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안양

FC안양 ⓒ FC안양 인스타그램 캡처


법보다 중요한게 양심이다. 규칙상 반칙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편법과 꼼수도 합리화된다면 질서가 무너지고 난장판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2022시즌을 시작한 프로축구 K리그2가 개막전부터 불미스러운 논란에 휩싸였다. FC 안양은 지난 19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의 1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8분 터진 조나탄의 득점으로 1-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양팀 선수들은 안양의 선제골 장면을 두고 뒤엉켜 격한 신경전을 펼치는 상황이 연출됐다. 전남 선수들은 안양 측의 비매너와 심판 판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언성을 높였다.
 
상황은 이랬다. 후반 7분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같은 팀 동료인 안양 연제민과 홍창범이 충돌하여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다. 공을 소유하고 있던 안양 측은 일단 부상자 치료를 위하여 전남 진영으로 공을 길게 걷어내면서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다. 다행히 홍창범은 큰 부상없이 잠시 후 일어섰다. 상황이 정리되자 주심이 경기 중단 직전 공을 소유하고 있었던 안양측의 드롭볼을 주면서 경기를 재개했다.
 
드롭볼 이후 가장 먼저 공을 터치한 안양 김경중은 그대로 공격 작업을 전개했다. 이때 전남 선수들은 안양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하고 라인을 끌어올려서 무방비로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남 선수들은 손을 들며 항의했지만 플레이는 계속 진행됐고, 안양은 전남의 수비가 정비되지않은 팀을 타 3-4번의 패스 연결과 조나탄의 문전 침투로 골망을 갈랐다. 그리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당시 안양의 플레이에 규정상 문제는 없었다. 프로축구 규칙에 따르면 선수의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된 경우, 마지막 터치가 일어난 위치에서 드롭볼로 경기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주심은 마지막 터치를 한 팀의 선수에게 그 위치에서 볼을 떨어뜨리고, 볼이 땅에 닿는 순간부터 바로 경기 진행이 재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볼의 소유권은 마지막 터치를 했던 안양 측에 있었기에 드롭볼 이후 공격을 재개한 것 자체는 정상적인 플레이다.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건 전남의 수비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축구에는 법으로 정해진 규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양 측의 행동은 축구 불문율상 페어플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경기를 중단시킨 팀에서 먼저 소유권을 가져가더라도, 다시 상대에게 공을 건네주는 것이 동업자간의 매너로 여겨진다. 당시 경기가 중단된 상황은 전남 측의 반칙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볼경합 중 안양 선수들끼리의 충돌 때문이었다.
 
실제로 드롭볼 직후의 상황을 보면 전남 선수들은 안양 측이 공을 돌려줄줄 알고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않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조나탄 등 일부 안양 선수들도 처음에는 김경중을 향하여 팔을 치켜들면서 공을 전남 쪽으로 건네주라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대로 인플레이가 계속 진행되자 머뭇거리다가 뒤늦게 공격에 가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K리그 팬들이라면 이 장면이 웬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바로 11년 전 수원에서 벌어진 '알사드 사태'의 데자뷰 때문이다. 2011년 11월 19일 수원에서 열렸던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알사드(카타르)는 후반 35분 비신사적인 행위로 골을 넣으며 논란에 휩싸였다.
 
수원이 한창 알 사드를 몰아붙이고 있던 상황에서 양 팀 선수들간 부상자가 발생했고, 공격권을 쥐고 있던 수원은 공을 터치아웃시키며 경기를 중단했다. 하지만 경기 재개 직후 알 사드는 수원에 볼 소유권을 돌려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수원은 속수무책으로 골을 허용해야했고 결국 경기는 0-2로 패했다. 감정이 상한 양팀 선수들은 몸싸움을 펼쳤고, 결국 관중난입과 선수의 관중폭행, 양팀 선수단간의 집단 난투극이라는 초대형 사고로까지 번졌다.
 
결과적으로 수원은 2차전 원정에서도 1차전 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했고, 알 사드는 그해 결승에서 전북 현대까지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심판과 AFC 측은 난투극에 가담한 선수들은 징계했지만, 알 사드의 플레이 자체는 정상적이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ACL 사상 최악의 순간'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다.
 
오늘날의 스포츠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이 주는 감동을, 운동만 잘하는 기계가 아니라 성숙한 프로의식과 인간미를 요구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규정은 원할한 경기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단지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안양의 플레이가 용납된다면, 당시 알사드의 플레이도 정당했다는 의미가 된다.
 
앞으로 축구에서 상대팀에 부상자가 발생하더라도 무시하고 경기를 진행한다거나, 일부러 경기를 중단시키고 공격권을 돌려주지 않는 비매너가 속출해도 상관없게 된다. 골을 넣고 승리할수만 있다면 동업자의식이나 페어플레이 따위는 무시하는 게 과연 진정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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