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스페셜 2021 단막극 <보통의 재화>가 고독한 현대인들의 상처와 극복, 치유를 다루며 잔잔한 공감대를 안겼다. 17일 방송된 <보통의 재화>에서는 주인공 김재화(곽선영)의 좌충우돌 인생 우기 탈출기가 그려졌다.
 
쇼핑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소심한 성격의 김재화는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공을 밟고 미끄러지고, 산책 도중 난데없이 껌을 밟거나 남의 개로부터 소변을 맞는 봉변을 당하는가 하면, 라면을 끓이다가 봉지에 스프가 들어있지 않는 등 하는 일마다 좀처럼 풀리지않는 '불운의 아이콘'이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 출근하다가 정신을 잃은 재화는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는다.
 
재화는 자신을 진찰하는 정신과 의사 최병모(최대훈) 앞에서 못다한 고민을 드러냈다. "너무 화가 난다. 차라리 다른 병이라면 모를까, 공황장애라는 병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저는 평생을 성실하게 참고 배려하면서 살았는데"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약을 권유하는 병모에게 재화는 "약은 먹기 싫다. 선생님은 내가 약을 먹어야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하시냐"며 걱정한다.
 
상담을 하면서 재화와 병모의 각자 직장에서의 일상이 교차된다. 재화는 전화상담원으로서, 병모는 정신질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의사로 각자 반복되는 업무에 지치고 무뎌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기계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딴 짓을 하던 병모는 "자기 일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는 재화의 역질문에 문득 정신을 차리며 재화를 돌아본다.

재화는 쓰레기를 버리다가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부녀회장의 딸인 여중생 안희정(김나연)과 만나게 된다. 희정은 음식물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재화를 타박하며 첫 인연을 맺는다. 며칠뒤 재화는 귀가하다가 불량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희정을 발견하고 도우려다가 '재수없다'는 조롱에 폭발하여 분노한 끝에 쓰러진다.
 
재화는 병모와 상담을 계속 진행하면서 "사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니까 심장이 뛰고 머리가 새햐애지면서도 기분이 좋더라"는 짜릿했던 속내를 고백한다.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법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재화는 처음으로 배달원에게 불편했던 내용을 컴플레인하고 이제껏 느끼지 못한 만족감을 깨닫는다.
 
병모는 재화에게 계속 약 처방을 권유하지만, 끝내 먹지 못한다. 재화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법을 찾았다며 첫 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재화의 첫 사랑 하정우(오동민)는 대학교 때 재화의 절친과 바람이 났고, 우연히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근황을 다시 알게 되었다는 것. 재화는 "내게 상처준 사람들에게 딱 그만큼만 돌려주고 싶다"고 고백한다.
 
재화는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다시 만난 희정에게도 지난 번에 당한 그대로 똑같이 갚아준다. 재화는 희정을 설득하여 거래를 맺고, 오랜만에 정우를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를 두 사람 사이에서 난 딸인 것처럼 속여서 골탕을 먹이는 것으로 소소한 복수를 즐긴다.
 
하지만 병모는 그동안 재화가 원하는대로 다했음에도 증상이 달라진 게 없다며 다른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다. 병모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내자 재화는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재화는 엄마의 행복을 방해할까봐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희정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재화는 희정의 모습에서 용기를 내어 다시 병모의 진료실을 찾아서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재화는 어린 시절 생계로 바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학창시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했던 경험과 그로 인하여 상처를 홀로 삭히는 엄마를 지켜봐야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재화에게도 '나만 참으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병모는 "어머니의 울음은 재화씨의 잘못이 아니다. 재화씨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것이다. 하기 싫으면 싫다, 힘들면 힘들다, 내 마음은 이렇다, 표현해도 된다. 살면서 한 번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라며 진심 어린 조언으로 재화를 위로한다.
 
