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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윤의 근본 없는 이장 일기'는 귀농 3년차이자 함평군 대각리 오두마을의 최연소 이장으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27살 한대윤 시민기자의 특별한 귀농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1년에 100만 원씩만 해도, 30년이면 3000만 원이겠소."

내가 이장이 되기 전인 지난해, 아재들 술자리에서 날선 농담이 들렸다. 지난 당산제에서 100만 원 좀 더 되는 돈이 마을 발전기금으로 들어갔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오두마을은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2월 15일)이면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진행한다. 마을 주민들은 당산나무 앞에 모여 마을 발전기금을 내는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다음으로 이장을 맡은 나는 올 2월 첫 당산제를 앞두고 다짐을 했다. 현 이장으로서 '마을 전통행사인 당산제를 끝내주게 잘 준비해 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당산제가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당산제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던 나는 한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구글링(Googling)을 해 당산제의 의미를 알아봤지만 준비과정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곧바로 마을 어르신 이씨 할아버지 찾았다.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

이씨 할아버지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에서 살아오신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셨다. 심지어 이장직을 역임해본 경력도 있으셔서 마을 박사님이나 다름 없으셨다. 할아버지의 구술(口述)을 통해 마을당산제는 어떻게 진행했었는지, 상차림은 어떻게 하는지, 제의 순서부터 음식의 종류까지 상세히 여쭤봤다.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니 나의 기대도 한껏 올랐다. 그러나 당산제를 일주일 정도 앞뒀을 때부터 불안감이 기대감을 앞질렀다. 그 이유는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라는 말 때문이었다.

오두마을 당산제에선 당산나무에 동아줄을 둘러매고 다 같이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다. 나는 새끼줄 꼬는 법을 몰라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라고 답하시는 거였다. 지푸라기가 구할 집이 어디 있을지 여쭤 봐도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라고만 말하시니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산제 전날까지도 몇몇 물품들이나 '모두 다같이 새끼 잘 꼬게 만드는 방법' 같은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 기대만큼 준비하지 못해 불안해진 나를 스스로를 다독였다. 당산제 아침까지도 "완벽히 준비 못 했지만 괜찮아. 맨바닥에서 하던 때랑 비교하면 많이 준비했어" 하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런데 불안하던 마음과 달리 당산제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오두마을 이장이 당산제에서 축문을 읽고 있다.
▲ 오두마을 당산제 축문(祝文) 낭송 오두마을 이장이 당산제에서 축문을 읽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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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마을 주민들이 당산제에 참여하고 있다.
▲ 오두마을 당산제  오두마을 주민들이 당산제에 참여하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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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마을 분들이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 정신으로 적극 동참해 주셨기 때문이다. 축산업을 하시는 주민 분은 돼지머리와 편육을 준비해주셨고 집에 과일이 있으신 분은 과일을, 편의점 하시는 분은 그릇을, 걱정하던 지푸라기도 쌀농사 하는 집에서 가져와 주셨다. 삼삼오오 모여 당산제를 준비하니 풍성한 자리가 되었다.

모든 식순을 큐시트에 적어놓고 준비물, 역할 분담만 생각했던 나였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물품 준비부터 주변 청소에 상차림과 본 행사 진행 후 뒷마무리까지, 누가 말할 것 없이 차근차근 물 흐르듯 이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5분 정도 모이실 거라 예상하고 경품을 20개 정도 준비했는데, 그게 모자랐던 거였다.

경품을 한 분도 빠짐 없이 나눠드리려고 넉넉히 준비했는데 20분이 훌쩍 넘게 오셔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행사에 이만한 인원이 한 번에 모이는 건 나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아짐들께서 척척 해결해 주셨다.

경품 중엔 샴푸, 로션 등의 묶음이 있어 아짐들께서 즉석에서 꾸러미를 제작해 주셨다. 제사에 쓰인 시루떡과 샴푸 한 줌, 로션 한 줌을 봉투에 담아 모두가 하나씩 꾸러미를 가져가도록 만들어 주셨다.

당산제 준비를 위해 발품 팔던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기금도 예년에 2배에 달하는 돈이 모였다. 마을 돈 한 푼 없고 빚만 안고 시작했던 터라 연초에 모아주신 기금 덕분에 손가락만 빠는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을에 최소한의 자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사업들도 당산제 이후엔 맘 편히 신청 할 수 있었다. 당산제가 내 머릿속 구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지금 결과가 생각보다 더 잘 됐다고 느꼈다.

이장이 잘하면 된다? 내가 착각했던 것 

 
오두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맞이하여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감고 있다.
▲ 오두마을 당산제 새끼줄 감기 오두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맞이하여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감고 있다.
ⓒ 한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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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해 봤지만 당산제의 경험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그간 '잘되는 행사'를 "얼마나 행사가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는가"와 "참여자들이 얼마나 만족했는가", 이 두 가지 요소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기준은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자와 참여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기준이다.

당산제에선 준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았다. 마을 주민분들은 누가 행사를 주관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마치 옆집에 다 같이 김장하러 가듯 함께 행사를 만들어나갔다. 당산제가 개인의 역량에 기대는 행사가 아니라,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행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이장 임기 약 절반을 마치고 진행했던 당산제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당산제를 마치고 난 뒤 마을과 농촌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나는 농촌사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도시에 비해 인프라도 부족하고, 젊은 인구도 부족하고, 도농 간 정보격차도 심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농촌에서 나는 청년으로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그 부족함을 채우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겐 '마을 사람들과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두마을만 보더라도 다툼이 잦은 마을이지만 품앗이 같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오두마을의 공동체는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발휘할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장으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정해놓고 마을 주민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은 부족한 생각이었다. 그보다 이장물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다. 마을을 위해 먼저 한 발짝을 움직이고 나고, 그 후엔 마을 주민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된다. 이게 바로 "그때 가면 다 하게 돼 있어" 정신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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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 오두마을에서 시골살이를 시작한 마을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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