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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은 조선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나는 민영익 일행에게 박물관을 안내하면서 영국이 인도, 중국, 이집트로부터 문화재를 약탈해 온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어머어마한 문화재를 보면서 조선인들은 영국의 위력을 찬양하기 보다는 그 무도한 제국주의 행태를 개탄하고 미국을 상대적으로 높게 보더군요. 서광범은 "인도가 불쌍해", "미국은 이러한 약탈행위를 하지 않으니 미국 국민은 훌륭한 국민이다"라고 소감을 말하더군요.

우리는 런던에서 미국공사관, 일본 공사관, 청국 공사관을 차례로 순방하였습니다.
미국공사관의 채드윅Chadwick 해군무관은 자신의 관저에서 조선 사절단을 초청하여 환영 만찬을 열어 주었습니다.

일본 공사관 방문에서는 민영익이 모리 공사로부터 면전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했습니다. "조선은 실제로 독립국가가 아니고 청국의 속국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조선의 친청사대주의 행태를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무례한 모리의 발언을 민영익이 애써 반박했지만 민영익의 반론은 허술했습니다. 일본인의 칼은 잘 벼려져 있었고 민영익의 칼은 무디게 느껴져 안타까웠지요. 우리는 이어서 청국 공사관을 방문하여 증기택曾紀澤 공사를 만났는데 그이의 태도는 정중하고 우호적이었습니다. 한편, 민영익이 런던에서 외교관들에게 건넸던 명함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조선인 朝鮮人 閔泳翊
Min Yong Ik, a Chosunese


보디시피 한글을 먼저 적고 '조선인 민영익'을 한자와 영자로 썼군요. 맨 마지막의 'a Chosunese'이 특히 인상적이군요. 이 명함을 통해 민영익이 최소한 당시에는 강한 주체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런던 체류 중에 조선이 얼마전인 11월 26일 영국 및 독일과 동시 수교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는 청국 공사관에서 한영.한독 조약문(電文)을 입수하여 그 내용을 조선 사절단에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요.

런던에서는 어떤 의사가 숙소로 찾아와 한복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찬탄하면서 내년 런던에서 개최될 의료 관련 박람회에 한복을 출품, 전시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민영익은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1884년 2월 26일자 조지 포크 편지
▲ 조지 포크 편지 1884년 2월 26일자 조지 포크 편지
ⓒ 미의회 도서관 소장, 김선흥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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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주일간의 런던 시찰을 마친 뒤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파리로 향했습니다. 파리에서는 루브르궁을 비롯한 여러 궁전, 노트르담 대성당, 콩코드 공원, 루브르미술관, 나폴레옹묘소, 동물원, 개선문, 그랜드 오페라하우스 등 명소를 두루 둘러보았습니다.

우리는 주불 미국공사와 일본 공사를 방문했습니다. 뜻밖에도 미국공사 모튼 Morton은 조선 사절단을 위해 환영 리셉션을 베풀어주더군요. 그 자리에서 공사는 조선이 프랑스와 수교하기를 희망한다면서 그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셉션에는 파리에 주재하는 여러 나라 외교관들도 참석했습니다.

스위스 영사가 민영익에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건네더군요. 그러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더군요. 스위스제 회중 시계였어요. 스위스 영사는 시계를 민영익에게 증정하면서 조선 진출을 희망한다고 말하더군요. 전형적인 실리 외교 활동의 한 모습이었지요.

파리 시청을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한 사나이가 영접을 나왔는데 반색을 하면서 자신이 조선을 잘 알고 있다는 거였어요. 1866년 프랑스 함대의 조선 원정 시에 병사로 참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조선인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나는 보았지요.

우리는 일주일간의 파리여행을 마치고 트렌턴호가 기다리고 있는 마르세이유로 돌아간 후 이태리 나폴리 항으로 향했습니다. 트렌턴호는 나폴리 항에 닻을 내린 후 보름 동안이나 정박했고 우리는 그 기회에 이태리 여행에 나섰습니다. 로마에서 이틀간 체류하면서 고대 로마시대 유적을 탐방하였고 나폴리로 돌아와서는 나폴리 시내를 관광하고 폼페이, 헤르클라네움 등지를 둘러보았지요.

우리는 2월 19일 나폴리 항을 출항하여 엿새 후인 2월 25일 이집트의 사이드 항Port Said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로써 유럽 여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지요. 사이드 항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시작되는 출발지점이지요. 수에즈 운하에 배를 정박해 놓고 우리는 카이로 관광을 하였습니다. 피라미드를 보고 감탄했지요. 헌데 조선인들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사이드 항에서 장문의 편지를 여러 통 썼습니다. 2월 26일엔 부모님과 슈펠트 제독에게 그리고 2월 29일엔 다시 부모님께 기나긴 편지를 썼지요. 편지에 지난 석 달 동안의 여행에 대해 꼼꼼히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조선 사절단과의 체험에 대해 소상히 전했습니다.

나는 그들과 3개월 동안 같은 배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붙어 다니면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로 일본어를 사용했지만 간간이 한국어도 사용했지요. 미국에서부터 이집트까지 나는 그들과 근 반년 동안 동행하면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기 때문에 나의 한국어 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 하고 있었지요.

가장 인상적인 일은 서광범과 변수의 지식욕구였습니다. 유럽과 이집트를 순방하면서 그들은 각각의 나라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 정치, 정부 형태, 대외관계, 경제, 군사, 대외관계, 문화, 종교, 음식, 의복, 결혼 풍습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질문은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질문 사항에 대하여 나는 백과 사전을 펴들고 관련 내용을 일일이 번역해 주었습니다.

트렌던 호는 공부방이 되었지요. 나는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조선 지식인의 높은 탐구열을 보며 그 문화 수준을 엿보았고 조선의 밝은 장래를 믿게 되었지요. 그러나 민영익의 태도는 탄식을 삼키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에서 휴대하고 온 중국 고서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은 나라 밖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려고 하는 서광범과 변수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민영익이 조선의 최고 실세라는 점에서 그의 그런 태도는 내게 조선의 장래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심어주었지요. 불행하게도 내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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