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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기자말]
몸살이 심하진 않았지만 혹시 코로나면 어쩌나 싶었다. 상사에게 전화해서 아무래도 일을 하루 빠져야겠다고 말했는데, 핵심을 찔렸다.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으악!! 결국 이 말을 들어 버렸어!!'


그분의 평소 스타일과 우리의 친분을 생각할 때 그리 잔인한 농담은 아니었다. 그래도 충격이었다. 항상 '어떻게 감춰볼까' 하던 게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음을 알게 된 충격.

그런데 요즘은 필요할 때 농담처럼 그 말을 쓴다. "제가 좀 가지가지 해서요", "사실 제가 좀 가지가지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내 상태를 잘 표현하는 유용한 말이더라. 가지가지는 발음도 귀엽다. (원래 가지 좋아한다.)

평소 뭘 그렇게 가지가지 했길래? 가만 지켜보니 몸도 부실한데, 일하면서 다른 문제도 드러난 거다. "제가 사실은…" 뒤에 붙은 말들이 좀 다양하긴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잘 못 한다, 누가 듣고 있을 때 전화 통화를 못 하니 나가서 하고 오겠다, 지켜보고 있으면 가위질을 못 한다… 내가 상사라도 싫겠다(내가 직원을 뽑았지 상전을 뽑았나).
 
ADHD와 공존질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adhd 바로알기'(adhd.or.kr)에 따르면 성인ADHD의 84%에서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이 동반된다. 그리고 61%의 경우에서 두 가지 이상, 45%에서 3가지 이상의 질환이 동반된다. 공존질환이 많을수록 직장과 가정생활, 대인관계 등에서 기능적인 어려움이 많고, 식생활과 수면, 과로 등으로 비롯되는 건강 문제도 커진다.
 
성인 ADHD에서 흔히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품행장애와 간헐성 폭발장애 등 '행동 문제', 알코올이나 약물남용 등 '중독 문제', 범불안장애와 사회공포, 공황장애 등 '불안 문제', 주요우울장애와 양극성장애 등 '기분 문제'가 있다.
▲ 공존질환 성인 ADHD에서 흔히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품행장애와 간헐성 폭발장애 등 "행동 문제", 알코올이나 약물남용 등 "중독 문제", 범불안장애와 사회공포, 공황장애 등 "불안 문제", 주요우울장애와 양극성장애 등 "기분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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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 정신적 공존질환으로는 경조증과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선택적 청각과민증(미소포니아)이 있다. 주요우울장애는 다 나았고, 지속성 우울장애(기분부전장애)와 범불안장애, 강박증세는 많이 나았다. 병 자랑이 지나쳤나? 하지만 불행해 보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병을 수집한 건 아니다. 힘든 것에 답을 찾다 보니 하나씩 이름이 붙은 거다.

ADHD가 있는 경우 스트레스 내성이 떨어지는데, 여기엔 생물학적으로 뇌의 취약성이 영향을 미친다. 호시노 요시히코 교수는 책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한 어른들>에서, ADHD를 가진 경우 전두엽, 미상핵, 대뇌변연계 등에 기능장애가 있으며 이 부분은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리사회적 요인도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 압력이 적은 환경에서 따뜻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로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계속 낮은 평가를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기 쉽다. 가족 관계나 사회 환경에서 안정감과 신뢰 관계가 결여되고, 지속적인 사기 저하와 비난을 당하는 등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타고난 공존질환의 요소가 더 잘 발현된다. 

필터 없는 사람들

요즘 불편도가 높은 건 청각과민증이다. 오래 전부터 있던 증세가 심해진 건 '총체적 소음 난국'인 한 원룸에서 3년 간 지내고부터다. 특히 오토바이 배기소음에 과민해서 증세가 심할 때는 외출을 잘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창문을 다 닫지만, 여름엔 창문을 닫고 지낼 수 없어 더 미칠 노릇이었다. 배기음만 들으면 무력감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여기에 이렇다 할 치료법은 아직 없다. 해당 소음 지역을 벗어나는 게 제일 좋고 충분한 휴식과 명상이 도움이 된다. 나는 여름에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고, 많이 자고, 매일 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소리(종, 싱잉볼, 풍경 소리)를 자주 들으며 지내고 있다. 그간 내 안에 넘치는 생각들을 억누르기 바빴는데, 그 목소리를 잘 들어주다 보면 바깥소리가 담기지 않는 현상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청각과민을 호소하는 성인ADHD 환자를 많이 봤다. 이런 '감각과민' 역시 ADHD의 한 증상이다. 모든 사태의 시발점인 우리의 도파민은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 필요한 데만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기능도 한다. 그래서 도파민이 부족하면 소리, 빛, 냄새, 촉감 등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주의가 흐트러진다. 한마디로 있어야 할 필터가 없으니 온 세상이 자극덩어리다.

