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의 한 작은 마을. 초등학생인 보리(김아송)는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한 이곳에서 아빠(곽진석), 엄마(허지나), 그리고 동생 정우(이린하)와 함께 살아간다. 보리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다.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는 일처럼 듣고 말하기가 요구되는 사안은 죄다 보리의 몫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가족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보리는 이렇듯 일상 속에서 수어를 터득하고 있었다. 

보리네 가족은 아이가 딸린 여느 가정처럼 복닥거리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남 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보리는 언젠가부터 가족 사이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왠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 함께하지 못 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느낌이다.
 
 영화 <나는 보리>

영화 <나는 보리> ⓒ 영화사 진진

 
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장애인인 보리. 그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가족끼리는 수어를 통해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는 데 비해 보리는 수어를 배우지도 않았고 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그러는 걸까?

영화 <나는 보리>는 청각장애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비장애인인 한 소녀의 성장담을 그렸다.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던 보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애인의 입장에 서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해간다는 이야기다.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 수상 이력이 있는 작품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그리고 한국농아인협회가 주최하는 제20회 가치봄영화제에서는 대상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개최된 제24회 슈링겔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상과 켐니츠상을 거머쥐며 2관왕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영화 <나는 보리>

영화 <나는 보리> ⓒ 영화사 진진

 
가족으로부터 왠지 모르게 거리감을 느껴온 보리에게는 유일한 소원 하나가 있었다. 자신의 가족처럼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기를 바랐다. 보리는 매일 학교를 오가며 소원을 빌었다. 가족과는 기능적으로 다르게 태어난 보리.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은 결국 이 다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 가족과 같은 처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보리가 청각장애인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축구 실력이 워낙 출중하여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도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던 동생 정우는 현실에서는 감독의 지시를 듣지 못하는 까닭에 주전에서 배제되고,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어 연습장 한쪽 구석에서 늘 홀로 연습해야 하는 처지였다. 학교 생활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없어 혼자서 딴짓하는 데 열중했으며, 또래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

아빠가 낚시를 취미로 갖게 된 배경도 정우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처럼 소리를 잃기 바랐던 보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이처럼 냉혹했다. 
 
 영화 <나는 보리>

영화 <나는 보리> ⓒ 영화사 진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함부로 취급하는 극중 일부 비장애인들의 행태는 몹시 씁쓸하게 다가온다. 보리가 엄마와 함께 새 옷을 구입하기 위해 들른 옷가게에서는 주인과 점원이 두 모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쟤들 벙어리라 듣지 못 해" 라는 막말을 내뱉고선 구입하려던 옷에 웃돈까지 덧붙여 요구한다.

보리의 고모(김자영)는 정우의 귀 수술을 위해 청각장애인인 부모 대신 의사와 상담 뒤 정우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진료 사실을 빼놓고 수술 진행 절차에 대해서만 설명하며 부모를 설득하려든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인식의 일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된 강원도 강릉과 주문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손을 뻗으면 바닷물이 손을 파랗게 물들일 것처럼 바닷가가 지척에 놓여 있으며, 밤이면 별빛이 쏟아질 듯 하늘은 깊고 투명하다. 이곳에서 다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심하며 애쓰는 보리의 고운 마음 씀씀이와 서로를 보듬는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은 관객의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영화 <나는 보리>는 다름의 차이를 안고 살아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고민케 한다.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보리라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간접경험과 다름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소하려는 가족의 끈끈한 유대를 통해 해법을 제시한다. 일상 속 다름에 대한 차별을 원치 않는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리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고 구별 지어지는 세상을 경험한 뒤 한층 성숙해진다. 생각의 깊이도 더욱 깊어진다. 부모에게 던지는 무수한 질문들 속에서 보리가 꿈꾸는 세상의 일단을 엿보게 된다. 보리가 그만큼 더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어느 누구보다 배려심 많고 사려 깊은 보리. 앞으로도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보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 
 
 영화 <나는 보리>

영화 <나는 보리> ⓒ 영화사 진진

나는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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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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