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이란 인간이 남긴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하여 과거의 역사와 문화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고고학의 진정한 목적이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이해하고 잘 '보존'하여 후대에 계승하는 데 있다.
 
2월 8일 방송된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는 경희대 사학과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강인욱이 출연하여 <깃털 도둑>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에 대하여 강연했다. 미국 아마존닷컴에서 45주 연속 분야별 랭킹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인 <깃털 도둑>은 영국의 한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어난 한 황당하면서도 씁쓸한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사라진 새의 가죽 299점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2009년 6월, 영국의 한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새의 가죽 299점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막상 체포된 범인은 불과 19세의 플루트 연주자인 에드윈 리스트였다. 한때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전도유망하던 젊은 음악가가 뜬금없는 도둑질로 스스로의 인생을 망친 것도 놀랍지만, 그것도 박물관에서 값비싼 보물이 아닌 하필 죽은 새들의 '깃털'만을 훔쳤다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황당하게 했다.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커크 윌리스 존슨은 우연히 낚시터에서 접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이 사건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다.
 
범인 에드윈에게는 본업인 플루트 외에 낚시라는 취미가 있었다. 에드윈은 플라이 낚시(반짝이는 가짜 미끼를 달아 포인트에 날려 낚는 낚시법)로 대회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큰 소질을 보였다. 플라이 낚시에 사용되는 가짜 미끼는 동물의 털이나 새의 깃털을 이용하여 살아있는 곤충처럼 꾸미는 방식으로 '플라이 타잉'이라고 불렀다. 누가 더 번쩍이는 가짜 미끼를 다는지, 누가 더 고기를 잘 낚느냐는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비교와 경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국의 플라잉 낚시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합법 혹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미끼로 사용될 깃털들이 고액에 거래되고 있었다. 플라이 낚시에 중독된 에드윈은 어느새 점점 낚시 자체보다 미끼 장식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강인욱은 이러한 플라이 타이어들의 일탈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인류 역사를 보면 깃털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을 보여준 사례가 많다는 것.

<깃털 도둑> 본문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가방이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라고 설명하며 "동물과 인간 사이에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새의 깃털일 것이다. 수컷 새는 암컷의 눈길을 끌기 위하여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어왔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그 깃털을 이용하여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해왔기 때문이다"라는 것.
 
강인욱은 "과거 서양 제국주의가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각지의 보물은 물론, 진귀하고 값어치있는 코뿔소의 뿔, 물개, 코끼리 상아 등을 얻기 위한 탐욕으로 많은 동물들이 희생, 멸종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새의 깃털은 우리가 아는 명품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왔다는 것.
 
깃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더 큰 탐욕을 불러왔다. 사치로 유명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남편 루이 16세에게 선물받은 다이아몬드 장식의 왜가리 깃털을 올림머리에 꽂았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새의 깃털이 여성들의 장식으로 동원되면서 천문학적인 숫자의 새들이 희생되기도 됐다. 당시 런던의 경매장에서만 극락조가 15만 마리가 거래되었고 깃털 거래 액수는 현재 가격으로 무려 28억 달러(약 3조원)에 육박했다고.
 