이게 무슨 '내로남불'인가. 나는 소음을 잘 만드는 사람이다. 부딪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주변을 자주 놀라게 하는데, 나는 조용해야 살 수 있단다. 소음은 안 걸러지는데 필요한 말은 신경을 곤두세워도 잘 못 듣고, 인생이 지루해 자극을 추구하는데 생활 자극은 힘들다니. 도파민 핑계 그만대라고? 쩝. 정말로 역지사지의 마음은 있다고 변명해 본다.

부족한 게 뭐예요?

강박증은 ADHD로 진단된 사람의 1/3에서 동반된다. 실수를 많이 지적받다 보니 실수 방지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한 원인인데, 많은 ADHD 환자들이 불안 성향을 함께 타고난다는 가설이 더 우세하다. 불안 상태를 견딜 수 없어 불안의 크기를 줄여보려는 시도가 완벽주의와 강박이다.

나도 오래 전부터 사소한 일로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일이 많았고, 모든 걸 좀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자주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우울하고 싶어해서 우울해진다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한창 애를 먹던 시기, 나만큼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건지 궁금해서 동료들의 경우를 살피곤 했다.

그런데 한 동료는 고민의 향기를 구수하게 풍기는 내가 불편했던 것 같다. "겉보기 멀쩡하고, 직업도 있고, 못 배운 것도 아니고. 그러면 됐지 부족한 게 뭐예요?" 지금 보면 대놓고 언짢아해도 될 말인데, 이미 답이 정해진 느낌이 들어 대충 수긍하고 말았다. 

어떤 고통이든 절대적으로 고통스럽다. 뇌는 사안의 경중을 따져 트라우마를 갖지 않는다. 그러니 괴로움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크거나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일이 남에게는 인생을 통틀어 반복된 아픔일 수 있고, 남이 살아온 과정을 고스란히 알 수도 없다. 아니, 나도 인생 꾸준히 파란만장했다고.

그도 외면하고 싶던 어떤 것이 건드려져 그렇게 반응했던 걸까 싶지만, 아무튼 겸손하지 못한 태도 앞에 기죽을 필요까진 없었다.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람들
 
책 <어느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에서 한 공황장애 환자가 저자에게 보낸 메일 내용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더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자 비로소 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어요. (중략)  4개월 동안 내 삶 전체는 지난 15년간보다 더 나아졌습니다." 병의 원인은 다양하므로 한 개인이 잘못 살아온 결과로만 봐선 안 된다. 하지만 병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신호라면, 우리가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병이 주는 신호 책 <어느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에서 한 공황장애 환자가 저자에게 보낸 메일 내용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더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자 비로소 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어요. (중략) 4개월 동안 내 삶 전체는 지난 15년간보다 더 나아졌습니다." 병의 원인은 다양하므로 한 개인이 잘못 살아온 결과로만 봐선 안 된다. 하지만 병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신호라면, 우리가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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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이 비정상적인 몸은 아니다. 모든 병이 나을 수 있는 병도 아니고, 병과 함께 사는 삶도 틀린 삶이 아니다. 사회구조와 문화적인 문제들까지 여기서 다루긴 어렵지만, '완벽한 건강'이라는 강박처럼 '강인한 정신'이란 것도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건 아닐까. 마치 광고 속 햄버거와 똑같은 햄버거를 손에 받아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많은 경우에 병은 안내자가 된다. 아픈 사람들은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병은 지금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너를 해친다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나 마주하는 환경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들여다보고 살아가는 방향을 점검하게 한다. 

책 <신령님이 보고 계셔> 등을 쓴 홍칼리 작가는 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고 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고 계시네요."
"나중에 누군가에게 들려줄 고통을 겪고 계시네요." 


반복되는 고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소하지 않다. 또 그 고통이 여러 사람에게 반복될 때, 그건 사람보다 사회의 염증을 보여주는 안내자일 수 있다. 만일 상대의 말 못한 아픔을 전제하지 않고 단순히 자기 고통을 전시하기 바쁘다면 그건 무례나 다름없겠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의지에는 충분한 격려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그 정도 고통은 누구나 있으니 어른스럽게 굴라'며 입을 막는 분위기에, "안 그래도 힘든 인생 좋은 얘기만 하자"며 귀를 막는 이들에게 굴하지 말자. 나도 그게 참 어렵지만, 다들 어려우니까 같이 안 어렵게 만들어 보자. 아픈 걸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아픈 사회'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의 개인 브런치 페이지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ADHD가 있는 경우 정신적 공존질환 외에도 신체적 질병에 취약한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수면장애(각성계 조절 기능 이상)와 여러 가지 중독(각성 수준이 떨어진 뇌를 스스로 자극하려는 ‘자기투약’), 과로(업무 효율 저하와 강박증 등에 의함) 등의 동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약물치료만큼 스스로 인지행동치료법을 알고 있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혹시 병원이나 상담센터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신다면 Susan Young, Jessica Brmaham의 <청소년 및 성인을 위한 ADHD의 인지행동치료> 등 시중에 나온 책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제 ‘당 중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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