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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온 후 네 번째 설날이 다가온다. 사실 이곳에서 살다 보면 한국의 명절처럼 휴일이 아닌지라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국 같으면 일단 며칠 전부터 장 보고 음식 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여기서는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명절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지경이다. 그리고 특히 다른 명절들과 달리, 크리스마스 및 신년 연휴로 인해 이미 잘 먹고 지낸 직후라 뭔가 맛있는 음식을 또 해 먹어야 할 의무감이 들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인 남편은 혹여라도 내가 설 명절을 챙기지 않으면 향수병에 빠져들까봐 걱정이 되는지 두 주일 전부터 계속,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그러다보니 매년 빠지지 않고 설날 디너(밥상)를 차린다. 한국에서의 명절 음식은 거나한 아침상이지만 여기서는 휴일이 아니니 일단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남편 조상들의 차례상을 차릴 필요가 없으니 더더욱 아침상이 의미가 없다.

외국에 살면서 명절 보내기
 
구절판: 석이버섯을 구할 수 없어서 목이버섯으로 대신하였고, 밀가루를 먹을 수 없는 남편을 위해서 다른 가루들을 섞어서 만들었다.
 구절판: 석이버섯을 구할 수 없어서 목이버섯으로 대신하였고, 밀가루를 먹을 수 없는 남편을 위해서 다른 가루들을 섞어서 만들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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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중요한 일이라면 설 전날 저녁에 한국에 있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것이다. 한국과 시차가 있으니, 내 설날 아침이 되면 이미 한국은 설날이 지나고 다들 자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떡국도 한국 시간에 맞춰서 끓여 먹는다.

그리고 나서 설날 당일엔 남편이 출근한 사이에 명절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한다. 둘이 먹는 명절이니 되도록 간단하게 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명절 음식이니 결국 가짓수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남편이 평소에 좋아하는 갈비와 녹두전, 고기 완자 정도를 하는데, 우리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구절판이다.

옛날 친정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어머니가 어느 날 만들기 시작하신 메뉴이니 우리 집 원래 전통 메뉴는 아니지만, 그 맛에 온 식구가 반해서 정말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재료를 각각 따로 볶아야 하니 손이 안 가는 음식은 아니지만, 잡채 정도로 손이 가되 좀 더 근사하게 차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른 음식들은 다 내가 미리 준비하고, 이 구절판은 남편과 함께 준비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손이 빨라서 채 썰기도 나와 함께 하고, 재료 볶기는 자신이 맡아서 한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을 하냐면서도 특별한 음식인 줄 알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한다. 나는 가운데에 들어갈 밀전병을 부친다.

서로의 구명 그물이 되어 주면 좋겠다
 
작년에 간단하게 차렸던 설날 저녁상. 깜빡잊고 녹두전을 상에 안 올리는 실수 발생. 떡국은 전날 저녁에 한국 설날 시간에 맞춰서 끓여 먹었기에 이 상에는 없다.
 작년에 간단하게 차렸던 설날 저녁상. 깜빡잊고 녹두전을 상에 안 올리는 실수 발생. 떡국은 전날 저녁에 한국 설날 시간에 맞춰서 끓여 먹었기에 이 상에는 없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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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거 하나만 해도 우리 두 식구 한 끼로 충분하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여기에 이것저것 얹으면 며칠분 음식이 준비되는 셈이다. 작년엔 딸이라도 와 있었지만 이번엔 우리 둘이 오롯이 먹어야 하니 올해도 이걸 다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올해는 친한 후배 부부에게 연락해서 같이 먹자고 했다. 요새 침술 공부를 하는 그녀는 그날 실습이 있어서 늦게 끝나니 미리 와서 돕지도 못하겠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날이니 이렇게 들러서 먹고 가면 더 좋겠다고, 오라고 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설날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어요!"

타향살이는 구명 그물 없이 외줄 타기 하는 것과 같다고 밀란 쿤데라가 그랬다.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구명 그물이 되어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명절은 어쨌든 더 나이 든 사람이 챙기는 게 쉽지 않겠나.

이제 이 메뉴에 추가해서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 구절판 만들기 >
 
초간장 하나만 있으면 다른 곁들이가 필요 없는 구절판
 초간장 하나만 있으면 다른 곁들이가 필요 없는 구절판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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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양파, 오이, 당근, 표고버섯, 석이버섯, 소고기(사태 또는 양지)
밀가루+물(1:1), 소금, 초간장

1. 석이버섯 : 뜨거운 물에 불려 소금으로 문질러 이끼 없게 손질한 후 돌돌 말아 채 썬다.
2. 표고버섯 : 역시 물에 불려, 얇게 채 썬다.
3. 소고기 : 잡채 하듯 가늘게 채 썰어 파 마늘 갖은양념해둔다.
4. 오이 : 어슷썰기 후 채 썰어, 소금에 조금 절여 물기 없이 짠다.
5. 당근 : 어슷썰기 후 채 썬다. 
6. 양파 : 반으로 자른 후, 길이 방향으로 최대한 가늘게 채 썬다.
7. 달걀 : 4~5개 정도 준비하여 황백 갈라 각각 소금 조금씩 넣어준다.
8. 모든 재료를 따로따로 볶는다. 순서도 반드시 지킨다. 야채를 과하게 볶지 말고,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만 볶는다. 색이 변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9. 먼저, 달걀을 소금 조금씩 넣어 각각 지단을 부쳐, 꺼내 채 썬다. 그다음에 양파를 소금 살짝 뿌려 볶는다. 오이는 꼭 짜서 볶고, 당근도 소금 살짝 뿌려 볶고, 다음에 소고기를 볶는다. 남은 국물에 표고버섯, 석이버섯 순으로 볶는다.
10. 볶는 재료가 다 준비되었으면, 한 김 식힌 후 마르지 않게 덮어두고 전병을 준비한다. 모두 당일 준비가 좋겠지만, 정 여의치 않으면, 볶음은 미리 해서 냉장고나 선선한 곳에 두고, 밀전병은 꼭 당일 부친다.
11. 밀가루와 물을 잘 섞어서 소금 한 꼬집 넣고, 체에 한번 내리면 곱게 된다.
12. 프라이팬을 중간 불 정도로 해서, 기름 약간 두르고 수저로 한수저씩 떠 넣어 동그랗고 얇게 부친다. 기름이 없으면 고소한 맛이 떨어지고, 너무 많으면 예쁘게 안됨에 유의할 것.
13. 이렇게 다 준비가 되었으면 구절판용 판이나, 커다란 접시에 색을 잘 대비하여 볶은 재료들을 삥 둘러 담고, 가운데에 밀전병을 놓는다.
14. 간장에 식초 조금, 후추 조금 뿌려, 찻수저를 얹어 함께 서빙한다.
15. 앞접시에 밀전병 먼저 놓고, 각종 재료를 조금씩 얹은 후, 간장 살짝 뿌려서 한 입에 쏙!

덧붙이는 글 | 같은 내용이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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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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