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텔레비전 보나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과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50%를 훌쩍 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없었던 시절, 우리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서 손 모으고 기다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기억나시나요? 과거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던 프로그램과의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자말]
흔히 '미드'(미국 드라마)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무렵으로 기억된다. <엑스파일>, < ER > , <프렌즈> 같은 시리즈물이 열혈 마니아와 팬덤층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문화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OTT (Over The Top) 플랫폼을 통해 많은 이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책임지고 있다. 요즘엔 TV뿐만 아니라 PC와 모바일 기기 다시보기, 다운로드 등을 거쳐 손쉽게 해외 유수의 TV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1980~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상파 TV가 아니고선 도저히 접할 경로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대엔 KBS와 MBC 단 2개뿐인 방송국을 통해서만 극소수의 미드를 시청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재방송의 기회도 일부 프로그램에 한해 부여되다 보니 본방사수에 실패한다면 영영 해당 방영분은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1990년대 마냥 예약 녹화가 가능한 비디오 플레이어(VHS)가 아직 각 가정에 널리 보급된 것도 아니어서 봐야 할 프로그램 시간이 겹치기라도 하면 각 가정에선 채널 사수를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 건 다반사였다.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 장식한 미드 '맥가이버'
 
 미국 CBS의 인기 시리즈 '맥가이버'. 현재 아마존 프라임 등 해외 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미국 CBS의 인기 시리즈 '맥가이버'. 현재 아마존 프라임 등 해외 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 CBS

 
예나 지금이나 해외 TV 드라마 시리즈는 10~20편 내외의 시즌제 방영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국내에선 수개월씩 방영되고 종영되는 연속극 형태가 국내 드라마의 중심을 이루다 보니 해외 시리즈물의 시즌제 개념을 인식하고 있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다.

방송사에서도 그때그때 수입해서 방영하기에 급급했었고 시즌1,2 식의 이름을 붙이기보단 하나의 드라마 시즌이 종료되면 다른 미드를 해당 시간대 편성하고 또 교체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1980년대 한국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미드를 손꼽자면 리처드 딘 앤더슨 주연의 <맥가이버>(MBC 방영)를 먼저 언급할 수 있겠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경쾌한 신시사이저 선율의 테마 연주곡 악보는 웬만한 인기 가요 못잖게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기상천외한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적을 물리치는 특수요원의 맹활약을 그리면서 <맥가이버>는 그 시절 청소년들에겐 즐거운 추억거리를 남겨줬다. 한편 <맥가이버>는 훗날 리부팅 제작되어 지난해 2021년 시즌5까지 미국 안방 극장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최첨단 헬기·자동차의 등장....'에어울프', '전격Z작전'
 
 '출동! 에어울프', '전격Z작전' DVD 표지

'출동! 에어울프', '전격Z작전' DVD 표지 ⓒ Universal Pictures

 
1980년대 기준에선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기기들이 총망라된 미드 역시 국내 시청자들에겐 필수 시청 대상이었다. 잔 마이클 빈센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좋은 합을 이룬 '출동! 에어울프'(MBC)는 전투기와도 맞대결이 가능한 고성능 헬리콥터 '에어울프'를 앞세워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및 범죄집단을 소탕하는 호쾌한 액션 드라마였다.

이와 반대로 '전격 Z 작전'(KBS)에선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포츠카 '키트'를 내세워 차별화를 도모했다. 법질서재단이라는 가상의 사설 기관의 도움을 받아 살해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전직 형사 출신 마이클 나이트가 키트와 함께 매회 다양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통쾌한 이야기로 인기를 얻었다(특히 말하는 자동차 키트는 어린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인공 마이클 역을 맡았던 데이빗 핫셀호프는 이후 제작까지 맡은 < SOS 해양구조대 >로 대박을 내면서 미국 TV시장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코믹, 로맨스 등 가벼운 추리 수사물의 등장
 
 브루스 윌리스의 출세작 '블루문 특급', 안젤라 랜스베리 주연 '제시카의 추리극장' DVD 표지

브루스 윌리스의 출세작 '블루문 특급', 안젤라 랜스베리 주연 '제시카의 추리극장' DVD 표지 ⓒ Sony, Universal Pictures

 
지금도 미국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범죄, 추리 수사물이다. 1970~80년대에 걸쳐 국내 방영된 추리 수사극 <형사 콜롬보>(TBC, KBS 방영)는 고 최응찬, 배한성 성우의 독특한 어투의 더빙이 가미되어 예전 개그맨들의 성대모사 1순위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에선 정통 수사물보단 코미디 혹은 로맨스가 가미된 미드들이 유독 애청된 바 있다.

로버트 와그너-스테파니 파워스 주연의 <부부탐정>(KBS), 훗날 007 제임스 본드로 유명세를 얻은 피어스 브로스난의 출세작 <레밍턴 스틸>(주:미국에선 1982~87년 방영되었지만 한국에선 한참 늦은 1991~93년 MBC 방영) 극과 극 성격의 두 남녀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꾸며진 <블루문 특급>(KBS) 처럼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들이 그 시절 안방극장을 장식했다.

할머니 소설가 제시카(안젤라 랜스베리 분)가 매주 탐정처럼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하던 <제시카의 추리극장>(MBC) 역시 단편 모음집 같은 구성으로 당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점-TV 장악했던 작가 시드니 셸던 작품
 
 시드니 셸던 원작 TV 시리즈 '천사의 분노', '신들의 풍차' DVD 표지

시드니 셸던 원작 TV 시리즈 '천사의 분노', '신들의 풍차' DVD 표지 ⓒ Universal Pictures

 
1980년대 국내 TV 미드 분야에서 작가 시드니 셸던 원작 시리즈물은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쓴 <깊은 밤 깊은 곳에>, <신들의 풍차>, <천사의 분노>, <게임의 여왕>, <내일이 오면> 등 로맨스와 스릴러가 결합된 소설은 1980~90년대 초반 국내 서점가의 단골 베스트셀러였다. 

특히 국제 저작권 협약(1987년) 가입 이전엔 1개 작품을 3-4개 이상 출판사에서 중복(무단) 발행하는 게 기본일 정도로 로맨스·스릴러가 결합된 흡입력 강한 그의 작품은 자연히 TV 시청자들 또한 사로 잡기에 충분했었다.

여타의 미드가 시즌제 방영이 기본인데 반해 평일 늦은 밤 11시 전후를 책임졌던 시드니 셸던의 작품들은 3~5부작 안팎의 미니시리즈 또는 1회짜리 TV 영화라는 비교적 짧은 호흡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다.

SF 시리즈의 모범작 '브이'
 
 미니시리즈 '브이'

미니시리즈 '브이' ⓒ Warner Brothers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소재로 제작된 <브이> 역시 1980년대 빼놓을 수 없는 미드 중 하나다. 미국에선 1983년 2부작 <브이>, 1984년 3부작 <브이 : 최후의 전쟁>을 차례로 방영했는데 한국에선 이를 하나로 모아 1985년 5부작으로 KBS에서 소개한 바 있다. 살아있는 동물을 산채로 잡아먹는 외계인들의 충격적인 모습은 당시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무더위 속 한여름 밤을 오싹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총 두차례의 미니시리즈가 성공하면서 19부작 시리즈가 추가 제작되었지만 열악한 구성과 출연진 교체 등이 이어지면서 전작만큼의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009년 총 2시즌에 걸쳐 리부팅되어 역시 한국(채널CGV)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미드 1980년대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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