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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만난 아기를 하필 코로나 시대에 낳아서 기르고 있습니다. 아기를 정성으로 키우며 느끼는 부분들을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아이의 유아식 정체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하기야 계란말이 하나로 정체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터라 큰 실망감은 없었다. 다만 이제 대체 무엇으로 아기의 반찬을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만 깊어지고 있었다.

일단 아이가 잘 먹는 것부터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정체기 이전, 최근에 부쩍 된장찌개를 좋아하던 아이의 취향이 생각이 났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르니 벌써 냉이를 팔고 있었다. 뿌리는 무쳐서 우리 반찬으로 먹고 잎 부분을 된장찌개에 넣어서 아이에게 줘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잽싸게 장바구니에 냉이를 넣었다.

평소대로 해주면 된장찌개를 먹지 않을 터다. 하다 하다 이 방법이라도 강구하는 아빠의 간절한 마음을 아이가 알 리는 없다. 이래서 요리를 해서 아이에게 주기 전까지는 긴장의 연속이다. 조미료를 쓸 수도 없으니 어쩌면 이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꼭 필요한 조치이자 특단의 조치이다. 실행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일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철분 등이 풍부한 소고기도 샀다. 평소 좋아해 마지않던 두부도 넉넉히 샀다. 한가닥씩 잡아서 먹기 좋아하던 만가닥 버섯도 샀다. 여기에 냉이 이파리라... 결제를 하기 전 생각해보니 이 구성들은 어찌 보면 반칙일 수 있는 된장찌개의 호화로운 사기 조합이었다.
 
벌써 냉이가 나온다. 사진은 아이의 된장국에 넣어준 냉이다.
▲ 냉이 벌써 냉이가 나온다. 사진은 아이의 된장국에 넣어준 냉이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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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를 끓였다. 끓이면서 머릿속을 지배하는 문장은 단 하나다. 안 먹으면 어떡하지... 다음에는 대체 뭐 해줘야 하지다. 곁에서 된장을 끓이는 것을 넌지시 보고 있는 아내의 마음도 뭐가 다르랴.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이리라.

보글보글 끓은 된장을 한 김 식혀서 아이에게 주었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건더기 위주로 식사를 하는 아이는 맛을 보고 처음에는 낯선지 한참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의 탐색전을 하더니 이내 잘 먹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가 다행이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등지고 부엌을 나왔다. 함께 기뻐하는 틈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아내의 과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하거나 엄마가 먹을 때 같이 먹으려고 하는 상황에는 한 번씩 빵을 먹었다. 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정한 빵집의 식빵만 먹었는데 이제는 평소에 좋아하던 이 빵도 먹지를 않았다.

아이는 증조할머니 집에 갔다가 슈에 들어간 커스터드 크림 맛을 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아이의 이모할머니가 반응을 보려고 조금 줘 보았단다. 그 조금의 크림을 먹고 아이가 더 달라고 칭얼거렸다는 아내의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아내가 주문한 다른 특명은 바로 이 커스터드 크림을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특명에는 이유가 있다. 시중에 파는 커스터드 크림을 아직 어린 아이에게 사서 먹이기는 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예전에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었던 레시피가 있었다. 한 번씩 레시피를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던 레시피였다.

여기에 단맛을 최소로 넣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버터도 적게 그리고 설탕 대신 꿀과 자일리톨 설탕을 넣고 바닐라 빈을 갈라 씨를 넣어서 직접 만들어서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름의 치트키, 이 또한 된장찌개와 마찬가지로 사기의 조합이다. 이거 안 되면 큰일이다 싶은 또 다른 특단의 조치다.

계란과 버터를 준비하고, 밀가루를 체를 치는 등의 지난하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바닐라 빈까지 싹싹 긁어서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었다. 만들면서도 오랜만에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아이 하나 먹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크림을 만드는 내 모습을 아내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아내는 나의 뜻대로 만드는 과정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안도의 웃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끔은 아내의 이런 오해가 고마울 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는 아내가 고마울 때.

웍에 재료들을 담고 조심조심 저어서 크림을 만들며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제발 먹어라 제발 잘 좀 먹어주라... 주문을 외었다. 몇 번이나 주문을 외우는지가 세기 힘들어질 무렵에 크림은 완성되었다. 열탕 소독을 한 유리병에 담아 식히는 과정을 거쳐서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가 빵에 발라 먹기 시작한 커스터드 크림이다.
▲ 커스터드 크림 아이가 빵에 발라 먹기 시작한 커스터드 크림이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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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이는 맛을 보고 웃었다. 비로소 통과가 된 것이다. 빵에 발라 주니 잘 먹었다. 참 아이 하나 기르는 데 하루에도 온탕과 냉탕을 몇 번 왕복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 물에 씻어서 뜨거운 물에 열탕 소독을 했던 눈앞의 크림이 담긴 유리 용기가 우리 부부의 모습처럼 느껴진 이유다. 아이가 잘 먹으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돌밥돌밥과 유아식 정체기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우리 육아 동지들은 이 돌밥돌밥의 육아에서 아이들의 정체기 때 무엇으로 해결을 하시는지가 궁금하다. 오들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아이의 메뉴를 고민하고 계실 이 시국의 모든 부모님들께 냉이 된장국의 향긋한 향을 담은 응원과 격려를 드린다. 커스터드 크림의 깊은 풍미와 맛을 담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도 함께 드리며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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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영업자님들을 컨설팅하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아기 필립이를 '밀레니얼 라테 파파'를 지향하며 '감성적인 얼리어답터 엄마'와 하필 이 미칠 코로나 시대에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관련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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