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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우(知己之友) 

한승옥 친구! 자네가 이승을 떠난 지 그새 7년의 세월이 흘렀군. 하늘나라에서 무고하신가? 이즈음 이 지상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3년째 이제까지 경험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네. 그래도 자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작별인사로 문상도 다녔지만 이즈음은 그런 미풍양속도 사라지고 있다네.

자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몹시 안타까웠고 애석했다네. 하지만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안네 프랑크의 피란생활처럼, 집안에서만 맴도는, 매우 따분한 생활을 하고 있다네. 이즈음 따라 먼저 떠난 자네가 부럽기도 하네.

하긴 자네가 깊이 잠든 하늘나라의 형편도 모른 채, 실없는 넋두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한다지.

나는 요즘 집안에서 무료하게 맴돌면서 글이 잘 쓰이질 않아 주로 지난 추억들을 곱씹으면서 지낸다네. 간밤에는 자네와 우정을 나눴던 그날들을 되새기면서 '추억의 나래'를 한껏 펼쳤다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지. 곰곰 생각해 보니 자네는 참으로 나를 알아주는 '지기지우'(知己之友)였네.

나는 소년시절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언저리 사람들이 춥고 배고프다고 만류하는 데도 굳이 국문과로 진학했었지. 하지만 대학 졸업 20년이 지나도록 문단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던 둔재였지.

그래서 '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1988년 가을에 산문집 <비어있는 자리>를 펴냈네. 그때 자네는 그 책 서평을 써서 성당 주보에 실은 뒤 그 원본을 가지고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달려왔지.
   
강원도 횡성 풍수원 성당에서 친구와 함께( 왼쪽 한승옥 교수, 오른쪽 필자. 2014. 6.)
 강원도 횡성 풍수원 성당에서 친구와 함께( 왼쪽 한승옥 교수, 오른쪽 필자. 2014. 6.)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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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 솜씨가 아까워"
 
"박도의 <비어 있는 자리>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새벽 낚시터에서 싱그러운 아침 안개를 만날 때처럼 상쾌해 진다. … 이 질곡의 와중에서 혼을 밝히는 한줄기 서광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자네가 쓴 서평의 한 구절로, 어찌 이보다 더 잘 쓸 수가 있겠는가? 그날 신촌의 한 주점에서 자네가 나에게 말했지.

"박도, 왜 소설은 쓰지 않고?"
"소설을 쓰지 못해 에세이를 쓴 거네."
"뭐, 소설이 별갠가? 네 글 솜씨가 아까워."


그날 술잔과 함께 건넨 자네의 말은 나에게 잦아든 소설 창작에 불을 붙였지. 아울러 내 영혼을 두드렸고. 나는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첫 소설 창작집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를 썼지. 그때 자네는 책 끄트머리에 평을 달아주었지.
 
"박도의 문체는 화려하지 않다. 또한 복잡하거나 지루하지도 않다. 군더더기가 묻지 않은 경건한 자세의 실루엣을 연상케 한다. 그의 글은 우리의 메말랐던 정서를 일깨워준다."

자네와 나는 동문수학한 대학 동기로, 학훈단(ROTC) 군사훈련도 2년 동안 같이 받았고. 3학년 때는 충북 증평의 00사단으로, 4학년 때는 경기도 소사의 00사단으로 가서 고된 하기 야영훈련도 함께 받았지. 그때마다 한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했지. 게다가 교직도 같이 이수하게 돼 우리는 4년 동안 줄곧 붙어 다녔고.
  
1968년 가을, 과친구들과 용문산으로 캠핑을 가서 (왼쪽부터 박도, 민병기, 한승옥, 임봉재, 앞줄 이상길).
 1968년 가을, 과친구들과 용문산으로 캠핑을 가서 (왼쪽부터 박도, 민병기, 한승옥, 임봉재, 앞줄 이상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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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두드려 준 친구

몇 해 전 어느 날, 문득 조동탁(조지훈) 선생이 강의시간이면 <청록집>이나 <풀잎단장> <역사 앞에서> 등의 시집을 펼치고선 자작시를 낭독해 준 게 떠올랐다네.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다부원에서' 

나는 그 굵직하던 선생의 옥음이 되살아나 6.25전쟁 때 격전지 다부원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집필, 탈고하여 <전쟁과 사랑>이란 제목을 붙였다네. 나는 그 작품 집필에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네. 자네를 통해 알게 된 미리내 유무통상마을 방구들장 신부님이 고맙게도 통 크게 성원해 주셨지. 아마도 하늘에서 자네의 영혼이 방 신부님을 일깨워 주신 덕분인가 보네.

친구! 나 요즘 매우 힘들어. 우리 사회는 인문이 고사(枯死) 직전이라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네. 지난번에 한 제자의 주선으로 일본 교토에서 도쿄까지 신간선 열차를 탔는데 역 대합실이나 열차 안에서 독서광인 일본인조차도 죄다 손 전화를 쳐다보거나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더군.

이즈음 나는 새 작품을 집필하고자 노트북 자판 앞에 앉아 있지만 글이 시원시원하게 쓰이질 않아. 추임새도 관객도 없는 무대에서 혼자 창을 하는 소리꾼 같아서. 자네가 이승에 있다면 축 처진 내 어깨를 두드리며 고래고래 추임새로 흥을 불러일으켜 줄 테지.

"어이 친구! '눈물 속에 핀 꽃'이 더 아름답다네."

자네의 그 다정한 추임새가 들려오는 듯하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태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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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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