깃털에 집착하는 사람들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왜 사람들은 깃털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깃털 도둑> 본문에는 깃털을 '마약'에 비유하며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은 그 감촉과 빛깔을 잊을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잡고 싶게 만든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강인욱은 깃털의 인기비결로 '색(Color)'에 주목했다. 인기 깃털로 꼽혔던 푸른 채터러, 집까마귀, 케찰, 극락조 등은 모두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강인욱은 "고고학 유물에서 시간의 무게를 가장 견디지 못한 것이 바로 시각적인 아름다움, 즉 색채"라고 설명했다. 발굴에 있어서 색 보존이 가장 어렵다는 것. 다만 예외적으로 색이 보존된 유물의 사례가 1970년대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신라유물이었다. 특히 금동 말안장 가리개에는 장식용으로 오색영롱한 빛을 띈 비단벌레 장식이 발견되었는데. 마치 극락조처럼 화려하고 영롱한 색을 그대로 간직하여 고고학계에서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강인욱은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색감이 넘치는 현 시대의 사람들은 색 고유의 아름다움에 둔감해진 경우가 많지만, "인공의 색이 없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비단벌레의 화려함은 강렬한 충격이자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려한 색은 인간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사람을 매혹시키는 묘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강인욱은 깃털도둑 에드윈의 범죄 역시 단지 낚시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바로 아름다운 색을 독점하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규정했다. 에드윈은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메일을 받고 자연사박물관 좋은 깃털들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면서 엉뚱한 계획을 꾸미게 된 것. 에드윈은 '박물관에 왜 그리 많은 새가 필요한가. 똑같은 종의 새를 수십 마리씩 서랍속에 넣어두고 어떤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건가. 새가 몇 마리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강인욱은 "에드윈이 훔쳐간 것은, 인류의 과학을 바꾼 중요한 발견이 숨어있는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본문에 따르면 세계적인 독학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150년 전 뉴기니와 말레이제도 원시림에서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어렵게 구한 표본들이 에드윈의 가방 속에 쓸어 담겼다고 묘사된다. A.R 월리스는 찰스 다윈과 함께 그 유명한 '진화론'의 공동 논문을 발표했던 세계적인 연구자였다. 다윈에 비하여 그 명성과 비중이 가려졌지만, 강인욱은 "월리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진화론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월리스가 평생을 바친 업적이나 유물들은 한 19살 소년의 철없는 탐욕 때문에 도난-훼손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박물관 측에서는 새가죽 299마리를 도난당하고도 몇 주간이나 상황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경비원이 깨진 유리조각을 발견하고 박물관 측에 보고 했지만, 정작 큐레이터는 값어치가 비싼 표본들만 확인하고 도난품이 발견되지 않아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기고 사건을 종결시킨 것. 약 한 달 후 다른 지역의 연구원이 조류 컬렉션을 보기 위하여 방문했다가 그제서야 새들이 없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강인욱은 도난 사실을 바로 파악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에 대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유물들은 박물관마다 가지고있는 수장고라는 유물창고에 보관된다. 박물관의 진정한 목적은 전시가 아니라 수많은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수백년간 전세계를 식민지화하거나 탐험했던 영국은 유물의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정작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설마 값어치가 비싼 유물들을 제쳐두고 새 가죽을 훔쳐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계속되는 박물관 유물 도난 사건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강인욱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박물관 유물의 도난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뭉크의 <절규>같은 경우는 같은 작품이 두 번이나 도난당한 경우도 있다고. <절규>는 다행히 두 번 모두 범인이 검거되며 회수에는 성공했지만, 도난당한 이후 끝까지 찾지 못한 유물들도 적지 않다고. 강인욱은 "아름다움을 자신만이 독점하려고 들거나, 유물을 팔아서 돈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밝혔다.
 
저자는 본문에서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절도 소식을 들을수록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강인욱은 "박물관은 겉으로 평온해보이지만 수많은 유물들을 발굴·보존하려는 고고학자·박물학자들, 그것을 기를 쓰고 훔쳐가려는 탐욕스러운 도둑이 존재하는 소리없는 전쟁터"라고 규정했다.

특히 강인욱은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거치며 문화재의 훼손과 피해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강인욱은 1921년 일제시절 신라 금관이 최초 발굴되었으나 일본인들에게 강탈당했던 금관총 일화를 거론했다.
 
당시 유물을 무단으로 훔쳐간 인물은 훗날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장을 역임했던 모로가 히데오로, 겉으로는 문화재 애호가를 자처했지만 실체는 악명높은 도굴범으로서 많은 우리 나라의 귀중한 유물들이 그의 손에 강탈되는 아픈 사건이 있었다. 모로가는 1933년 신라 고분 도굴 사건으로 적발되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조선총독부와 일본 고고학계의 비호로 인하여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강인욱은 일제 시절 정상적으로 발굴된 유물이 드물고 안견의 몽유도원도, 백제금동관음상, 금동투각관모 등 수많은 소중한 유물들이 불법적으로 도굴되어 유출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했다.
 
한편 깃털 도둑 에드윈은 경찰의 수사 끝에 체포되고 범행을 자백했다. 도난 사건이 벌어진 지 무려 507일 만이었다. 그것도 에드윈이 깃털을 뽑아 인터넷에 판매하면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기에 추적이 가능했다. 299마리 중 회수한 표본은 174마리, 그나마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은 102마리에 불과했다. 깃털이 분리된 새를 다시 선별-복원하는 것도 쉽지않은 데다, 새 표본에 이름표가 없다면 과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다고.

에드윈은 체포 이후 호기심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했다. 놀랍게도 에드윈이 받은 처벌은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성 발달장애)이라는 소견서와 심신미약을 이유로 집행유예 12개월 처분에 그쳤고 감옥에서 단 하루도 지내지 않은 사실상 무죄 처분이었다. 

하지만 강인욱은 당시 재판부의 결정에 대하여 "아주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하며 "무언가 집착해서 그런 것이 용납된다면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훔쳐 먹어도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이어 "훔친 깃털이 얼마나 중요한 발견품이고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박물관 절도가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 알았다면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인간의 탐욕과 어설픈 제도가 부른 씁쓸한 결말"이라고 평했다.
 
<깃털 도둑>의 결말은 박물관 직원이 회수한 깃털들이 두서없이 가득 담긴 봉투를 받아 서랍에 넣고 캐비닛을 닫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강인욱은 허무해보이는 결말에 대하여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실화다. 그래서 고고학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말"이라고 설명하며 "박물관의 최대 임무는 전시가 아니라 보존이다. 고고학자들의 목적은 발굴한 유물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을 온전히 소유하거나 독점하려는 욕심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자신이 오늘 느겼던 감동을, 내일의 다른 이들에게도 혹은 후대까지 잘 전달하여 더 오랫동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깃털도둑 고고학 책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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