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대표팀 생활을 해왔던 곽윤기(33·고양시청)의 여정이 마무리됐다. 금메달을 품진 못했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레이스였다.

곽윤기는 지난 16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계주 5000m에 출전,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소치, 2018년 평창 모두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5000m 계주에서 메달권 진입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맏형' 곽윤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2010년 벤쿠버 대회 이후 12년 만에 당당하게 시상대에 올라섰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곽윤기, 마지막 화려하게 장식했다
 
곽윤기 미소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곽윤기가 기뻐하고 있다.

▲ 곽윤기 미소 1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곽윤기가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역시 곽윤기가 대표팀의 한 축을 맡아줬던 대회다. 직전 대회인 2006년 토리노 올림픽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호석을 중심으로 이정수, 성시백, 김성일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벤쿠버 대회가 끝나고 나서 잠시 부침을 겪기도 했다. 2014 소치 올림픽 대표팀 승선에 실패하는가 하면,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는 결승전에 진출하고도 노메달에 그쳐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곽윤기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2018년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서 대한민국이 남자 5000m 정상에 올라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고, 여전히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맞붙어도 경쟁력에서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2021-2022시즌, 1차 선발전과 2차 선발전을 거쳐 5000m 계주 멤버로 참가하게 되면서 4년 전의 아쉬움을 씻을 기회가 찾아왔다. 월드컵 1차, 2차 대회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3차 대회 은메달, 4차 대회 금메달로 올림픽 최종 리허설을 무사히 마쳤다.

개인전에 출전한 황대헌(23·강원도청), 박장혁(24·스포츠토토), 이준서(22·한국체대)와 달리 오직 한 종목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한 곽윤기는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해 후배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서 입담을 뽐내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막판 뒤집기'로 대표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한 곽윤기는 결승전에서도 혼신의 질주를 선보이며 자신의 몫을 다했다. 일찌감치 벌어진 캐나다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뒤따라온 팀들을 손쉽게 따돌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팬들의 응원 잊지 않은,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선수

레이스 이후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위해 믹스트존으로 들어선 곽윤기의 표정에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곽윤기는 "기대 만큼 못 한 것 같아 죄송하다. 중간에 위기가 있었지만 끝까지 달려준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5천만 국민과 함께 뛴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다. 같이 뛰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간이 시상식에서는 대한민국의 이름이 호명되자 가장 먼저 시상대에 뛰어올라 BTS(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선보였다. 이를 지켜본 BTS 멤버 RM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윤기님 다이너마이트 잘 봤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인증샷을 남겨 화제가 됐다.

이번 올림픽이 곽윤기에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대회를 통해 개인 유튜브 채널 '꽉잡아윤기'가 크게 성장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이기도 하지만, 평소 쇼트트랙을 많이 봐왔던 팬이라면 그의 유튜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BTS(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본 BTS 멤버 RM의 시청 인증샷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BTS(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춤을 본 BTS 멤버 RM의 시청 인증샷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 BTS RM 인스타그램 스토리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17만여 명이 구독하고 있었던 '꽉잡아윤기'는 빠르게 입소문을 타더니 가파른 속도로 구독자 수가 증가했고, 마침내 2월 17일 100만 명(오후 3시 기준 106만여 명)을 돌파했다. 이른바 '100만 유튜버'에게 주어지는 골드버튼을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켰다.

특히 대회에 참가 중임에도 틈틈이 베이징 현지에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 곽윤기는 16일 5000m 계주가 끝난 이후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실시간 방송을 시청해 곽윤기를 놀라게 만들었다.

또한 네덜란드 선수들과 함께 딱지치기, 달고나 게임을 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훈훈함을 자아냈다. 남자 계주 5000m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이었던 15일에는 자신의 채널에 마지막 경기를 앞둔 소감을 털어놓은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내일이면 정말 저의 스케이트 인생 마지막 페이지의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꿈으로 다가왔고, 꿈의 무대에서 이 가치를 높이고 싶어서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여러분과 올림픽 기간 동안 소통하고, 웃고 떠들며 즐겼던 시간들이 참 소중했습니다. 내일 저의 27년 스케이트의 마지막 라스트댄스가 '멋'나도록 열심히 달려볼게요."

수년간 '쇼트트랙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대표팀에게 많은 성원을 보냈던 국민들이 실망을 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오며 팬들의 성원을 잊지 않은 곽윤기의 '라스트 댄스'는 오랫동안 많은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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