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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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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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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코로나 시기에.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데 아내가 출산 예정일 바로 직전에 병원 예약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마음을 바꿨다. 

"여보, 나 아이한테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어서 마취제도 맞고 싶지 않고요, 당신이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자연 출산하고 싶어요."

나는 극구 반대했다. 조리원도 없고 산후 조리도 못하는 곳인 데다가, 초보인 산모와 아빠가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있는 곳이라니...

하지만 아내는 확고했다. 살아 본 경험으로 안다. 아내는 결정을 바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결국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가족보건의원에서 출산을 하고야 말았다.

그곳은 아이를 조산사와 함께 자연 분만하고, 갓 낳은 아이와 2박 3일을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일정을 더 미루지 않는다면 퇴원해야 하는 곳이었다.

초보 아빠가 되다 

2020년 10월 12일 4시 32분. 아기가 태어난 시간이다. 장장 2시간여의 진통을 견디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초조함에 수백 번을 앉았다 일어섰고 긴장을 달래려 물을 2리터 정도 마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위에 언급했듯, 아기가 태어난 때는 코로나가 한참 대유행할 때였다. 물론 갓난아기라 데리고 나갈 일도 만무했지만 아이를 어디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감히 하지 못했다. 신생아 마스크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했을까?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필수가 된 시대, 어른들에게도 너무 생소한 시대에 아기가 태어났다.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아빠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두려웠지만 만나야 했다. 손을 하루에도 수백 번 씻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했고, 정말 바라던 많은 일도 내려두었다. 꼭 가야 할 경조사 이외에 친목 모임이나 사적 모임은 사치였다.

집에 들어와서는 혹시 모르니 아이를 안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혹시 모를 이상 증상이 없는지 스스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를 비로소 안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쉬는 날에는 산모를 위해 산해 진미가 있는 식당에 함께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음식을 직접 하거나, 아내가 마음에 드는 음식을 시켜주는 것. 다행히 배달 음식은 점차 진화되며 다양해졌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택에 나는 처음으로 배달 앱을 다양하게 이용해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앱의 vip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코로나 베이비가 마주한 세상 

나는 2020년 2월 이후에 출생 한 아기들을 '코로나 베이비'로 정의한다(그리고 그렇게 부르기를 세상에 제안한다). 왜냐하면 갓 출생한 아이들은 가뜩이나 제약이 많은 데, 코로나 유행 이후 태어난 아기들은 더더욱 그 제약이 극에 달해 양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6개월 이전 아기는 정말 다양한 접종을 해야 한다. 그 마저도 아이 엄마 혼자 보낼 수 없으니 주말에 함께 외출하는 것이 전부였다. 병원만이 유일하다 싶은 외출이었고 그 병원 가는 길에 본 집 근처의 길이나 건물, 그리고 낯익은 이웃이 아기의 기억의 전부였을 거라고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메여 온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항상 아이와 같이 있는 아이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상하다. 

그렇다. 솔직히 인정하기 싫지만, 그리고 그렇게 부르기 싫지만, 우리 아기는 코로나 베이비 세대다. 밀레니엄 베이비, 베이비 붐은 들어 봤어도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정의해야 하는 순간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꿈에도 모를 이 일을 매일 꿈마다 갈구하던 아기를 낳은 후 겪게 되었다. 

아기가 원하는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두 손 모아 아직도 감사하게 여기지만, 그리고 아기를 보며 항상 행복을 느끼고 있지만 하필 이 순간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아이는 잠깐씩 외출할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아니면 유모차에 비말을 차단할 수 있는 덮개라도 씌워야 했다. 그 마저도 싫증을 내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아이를 안고 피신해야 했다.

5개월쯤 되었을까.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우는 것에 질렸는지 스스로 마스크를 벗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6개월 차에는 벗어서 던지는 법을 배웠다. 아이를 안고 나가면 마스크를 씌우고 벗기는 수십 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이가 웃는 것을 보고 출근했으니, 우리 아기는 다행히도 건강한가 보다. 그럼에도 우리 아기는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코로나 베이비 세대다. 바라는 건,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갈 때까지 아기와 우리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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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영업자님들을 컨설팅하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아기 필립이를 '밀레니얼 라테 파파'를 지향하며 '감성적인 얼리어답터 엄마'와 하필 이 미칠 코로나 시대에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관련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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