대교체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막중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할 일도 많고 부담이 큰 대표팀 감독직을, 검증되지도 않은 인물들에게 맡겨 도박을 걸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 류중일 감독에 대한 우려는 최근 대표팀을 거쳤던 베테랑 감독들의 연이은 '용두사미 결말'이 남긴 불신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 5년간 대표팀 감독을 거쳤던 김인식(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선동열(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김경문(도쿄올림픽) 전 감독이 모두 대표팀 사령탑으로 치른 마지막 대회에서 마무리가 좋지못한 모양새로 물러나는 징크스를 반복했다. 성적도 문제였지만, 선수선발에서 대표팀 운영에 이르기까지 각종 구설수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결코 무능한 감독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성기에는 역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급 야구인들이었고, 대표팀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다만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돌아왔 때는 이미 프로무대에서 성적부진으로 물러나며 정점에서 내려온 한물간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리더십이나 야구관 모두 '올드 스쿨' 방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시대 흐름에 뒤처지고 있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표팀 감독은 이들에게 사실상 현장 지도자로서의 피날레 무대가 됐다. 결과적으로 대표팀이 '전설적인 레전드 감독들의 무덤'으로 전락해버린 모양새는 씁쓸함을 남긴다.
 
공교롭게도 류중일 감독도 지금까지의 행보만 놓고보면 전임자들과 비슷한 코스를 거쳐 다시 대표팀 감독직에 복귀했다. 류 감독은 전임자들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야구도 세상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라떼(나 때는 말이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성적)만 좋으면 그만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스포츠도 프로의식, 인성, 공정성 등 과정의 가치와 공감대를 더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류 감독은 과연 '베테랑 레전드 감독들의 대표팀 잔혹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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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야구대표팀 항저우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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