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어느 날>(감독 이명우)이 실험적이고 몰입감 넘치는 장르적 완성도과 아쉬운 결말이라는 엇갈린 평가속에 종영했다. <어느 날>은 주인공 김현수(김수현)가 억울한 살인 용의자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되고 재판을 받으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법정 스릴러다. 영국 BBC에서 2008년 제작한 드라마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원작으로 하여 한국적 설정에 맞게 각색했다.
 
평범한 대학생인 김현수는 어느 날 아버지의 택시를 끌고 나갔다가 우연히 홍국화(황세온)라는 여성을 태우게 되고, 그녀와 충동적인 이끌림에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그녀는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충격을 받고 도주하려던 김현수는 경찰에 붙들리게 되고 홍국화의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 이 사건은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큰 화제가 되었고, 모든 증거와 정황은 김현수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어서 궁지에 몰린다.
 
검사 안태희(김신록)-강력계 형사 박상범(김홍파)로 대표되는 경찰과 검찰은 일찌감치 김현수를 범인으로 낙인찍고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압박한다. 위기에 몰린 김현수는 주로 잡범들을 변호해서 먹고사는 삼류 변호사 신중한(차승원), 북부교도소 내의 실세로 꼽히는 범죄자 도지태(김성규)의 도움을 받아 생존을 위한 철저한 싸움을 시작한다.
 
드라마는 일반적인 범죄장르물처럼 '누가 범인인가'를 추격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범죄에 휩쓸려 누명을 쓰게된 평범한 사람이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의 보호 밖에서 어떻게 변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고발극에 가깝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하고 성실한 20대 청년이었던 김현수는 범죄와 폭력이 만연한 교도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법정을 오가며 냉혹한 세상을 체감하고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순진한 모습으로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리던 김현수는, 점점 냉소적이 되어가면서 몸에 문신을 새기고 마약을 하며 폭력도 불사하는 인물로 바뀐다. 김현수가 변해가는 모습은 교도소에서 사실상 김현수의 보호자이자 멘토가 되는 도지태를 닮았다.
 
여기서 <어느 날>은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과 여론 재판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신중한의 대사에서 보듯 "법정은 진실보다는 얼마나 그럴듯한 스토리를 누가 내놓느냐의 싸움"이라는 이야기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함축한 표현이다. 김현수가 대면하는 한국의 사법 제도과 관계자들은 정말로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닌지 '진실'에는 정작 관심이 없다. 검사-변호사-경찰-언론 등은 모두 정의가 아닌 자신의 실적이나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서 김현수와 그의 사건을 이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강대한 공권력이 한 개인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확증편향'에 빠졌을 때 법으로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개인의 인권은 무용지물이 된다. 강간살해범이라는 딱지가 붙은 김현수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일상까지 언론에 공개되며 철저하게 삶이 파괴되고 짓밟힌다.
 
그나마 김현수를 진심으로 돕는 인물이 신중한이나 도지태같은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나 음지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신중한이 김현수에게 제도권 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최후의 선'을 암시하는 존재라면, 도지태는 살아남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일깨워주는 인간의 '흑화'를 상징한다.
 
김현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평결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지만, 재판부에게는 결국 유죄를 받고 살인자가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다행히 신중한이 포기하지 않는 추적으로 진범이 잡히게 되고 김현수는 풀려난다. 하지만 김현수를 진범으로 몰아갔던 안태희 검사는 이마저도 검찰이 만들어낸 업적으로 둔갑시킨다. 경찰-재판부-언론까지 누구 하나 김현수와 그 가족들에게 책임지거나 사죄하는 이들은 없다.

엔딩에서 거대한 빌딩 옥상에 올라 냉소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야경을 응시하는 김현수의 고독한 모습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극중 김현수는 다행히 뒤늦게나마 누명을 벗기라도 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하루아침에 누구나 죄를 뒤집어쓰고 인생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어느 날>은 분명히 국내 범죄물에서 보기힘든 색다른 장르적 실험과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중반부까지 몰입감있는 전개가 돋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상황을 한국적인 상황과 정서에 맞는 리얼리티로 구현하지 못한 점은 옥에 티다. 
 
드라마는 법정과 교도소라는 두 개의 공간을 축으로 전개된다. 드라마를 본 많은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부분은 법정 부분에 비하여 교도소 파트의 현실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범죄자들이 교도소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며 무소불위의 행동을 저지르는 모습, 평범한 김현수가 도지태의 수하로 들어간 이후 단기간에 조폭 박두식(양경원)까지 무력으로 제압할 정도로 빠르게 흑화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떨어지다는 지적이다. 
 
도지태가 몇 번이나 위기에서 김현수를 보호하고 그것이 결국 본인의 최후로까지 이어지는 과정도 납득할만한 서사가 부족하다. 도지태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김현수의 석방으로 마무리되는 허무한 결말은 이럴거면 교도소 이야기를 왜 법정 파트보다 장황하게 늘어놓았는지 의문이 들게한다.
 
신중한이 주도하는 법정 이야기 역시 뒤로 갈수록 설득력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정의롭다기보다는 실리적이면서 풍자적 인물로 보였던 신중한은 갈수록 변호사의 영역을 넘어 '사설 탐정'을 연상시키는 히어로로 바뀐다. 신중한이 굳이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김현수의 변론에 집착하는 것은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반면, 사건을 파헤치기에만 바쁜 모습은 캐릭터의 일관성에 위화감을 준다. 심지어 공동 변론을 맡았던 범한로펌의 서수진(이설)은 극 후반부들어 갑자기 존재감이 실종된다.
 
7회까지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며 긴박감과 반전을 거듭하던 전개는 마지막 회들어 마치 드라마 '하이라이트 요약편'을 보는 듯 뜬금포에 가까운 진범의 등장과 김현수의 석방-후일담으로 이어지는 결말로 초광속급 진행이 이루어진다.

김현수와 신중한을 비롯하여 주요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나 속사정은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사실 원작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무언가 이야기가 더 남있을 것 같은데 성의없이 마무리지은 용두사미식 결말이라는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은 쿠팡플레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드라마 시리즈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리얼리티와 서사에서의 뒷심 부족이라는 숙제도 동시에 남겼다. 그리고 이야기는 1화의 김현수처럼 구치소에 수감된 젊은 여성(김유정)이 신중한으로부터 "변호사 구했냐"는 질문을 받는 것으로 또다른 시즌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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