재화는 오랜만에 집을 찾아가 부모님을 만난다. 재화는 아버지에게 심술을 부리다가 이를 꾸짖는 어머니와 언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참았던 분노를 터트린다. 재화는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고서도 참고 묵인했던 어머니에게 "차라리 이혼 하지 그랬냐. 이혼 못한 게 나 때문이라고 하지마라. 정말 내가 안쓰러웠으면 한 번은 물어봤었어야지. 한번은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야지!"라며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토해낸다.
 
재화는 엄마를 뿌리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사실은 누구보다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재화는 자신에게 생긴 마음의 병은 엄마 탓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되돌아본다.
 
재화는 퉁퉁부은 얼굴로 편의점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희정을 만난다. 재화는 희정을 집으로 데려와서 치료를 해주고 밥을 먹이며 점점 가까워진다. 까칠했던 희정은 "아줌마는 재수없게 안생겼다. 그리고 나름 꽤 괜찮은 어른 같다"라고 고마움을 드러내고, 재화도 "벌써부터 남들 눈치보고 억지로 참지 말라,"며 인생 선배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전한다. 재화는 화해의 의미로 엄마에게 용돈을 송금하며 미안했던 마음을 표현한다.
 
한편 재화는 하정우와 결혼한 옛 절친 박수진(오혜원)을 다시 만났다. 수진은 정우가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며 재화의 장난을 꿰뚫어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또한 수진은 과거사에 대해서도 미안함은 커녕 그게 최선이었다고 주장하며 뻔뻔한 모습을 보이고, 분노한 재화는 처음으로 화를 내며 수진의 뺨을 때리고 만다. 재화는 병모가 권했던 약물 치료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병모는 그런 재화의 아픔에 점점 공감을 느낀다.
 
재화는 컴플레인을 했던 배달원에게 먼저 감사의 메모를 남기는 등 조금씩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 나간다. 병모는 동료 의사가 진단하던 환자가 우울증으로 자살시도를 하여 가족들이 병원을 찾아가 항의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병모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환자의 입장에서 그동안 기계적으로 환자를 상대해왔던 시간들을 반성한다.
 
병모는 재화에게 전화를 걸어 약물치료 중단을 권유한다. 병모는 "지금까지 충분히 잘버텨왔다. 상처받아도 참고 이해하고 본인보다 남들을 더 이해하면서 열심히, 그러다가 가끔 내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고민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환자 김재화가 아닌 김재화라는 사람을 믿어보려고 한다"고 위로 한다. 이어 "지금부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거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김재화 씨 자신을 위해서, 같이 해보자"라는 뭉클한 응원을 남기며 재화를 눈물짓게 한다.

희정 또한 더이상 참지 않고 불량학생들의 괴롭힘에 맞서기 시작한다, 때마침 나타난 재화도 힘을 합쳐 학교 폭력의 주동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며 두 사람은 나란히 상처투성이 몰골이 된다. 재화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안희정의 손을 맞잡고 그동안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재화는 병모를 찾아가 꽃병을 선물로 건네며 "저번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시지 않았냐, 오늘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건넨다. 병모를 응시하며 환하게 웃는 재화의 모습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보통의 재화>는 KBS 드라마 스페셜의 2021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와야했던 평범한 여성의 상처 극복기를 그려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공황장애를 비롯한 정신질환은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이 겪는 고충이 아니며, 김재화는 우리 일상에서 만날수있는 평범한 독신여성의 전형에 가깝다.
 
드라마 제목에서 굳이 주인공을 '보통의 재화'라고 표현한 것은, 재화라는 인물이나 그가 겪고있는 상황들, 이런저런 고민들이 모두 우리의 삶에서 언제든, 누구에게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인공 재화처럼 남모를 아픔에 힘겨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보통'의 누군가들은 지금도 세상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재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대인의 상처들, 재화와 비슷한 아픔과 상황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병모와 희정의 모습은, 따뜻한 인간관계와 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또한 유쾌하고 허술한 매력을 뽐내다가도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재화의 다채로운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배우 곽선영의 열연은, 자칫 과장될수 있었던 재화의 캐릭터에 한층 현실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진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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